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5

칠레: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스무 개의 사랑의 시 20나는 오늘밤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시를 쓸 수 있습니다.예를 들어,라고 씁니다.밤바람은 하늘을 맴돌며 노래합니다.나는 오늘밤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시를 쓸 수 있습니다.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가끔씩 나를 사랑했습니다.오늘 같은 밤이면 나는 내 품에 그녀를 안고 있었습니다. 저 끝없는 하늘 아래서 수없이 입을 맞추었습니다.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나도 가끔은 그녀를 사랑하고 했습니다.어떻게 그녀의 꼼짝 않는 눈동자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그녀가 없어 저으기 막막해 보이는, 그 막막한 밤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그러면 이슬이 풀밭에 떨어지듯 시는 영혼 위에 내립니다.내 사랑이 그녀를 지킬 수 없다 하더라도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밤은 별들이 촘촘히 수놓아져 있건만..

칠레: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절망의 노래 너의 추억은 내가 자리하고 있는 밤에서 솟아오른다.강물은 그 끝없는 탄식을 바다에 묶고 있다.동틀 녘의 부두처럼 버려진 사내.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 버림받은 이여!내 심장 위로 차가운 꽃비가 내린다.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 조난자들의 흉포한 동굴.네 위로 전쟁과 날개가 쌓여 갔다.노래하는 새들은 네게서 날개를 거두었다.마치 머나먼 무엇처럼 너는 그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바다처럼, 시간처럼,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침략과 입맞춤의 즐거운 시간이었다.등대처럼 타오르던 혼수상태의 시간.항해사의 조바심, 눈먼 잠수부의 분노,사랑의 혼미한 도취,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희미한 안개의 유년 속에 날개 달고 상처 입은 나의 영혼.길 잃은 탐험가,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칠레: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한 여인의 그림 앞에 서 있는 시인 네루다. 한 여자의 육체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들, 흰 넓적다리,네가 내맡길 때, 너는 세계처럼 벌렁 눕는다.내 거칠고 농부 같은 몸은 너를 파 들어가고땅 밑에서 아들 하나 뛰어오르게 한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고,밤은 그 강력한 침입으로 나를 엄습했다.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벼리고내 화살의 활처럼, 내 투석기의 돌처럼 벼렸다. 그러나 이제 복수의 시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피부의 육체, 이끼의, 단호한 육체와 갈증 나는 밀크!그리고 네 젖가슴의 잔들! 또 방심(放心)으로 가득 찬 네 눈!그리고 네 둔덕의 장미들! 또 느리고 슬픈 네 목소리!  ‌내 여자의 육체, 나는 네 경이로움을 통해 살아가리.내 갈증, 끝없는 내 욕망..

칠레: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시 ​그러니까 그 나이였을 때.시가 나를 찾아왔어. 모르겠다, 난 그게 어디서 왔는지.겨울에서인지 강에서 인지.언제 어떻게 왔는지 나는 모르겠어.아니,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고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고 침묵도 아니었어.헤매고 다니던 길거리에서.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활활 타오르는 나의 가슴을 움직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이야 고독한 길에서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었어.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혹은나는 내 나름대로 그 불을 해독하며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난센스.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

칠레:네루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1. 여자의 육체 여자의 육체여 흰 언덕이여 흰 허벅지여 하늘이 준 네 모습은 이 세상과도 비슷하다 건장한 내 농부인 육체는 그 괭이로 대지의 깊이에서 자식을 뛰어 오르게 한다. 나는 늪처럼 고독했다 새들은 내게서 도망쳤고 밤은 무서운 힘으로 내게 덤벼들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너를 무기처럼 단련하였고 이제 너는 내 활의 화살이 되어 나를 섬긴다 하지만 복수의 때가 지나 나는 너를 사랑한다 미끄러운 살결과 이끼와 유방이 있는 탐욕의 육체여 아아 항아리 같은 유방! 아아 얼빠진 듯한 그 눈! 아아 볼두덩뼈의 장미! 네 야릇한 슬픔의 소리! 여자의 육체여 나는 네 매력의 포로가 된다. 오오 목마른 끝없는 욕망, 종착 지점없는 길이여! 어두컴컴한 강바닥이여 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