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 639

오노노 코마치(Ono no Komachi)

꽃의 색깔이 완전히 바래니 다만 덧없이 생각에 잠긴 동안 시간은 흘러가네. 花の色は うつりにけりな いたづらに わが身よにふる ながめせしまに * * * * * * * * * * * * * * * 와카(和歌)는 일본의 노래(시)라는 뜻으로 일본의 가장 대표적, 전통적인 정형시가이다. 일종의 시조로 우리의 고전 시가들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와카의 기본적 구조는,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와 사물이 대응되도록 묘사하는 것이 기본이다. 와카의 한 형식인 短歌(단가) : 5·7·5·7·7의 5구(句) 31음으로 된 단시로 여기서 지는 꽃은 벚꽃(사쿠라). 늦봄을 상징한다. 일제히 폈다가 금세 져버리는 벚꽃의 특성을 허무하게 느껴지는 짧은 인생에 빗댄 것. 그리고 시에서는 여자와 꽃이 동일시되는 표현이 흔해 여기서도 꽃..

미겔 에르난데스(Miguel Hernandez)

그대의 눈이 없다면 내 눈은(Mis ojos, din tus ojos) 그대의 눈이 없다면 내 눈은 눈이 아니요 외로운 두 개의 개미집일 따름입니다. 그대의 손이 없다면 내 손은 고약한 가시 다발일 뿐입니다. 달콤한 종소리로 나를 채우는 그대의 붉은 입술 없이는 내 입술도 없습니다. 그대가 없다면 나의 마음은 엉겅퀴 우거지고 회향 시들어지는 십자가 길입니다. 그대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내 귀는 어찌 될까요? 그대의 별이 없다면 나는 어느 곳을 향해 떠돌까요? 그대의 대꾸 없는 내 목소리는 약해만 집니다. 그대 바람의 냄새, 그대 흔적의 잊혀진 모습을 좇습니다. 사랑은 그대에게서 시작되어 나에게서 끝납니다. * * * * * * * * * * * * * * * * 미겔 에르난데스 길라베르트(1910년 10..

스웨덴:넬리 작스(Nelly Sachs)

죽음의 극복 등진 채 나는 기다린다. 너는 산 위로부터 멀리 또는 가까이 머무른다. 등진 채 나는 너를 기다린다. 왜냐면 자유인은 동경의 사슬에 묶여서도, 유성먼지의 관을 써서도 안되기 때문에 사랑은 모래 나무 불에 타지만 결코 소진(燒盡) 되지 않는― 등진 채 사랑은 너를 기다린다. * * * * * * * * * * * * * * * * 넬리 작스(Nelly Sachs, 본명 Leonie Sachs, 1891년 12월 10일 ~ 1970년 5월 12일, 향년 78세 )는 스웨덴의 시인·극작가다. 주로 독일어로 작품을 썼다. 196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유대인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공장주인 아버지의 서재에 파묻혀 어려서부터 모든 시대의 민담과 동화를 읽고 문학적 소양을 키운 작스는 낭만주의..

미겔 에르난데스(Miguel Hernandez)

부상자 전쟁이 있는 저 들판에는 시체가 널려 있고 부상자들이 널려 있는 그곳에 사방으로 뜨거운 핏줄기가 솟아오른다 분수에서 뿜어대는 물줄기처럼 피는 항상 하늘을 향해 토하고 파도처럼 상처에서 피가 한꺼번에 솟구칠 때 소라껍데기처럼 상처의 외침 소리가 들린다. 피는 바다 냄새가 나고, 바다맛이 나고, 술 창고 맛이 난다. 바다의 술 창고에서 사납게 포도주가 폭발한다 그곳에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부상자가 빠져서, 피를 쏟고 죽어가네 나는 부상당했다. 아직 더 생명이 필요한데 남은 피는 자유를 위한 것 나의 상처로 솟을 피가 누가 부상당하지 않았는지 말해보라 나의 삶은 행복스러운 젊음에 생긴 상처 부상을 입지도, 삶에서 고통을 느껴보지도 못한 나 살아서도 마음이 편하지 못하리 나, 기쁘게 부상을 입었어 ..

스웨덴:넬리 작스(Nelly Sachs)

누구든 누구든 달을 만지려고 혹은 하늘의 꽃 피는 다른 광물체를 향해 지구를 떠나는 자― 기억의 상처와 갈망의 폭발물과 함께 튀어 오르리라. 색칠한 지상의 밤으로부터 영혼의 눈에 비친 가로(街路)를 찾는 그의 기도는 하루하루의 절멸(絶滅)로부터 날아오르기에. 눈물에 젖은 달의 분화구와 바닥 마른 바다 별들의 정거장을 지나 티끌 없는 세상으로 가는 길 지구는 어디에나 향수병의 식민지를 건설한다. 음탕한 피의 바다에 내려앉지 않기 위해 오직 썰물과 밀물의 경음악에 맞추어 흔들리기 위해 삶과 죽음의 상처 없는 영원한 리듬에 맞추어―. * * * * * * * * * * * * * * * * 넬리 작스(Nelly Sachs, 본명 Leonie Sachs, 1891년 12월 10일 ~ 1970년 5월 12일, 향..

