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일본 28

오노노 코마치(Ono no Komachi)

꽃의 색깔이 완전히 바래니 다만 덧없이 생각에 잠긴 동안 시간은 흘러가네. 花の色は うつりにけりな いたづらに わが身よにふる ながめせしまに * * * * * * * * * * * * * * * 와카(和歌)는 일본의 노래(시)라는 뜻으로 일본의 가장 대표적, 전통적인 정형시가이다. 일종의 시조로 우리의 고전 시가들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와카의 기본적 구조는,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와 사물이 대응되도록 묘사하는 것이 기본이다. 와카의 한 형식인 短歌(단가) : 5·7·5·7·7의 5구(句) 31음으로 된 단시로 여기서 지는 꽃은 벚꽃(사쿠라). 늦봄을 상징한다. 일제히 폈다가 금세 져버리는 벚꽃의 특성을 허무하게 느껴지는 짧은 인생에 빗댄 것. 그리고 시에서는 여자와 꽃이 동일시되는 표현이 흔해 여기서도 꽃..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코코아 한 잔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 - 말과 행동으로 나누기 어려운 단 하나의 그 마음을 빼앗긴 말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려는 심정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적에게 내던지는 심정을 - 그것은 성실하고 열심한 사람이 늘 갖는 슬픔인 것을. 끝없는 논쟁 후의 차갑게 식어버린 코코아 한 모금을 홀짝이며 혀 끝에 닿는 그 씁쓸한 맛깔로,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프고도 슬픈 마음을. (1911.6.15) * * * * * * * * * * * * * * * *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1886년 2월 20일 ~ 1912년 4월 13일)는 일본 메이지 시대의 시인 겸 문학평론가이다. 백석이 존경하고 사랑했던 시인이다. 지금은 죽어 일본 하코다데에 묻혀 있는 시인. 교사 신분으로, 학교개혁을 위해 ..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9월 밤의 불평(九月の夜の不平) 지도 위 놓인 조선국 강토 위로 地図の上朝鮮国に 새카매지게 먹을 칠하며 黒々と墨を塗りつつ 가을바람 소리 듣네 秋風をきく 누군가 나를 誰そ我に 피스톨 가지고서 쏴 주지 않으려나 ピストルにても撃てよかし 얼마 전 이토처럼 죽어 보여주련다 伊藤のごとく死にて見せなむ * * * * * * * * * * * * * * * * 위와 같이 한일 강제 병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담은 시를 짓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제국주의 일본에 저항하길 독려하는 산문을 발표하는 등 반제국주의적 성향을 지닌 일본인이었다. 위의 단카는 실제로 일본과 같은 색으로 표기된 조선 지도 위에 먹을 칠하면서 지었다는 이야기도 그의 지인으로부터 전해진다. 천황 암살을 추진하다가 체포되어 사형을 당한 고토쿠 슈스이의 대..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슬픈 장난감 1 숨을 쉬면은 가슴속에 울리는 소리가 있어 늦가을 바람보다 더 적막한 그 소리 어떻게 되든 될 대로 돼버려라 하는 것 같은 요즈음의 내 마음 남몰래 두렵구나 누군가 나를 힘껏 야단이라도 쳐 주었으면 내 마음 나도 몰라 이 무슨 마음일까 새로운 내일 반드시 오리라고 굳게 믿으며 장담하던 나의 말 거짓은 없었는데 2 빠사삭 빠삭 양초의 노란 불빛 타들어 가듯 까만 밤 깊어가는 섣달 그믐날이여 대문 앞에서 공치는 소리가 난다 웃음소리도 즐거웠던 지난해 설날 돌아온 듯이 왠지 모르게 금년에는 좋은 일 많이 있을 듯 설날 새 아침 맑고 바람 한 점 없구나 정월 초나흘 어김없이 올해도 그 사람한테 일 년에 한 번 있는 엽서 또 받겠구나 사람들 모두 똑같은 방향으로 가고들 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만..

쿠사노 신페이(草野心平)

가을밤의 회화 춥구나 그래 춥구나 벌레가 운다 그래 벌레가 운다 곧 땅 속에 들어가야지 땅 속은 싫어 파리해졌구나 너도 무척 파리해졌구나 어디가 이렇게 죄어올까 배일까 배라면 죽고 말 거야 죽고 싶지는 않아 춥구나 그래 벌레가 운다 * * * * * * * * * * * * * * * 이 시의 주제는 명확하다.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비틀거리며, 서글픔 속에서도 이기고 살아가는 의지, 그것을 시시껄렁한 말은 없으면서 일상어로 노래하고 있다. 이 시가 풍기는 슬프면서 아름다운 세계는 달리 비할 바 없다. 두 마리 개구리에 기탁되어 묘사되고 있는 것은 인생 그 자체이다. 가을의 싸늘함이 몸에 스며드는 밤, 삶의 슬픔과 괴로움을 벌레에게 공감을 기탁하면서 말하는 정경에는, 작자의 젊은 날의 모습이 투영되고 있다..

