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일본

혼다 히사시

높은바위 2023. 4. 14. 07:17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서

 

만개한 벚꽃나무에 기대어 있을 때

해체된 말의 앞다리가 달려왔다

뒤이어 뒷다리도 달려왔다

그 뒤를 이어 하늘에서 떨어진 몸통이

네 다리 위에 올라앉았고

머리가 없는 채로 말은 잠자코 서 있다

이윽고 짐수레를 끌고 노파가 다가와서

짐받이에 싣고 온 말의 머리를

나의 발아래에 내려놓고 갔다

나는 말의 머리를

제자리에 붙여 놓고

다시 말을 보았다

그 말은 내가 소년이었을 적에

사산(死産)으로 해체된

모태에서 끌려 나온 말이었다

말은 이제야 처음으로

보는 걸 허락받은 자와 같았다

나는 침으로 상처를 닦아 주고

손을 번쩍 들어 말의 엉덩이를 쳤다

말은 우렁차게 울고 나서 들판 끝으로 달려갔다

그때

봄 폭풍으로 한꺼번에 지던 벚꽃 꽃잎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는

벚꽃나무가 문득 비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 * * * * * * * * * * * * *  

 

혼다 히사시는 1947년 규슈 미야자키 현(宮崎縣)에서 태어나 26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제1회 이토세이유 상과 제42회 H씨상, 제47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지은 책으로 <피뢰침>, <과수원>, <불의 관>, <가시>, <재와 불과 수목과 그림자와>, <햇빛의 정원-무한대화>, <시에서 시로>, <돌 아래 귀뚜라미-시인 와타니베 슈조의 세계>, <작은 여운-시와 일상과> 등이 있다.

 

혼다 히사시는, 전통 정형 시가인 '하이쿠'나 '단카'에 밀려 독자들로부터 유리된 채 서점의 한 구석 좁은 공간을 겨우 차지하며 일본 현대 자유시의 위의를 그나마 지탱하고 있는 일본 현대 자유시의 상징적인 시인이다.


혼다 히사시는 그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였으며 제주도 '사색의 정원'에는 그의 시비가 건립되어 있다.

일본의 권위 있는 '일본 현대시인회'상을 수상했고,《시인세계》 등 한국시단의 전문 시 잡지에 자주 그의 시가 특집으로 게재되어서 우리 시인들 사이에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김남조ㆍ김광림 등 한국의 원로시인들과도 두터운 교분을 쌓아왔다.

1947년 일본 규슈의 미야자키 현에서 출생한 그는 스물여섯 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시집으로『피뢰침』,『말-진혼제』,『성몽담』,『과수원』,『불의 관』,『재와 불과 수목과 그림자와』등이 있으며 평론집으로『시에서 시로』등이 있다.

1991년 제1회 이토 시즈오상賞, 1992년 제42회 H씨상賞, 1993년 제47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혼다 히사시의 시는 매우 서정적이면서도 동시에 존재론적이고 철학적인 깊이가 있다.

그가 뿌리내리고 있는 시의 세계는 크게 요약한다면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아가페와 에로스를 아우르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