미겔 에르난데스(Miguel Hernandez)

병사 남편의 노래 당신 속에 나는 사랑과 생명을 심었소 당신의 사랑에 답하고자 나는 피의 메아리를 연장하였고, 쟁기가 고랑 위에서 기다리듯 나는 당신의 심연에까지 갔었소. 드높은 탑, 높은 빛, 커다란 눈동자의 갈색 여인이여 나와 살을 섞은 여인, 나의 삶의 위대한 동반자여, 새끼를 밴 암사슴의 박동처럼 당신의 미친 듯한 가슴이 나에게까지 와닿는구려… 나의 분신이여, 나의 날개의 원동력이여 이 죽음 가운데에서 당신께 생명을 바치오 여인이여, 사랑하는 이여,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이 납덩이 속에서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땅 속에 묻힌 잔인한 관 위에서 아니 죽은 시체 위에서 무덤도 없이 당신을 사랑하며, 가루가 되어 죽을 때까지 온 마음 바쳐 당신에게 입 맞추고 싶소 전쟁터에서 당신을 기억하노라면 내 이마..

스웨덴:넬리 작스(Nelly Sachs)

익사한 여자 네가 태어나던 날에 잃어버린 진주를 너는 항상 찾아다녔다. 그 한 가지만을 너는 찾아다녔다, 귀 안에 가득 찬 밤의 음악. 바닷물에 씻긴 영혼, 밑바닥까지 잠수한 너, 심연의 천사, 물고기들이 네 상처의 빛 속에서 빛난다. * * * * * * * * * * * * * * * * 넬리 작스(Nelly Sachs, 본명 Leonie Sachs, 1891년 12월 10일 ~ 1970년 5월 12일, 향년 78세 )는 스웨덴의 시인·극작가다. 주로 독일어로 작품을 썼다. 196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유대인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공장주인 아버지의 서재에 파묻혀 어려서부터 모든 시대의 민담과 동화를 읽고 문학적 소양을 키운 작스는 낭만주의 작가의 작품과 동방의 지혜까지 섭렵했다. 17세 ..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

나비 줄기에서 공들여 만들어진 당분이, 잘 닦여지지 않은 컵에서 보듯이, 꽃 밑둥지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할 때, --땅 밑에서는 엄청난 일이 진행되어 나비들이 불현듯 날아오른다. 그러나 모든 애벌레는 눈먼 머리를 갖고 있고, 어둠 속에 방치되었다가, 진정한 폭발에 의해 날씬한 몸통을 갖게 되어 그로부터 대칭의 양 날개를 피워 올리게 되는데, 그때부터 정처 없이 떠도는 여정에서 나비가 내려앉는 곳은 우연에 맡겨져 있거나, 혹은 그와 유사할 뿐이다. 날아다니는 성냥, 그러나 그것의 불꽃은 옮겨 붙지 않는다. 게다가 나비는 너무 늦게 도착해서 꽃들이 이미 피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나비는 점등원이 되어, 꽃마다 남아있는 기름의 잔량이나 확인하며 다닌다. 나비는 쇠약한 누더기 몸을 이끌고 ..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

빵 빵의 표면은 우선 그것이 보여주는 거의 파노라마 같은 느낌 때문에 경이롭다. 알프스 산맥, 타우루스 산맥 혹은 안데스 산맥을 손안에 넣고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 같기 때문에. 이렇게 되기 위해 트림해 대는 무정형의 덩어리 하나가 우리를 위해 별 모양의 화덕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그 속에서 굳어지면서 골짜기로, 산봉우리로, 산의 굴곡과 크레바스 등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분명하게 윤곽이 드러나는 모든 면들, 그 얇은 포석에다 불꽃은 열심히 불길을 발라주었던 것이다. ―그 밑에 숨겨진 볼품없이 부드러운 부분에는 눈길도 한번 주지 않은 채. 빵의 속살이라 불리는 그 늘어진 차가운 하층토는 스펀지와 비슷한 조직을 갖고 있다. 그곳의 잎이나 꽃들은 팔꿈치가 한꺼번에 붙어 있는 기형 쌍생아 같다..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Hans Magnus Enzensberger)

똥(Die Scheie) 곧잘 그것이 모든 잘못의 근원인양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다 보시라, 그것은 얼마나 부드럽고 겸손하게 우리 밑에 앉아 있는가? 도대체 우리는 왜 그 좋은 이름을 모독하여 미국 대통령에 경찰에 전쟁과 자본주의에 비유되는가? 그것은 얼마나 덧없는 것인데, 그것에 따라 이름 붙인 것들은 저토록 견고한가! 그것, 그 순종적인 것을 혀끝에 올려놓고 우리는 착취자들을 생각하는구나. 그것, 우리가 표현해 보인 그것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분노를 표현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를 편하게 해 주지 않았던가? 부드러운 성질로 독특하게, 비폭력적으로? 그것은 인간의 온갖 산물 가운데 아마도 가장 평화로운 것이리라.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