쿠사노 신페이(草野心平)

옴개구리 야. 나야. 나왔어. 옴개구리야. 나야. 놀라지 않아도 돼. 빛이 이렇게 흐르고 흐트러진 것은 내가 빙글빙글 둘러보고 있기 때문은 아니겠지. 참을 수 없구나. 새파랗구나. 사방에서 향기가 나는구나. 느긋하게 흐르는 구름이구나. 이쪽 저쪽에서 무언가 중얼중얼 울기 시작했구나. 힘껏 날아가버린 겨울 눈부시구나. 파랗구나. 참을 수 없구나. 봄아 나야. 옴개구리야. * * * * * * * * * * * * * * * 옴개구리 척삭동물문 / 양서강 / 무미목 / 개구리과 / 옴개구리속 ​ 몸길이 4~5.5cm 주름돌기개구리라고도 한다. 등면은 검은색 바탕에 많은 작은 융기가 있으며, 피부에서 독특한 냄새가 난다. 등 중앙에 연한 황색의 세로줄이 있다. * * * * * * * * * * * * * *..

쿠사노 신페이(草野心平)

봄의 노래 개구리는 겨울 동안 땅 밑에 머물다 봄이 되면 땅 위로 올라옵니다. 그 첫째 날의 노래. 너무 눈부셔요. 너무 기뻐요. 벌레는 미끌미끌. 바람은 솔솔. 쾰른 쿡. 아아 쾰른 쿡. 오 개불알풀꽃이 피어있네. 오 커다란 구름이 움직이고 있네. 쾰른 쿡. 쾰른 쿡. * * * * * * * * * * * * * * * 여기저기서 개구리가 울어대는 소리가 들리도록 의성어(擬聲語)가 나열된 싯구이다. 작가는 개구리의 울음과 풍경이 하나가 된 것 같다. 시 속의 의성어가 봄의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 * * * * * * * * * * * * * * 쿠사노 신페이(草野心平, 1903년 5월 12일 ~ 1988년 11월 12일 향년 85세)는 일본의 시인이다. 후쿠시마현 이시키 군 가미오가와무라(현 이와..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 朔太郎)

애련(愛憐) 질끈 귀엽고 굳은 치아로 초록색 풀을 깨무는 여자여 여자여 그 여리게 푸른 풀의 잉크로 남김없이 내 얼굴을 칠하여 내 정욕을 고양시켜 우거진 풀밭에 남몰래 놀자 보아라 여기에는 은방울풀이 머리를 흔들고 저기에는 용담풀의 손이 살랑살랑 움직인다 아아 나는 힘껏 네 유방을 끌어안는다 너는 네 힘껏 내 몸을 누르고 있다 그리하여 이 인기척 없는 들판 속에서 * * * * * * * * * * * * * * * 이 시는 대담한 에로티시즘을 관능적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이 작품 때문에 시집 는 판금 조치를 받았다. * * * * * * * * * * * * * * *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 朔太郎, 1886년 11월 1일 ~ 1942년 5월 11일)는 일본 근대의 시인이다. 일본 근대시의 아버지라고도..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 朔太郎)

개구리의 죽음 개구리가 살해되었다 어린이들은 원을 이루고 손을 들었다 모두들 함께, 귀여운, 피투성이 손을 들었다, 달이 떠올랐다, 언덕 위에 사람이 서 있다, 모자 아래 얼굴이 있다. * * * * * * * * * * * * * * * 죄 없는 어린이들이 자기들의 놀이 친구인 죄 없는 개구리를 살해하고 말았다. 미워서 죽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만세를 부르고 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인가. 세상에서는 이와 비슷한 참극이 행해지고 있다. 그것도 온화한 봄날 저녁에 그런 일이 행해진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서도 망연하게 서 있는 인간 - 자신도 그중 한 명이지만,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인간의 원죄를 슬퍼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 * * * * * * * * * * * * * * 하기..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나비였네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 * * * * * * * * * * * * * * *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년 ~ 1694년 11월 28일(음력 10월 12일)), 또는 마쓰오 주에몬 무네후사(松尾 忠右衛門 宗房)는 에도 막부 전기의 시인이다. 아명은 긴사쿠(金作). 그의 생애 동안 바쇼는 공동 하이카이노 렌가 양식에서 그의 작품을 인정받고 있었다. 오늘날, 그는 당시 시대에 홋쿠라 불린 하이쿠의 명인으로 꼽히고 있다. 마쓰오 바쇼의 시는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있으며, 일본에서 그의 시 중 대다수는 기념물이나 역사적 장소에서 재생산되고 있었다. 바쇼는 그의 홋쿠로 서구에서 유명하지만, 그 자신은 그의 최고의 작품이 렌쿠에 참여하고 주도하는 것에 있다고 믿었다.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