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일본 34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고촌광태랑)

너덜너덜한 타조 뭐가 재미있어서 타조를 기르는가. 동물원의 4평 반 진창 안에서는. 다리가 너무 길지 않은가. 목이 너무 길지 않은가. 눈 오는 나라에서 이 상태라면 날개가 너무 너덜너덜하지 않는가. 배가 고프니까 건빵도 먹지만, 타조의 눈은 먼 곳만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몹시도 고통스럽게 불타고 있지 않은가. 유리색 바람이 당장이라도 불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작고 소박한 머리가 무한대의 꿈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이미 타조가 아니지 않은가. 인간이여, 이제 그만 좀 두시지, 이런 짓은. - 일본 고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 수록. * * * * * * * * * * * * * * *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 1883년 3월 13일 ~ 1956년 4월 2일)는 일본에서 국민 시..

혼다 히사시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서 만개한 벚꽃나무에 기대어 있을 때 해체된 말의 앞다리가 달려왔다 뒤이어 뒷다리도 달려왔다 그 뒤를 이어 하늘에서 떨어진 몸통이 네 다리 위에 올라앉았고 머리가 없는 채로 말은 잠자코 서 있다 이윽고 짐수레를 끌고 노파가 다가와서 짐받이에 싣고 온 말의 머리를 나의 발아래에 내려놓고 갔다 나는 말의 머리를 제자리에 붙여 놓고 다시 말을 보았다 그 말은 내가 소년이었을 적에 사산(死産)으로 해체된 모태에서 끌려 나온 말이었다 말은 이제야 처음으로 보는 걸 허락받은 자와 같았다 나는 침으로 상처를 닦아 주고 손을 번쩍 들어 말의 엉덩이를 쳤다 말은 우렁차게 울고 나서 들판 끝으로 달려갔다 그때 봄 폭풍으로 한꺼번에 지던 벚꽃 꽃잎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는 벚꽃나무가 문득 비틀거리는 것을 ..

혼다 히사시

피에타(Pietà) 오늘, 쓸쓸함은 쓰라리고 밝고, 푸르게 빛나는 소금 같다 네 안에 있는 숲의 거처 너를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있지만 끝내, 네가 보이지 않는다 젖은 모래 같은 눈 안쪽에 너를 불러내려 해도 끝내, 너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를 둘러싸는 나무들 우물거리는 꿩과 비둘기의 울음 소리 나가 버린 후 돌아오지 않는 고양이 탁류에 삼키어 버린 산기슭의 마을 한 없이 늘어가는 죽은 자의 숫자 오늘, 슬픔은 깊고 끝없이, 높으며 넓은 하늘 같다 마른 바람에 부쳐 보내고 싶은 한 개의 푸른 과일 하지만, 네 있는 곳을 모른다 네 발 밑의 작은 산골짜기에서 너를 쳐다보며 눈을 크게 뜨고 있지만 네 시초가 보이지 않는다 * * * * * * * * * * * * * * 시인의 아홉 번째 개인 시집인 『풀의 영..

혼다 히사시

배 그 배는 이미 항구마다, 아니다 그 바다 자체에서조차 거절당했다 그 배는 이미 푸르게 넘실대는 바닷물에 잊혀져 활 모양의 수평선에 버려졌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그 사람의 슬픈 기억의 바다에 떠 있고 돛대는 묶여 있다 그 배는 이미 배를 벗어난 배 이름을 명사로서 부를 수 없는 배 어쩌면 그 사람의 새가 되고 싶다는 상념을 닮은 모습 혹은 머무를 수 없는 비망(非望) 그럼에도 쇠퇴한 별빛을 쌓아둔 채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바다에서 태어나 저 멀리 바다를 초월한 바다로 향하는 배 한 척 * * * * * * * * * * * * * * * 혼다 히사시는 1947년 큐슈 미야자키 현(宮崎縣)에서 태어나 26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제1회 이토세이유 상과 제42회 H씨상, 제47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