세계의 명시 640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코코아 한 잔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 - 말과 행동으로 나누기 어려운 단 하나의 그 마음을 빼앗긴 말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려는 심정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적에게 내던지는 심정을 - 그것은 성실하고 열심한 사람이 늘 갖는 슬픔인 것을. 끝없는 논쟁 후의 차갑게 식어버린 코코아 한 모금을 홀짝이며 혀 끝에 닿는 그 씁쓸한 맛깔로,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프고도 슬픈 마음을. (1911.6.15) * * * * * * * * * * * * * * * *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1886년 2월 20일 ~ 1912년 4월 13일)는 일본 메이지 시대의 시인 겸 문학평론가이다. 백석이 존경하고 사랑했던 시인이다. 지금은 죽어 일본 하코다데에 묻혀 있는 시인. 교사 신분으로, 학교개혁을 위해 ..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9월 밤의 불평(九月の夜の不平) 지도 위 놓인 조선국 강토 위로 地図の上朝鮮国に 새카매지게 먹을 칠하며 黒々と墨を塗りつつ 가을바람 소리 듣네 秋風をきく 누군가 나를 誰そ我に 피스톨 가지고서 쏴 주지 않으려나 ピストルにても撃てよかし 얼마 전 이토처럼 죽어 보여주련다 伊藤のごとく死にて見せなむ * * * * * * * * * * * * * * * * 위와 같이 한일 강제 병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담은 시를 짓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제국주의 일본에 저항하길 독려하는 산문을 발표하는 등 반제국주의적 성향을 지닌 일본인이었다. 위의 단카는 실제로 일본과 같은 색으로 표기된 조선 지도 위에 먹을 칠하면서 지었다는 이야기도 그의 지인으로부터 전해진다. 천황 암살을 추진하다가 체포되어 사형을 당한 고토쿠 슈스이의 대..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슬픈 장난감 1 숨을 쉬면은 가슴속에 울리는 소리가 있어 늦가을 바람보다 더 적막한 그 소리 어떻게 되든 될 대로 돼버려라 하는 것 같은 요즈음의 내 마음 남몰래 두렵구나 누군가 나를 힘껏 야단이라도 쳐 주었으면 내 마음 나도 몰라 이 무슨 마음일까 새로운 내일 반드시 오리라고 굳게 믿으며 장담하던 나의 말 거짓은 없었는데 2 빠사삭 빠삭 양초의 노란 불빛 타들어 가듯 까만 밤 깊어가는 섣달 그믐날이여 대문 앞에서 공치는 소리가 난다 웃음소리도 즐거웠던 지난해 설날 돌아온 듯이 왠지 모르게 금년에는 좋은 일 많이 있을 듯 설날 새 아침 맑고 바람 한 점 없구나 정월 초나흘 어김없이 올해도 그 사람한테 일 년에 한 번 있는 엽서 또 받겠구나 사람들 모두 똑같은 방향으로 가고들 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만..

메리앤 무어(Marianne Moore)

시 나도 시가 싫다. 이 하찮은 말장난보다 중요한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 말장난을 아무리 완전히 경멸하면서 읽으려 해도, 결국엔 그 안에 뭔가 진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뭔가를 잡을 수 있는 손, 크게 떠질 수 있는 눈, 때론 일어서는 머리카락,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 거창한 해석을 그 위에 갖다 붙여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유용하기 때문이다. 원래의 뜻을 너무 많이 손대고 변형시켜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다면, 이건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겠지만 - 즉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 거꾸로 매달려 먹이를 찾는 박쥐, 밀어붙이는 코끼리, 몸을 뒤집는 야생마, 나무 아래 지칠 줄 모르는 늑대, 몸에 붙은 벼룩에 언짢아하는 말처럼 살을 꼬집는 냉엄한 비평가, ..

메리앤 무어(Marianne Moore)

침묵 아버지는 말하곤 했네, "높은 지위의 사람은 결코 오래 머물지 않으며, 롱펠로의 무덤이나 하버드 대학의 유리 꽃들을 보여줄 필요도 없네. 고양이처럼 혼자 행동하고 - 먹이를 은밀한 곳으로 가져가며, 힘없이 처진 쥐꼬리를 신발 끈처럼 입에 물고 - 그들은 때로 고독을 즐기네, 그리고 할 말을 잃네 그들을 기쁘게 하는 말에 의해. 가장 깊은 감정은 항상 침묵 속에 나타나네, 침묵이 아닌, 절제 속에." 또한 그는 진지하게 말하네, "내 집을 네가 머무는 여관처럼 여겨라." 하지만 여관은 거주하는 집이 아니네. * * * * * * * * * * * * * * * * 메리앤 무어(Marianne Moore, 1887년 11월 15일 ~ 1972년 2월 5일)는 미국의 모더니스트 시인, 비평가, 번역가, ..

