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조 중엽에 라 하여, 한국선비의 한 시련의 도풍(道風)이 은밀히 유행했었다.서경덕(徐敬德)의 유교도교(儒敎道敎)의 융합사상이 빚은 수도방법 가운데 하나인 이 계(戒)는 기생(妓生)과 이불을 같이 한다든지, 또 처첩1비(妻妾一婢)와 이불을 같이 함으로써 본능을 극도로 달구어 놓고, 교접을 않음으로써 양성(養性)한다는 자학수도(自虐修道)다.처첩과의 공방계는 1년 내지 3년의 기간을 정해놓고 이 계행(戒行)을 하곤 하였다.이 공방계는 그 후 타락하여 양반들이 천녀나 천첩과 교합할 때 그 잉태를 기피하기 위한, 피임법으로 전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양희수(楊希洙)의 공방계는 이색적인 것이었다.성종(成宗) 때 영암군수(靈岩郡守)였던 양희수(楊希洙)가 임지로 가는 도중, 장성(長城) 땅에서 있었던 일이다.주막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