메리앤 무어(Marianne Moore)

세월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의 결백인가, 무엇이 우리의 죄인가? 모든 것이 다 드러나며, 어떤 것도 안전하지 않네. 이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답이 없는 질문, 확고한 의심, - 말 못 하는 자가 묻고, 귀먹은 자가 듣네 - 불행에 있어, 심지어 죽음에서조차,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실패함에 있어서도 부추기는, 영혼에게 강해질 것을? 죽을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는 깊이 보며 기뻐하네, 자신의 굴레를 박차고 일어나네 심연의 바다처럼,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나, 이룰 수 없는, 좌절 속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러므로 강렬하게 느끼는 자는, 바르게 행동하네. 노래할수록 키가 커지는 바로 그 새는 그의 몸을 똑바로 세우며 버티네. 비록 새장에 갇혔으나, 그의 힘찬 노래는 말하네, 만족이란 천박한 것이며..

클라크 E. 무스타카스(Clark E. Moustakas)

침묵의 소리 존재의 언어로 만나자. 부딪침과 느낌과 직감으로. 나는 그대를 정의하거나 분류할 필요가 없다. 그대를 겉으로만 알고 싶지 않기에. 침묵 속에서 나의 마음은 그대의 아름다움을 비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소유의 욕망을 넘어 그대를 만나고 싶은 그 마음 그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허용해 준다. 함께 흘러가거나 홀로 머물거나 자유다. 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대를 느낄 수 있으므로. * * * * * * * * * * * * * * * * 클라크 E. 무스타카스(Clark E. Moustakas, 1923년 5월 26일 ~ 2012년 10월 10일)는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인본주의 및 임상 심리학의 주요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인본주의 심리학 협회(Association for Hu..

파울 첼란(Paul Celan)

눈 하나 열린 오월 빛깔, 서늘한, 시간 이제는 부를 수 없는 것, 뜨겁게 입안에서 들린다. 다시금, 그 누구의 목소리도 없고, 아파 오는 안구의 밑바닥. 눈꺼풀은 가로막지 않고, 속눈썹은 들어오는 것을 헤아리지 않는다. 눈물 반 방울, 한층 도수 높은 렌즈, 흔들리며, 너에게 모습들을 전해 준다. * 눈 하나 : Ein Auge 첼란의 시에서 빈번히 나오는 고통의 심상이다. 감기지 못한 눈, 뜬 채로 굳어진 눈, 생명의 물기를 잃어버린 눈, 본 것이 준 고통이 각막에 지워지지 않은 상흔으로 남아 지층에 총총히 박혀있는 눈 등. 이 시는 에 수록되어 있다. * * * * * * * * * * * * * * * * 파울 첼란(Paul Celan, 본명: 파울 안첼 Paul Antschel, 1920년 11..

오드리 로드(Audrey Geraldine Lorde)

장인(Artisan) 빛없는 작업실에서 우리는 노래하지 않는 새들을 만든다 빛나지만 날지는 못하는 연들을 빛이 섬세한 작업용 화기의 목구멍에 삼켜지는 속도로 나는 내가 달의 심장에 묻힌 생존 키트를 발견한 줄 알았어 거북처럼 납작하고 탄력적인 어둠의 입에 거북딱지로 만든 상자가 걸렸다 믿기 어렵게 정교한 무늬가 갑각에 새겨져 있고 그 아래는 달콤한 살이지. 내 이름의 형태는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의 침대보는 바닥까지 치렁치렁 늘어뜨린 한밤의 꽃이고 거기에서 너의 기술이 보인다 * * * * * * * * * * * * * * * * 오드리 로드(Audrey Geraldine Lorde, 1934년 2월 18일 ~ 1992년 11월 17일)은 미국의 작가, 교수, 철학자, 교차 페미니스트, 시인 및 시민권..

파울 첼란(Paul Celan)

어느 돌을 네가 들든 어느 돌을 네가 들든 - 너는 드러내 버린다. 돌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벌거벗긴 그들은 이제 짜임을 새롭게 한다. 어느 나무를 네가 베든 - 너는 짜 맞춘다. 그 위에 혼(魂)들이 또다시 고일 잠자리를, 마치 흔들리지 않을 듯이 이 영겁(永劫) 또한. 어느 말을 네가 하든 - 너는 감사한다 사멸(死滅)에. * * * * * * * * * * * * * * * * 파울 첼란(Paul Celan, 본명: 파울 안첼 Paul Antschel, 1920년 11월 23일 ~ 1970년 4월 20일 향년 49세)은 루마니아 출생의 독일어 시인이다. 처음에는 의학을 공부하였으나 전쟁으로 중단하고, 소련군 점령 후에는 빈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최초의 시집을 발표하였다(1947).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