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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앤서니 소토(Gary Anthony Soto)

오렌지 처음 여자아이와 함께 걸었을 때난 열두 살이었고추웠고웃옷 안주머니에 든 오렌지 두 개가무거웠지12월그녀의 집까지 걸어가는 동안발 밑에서 살얼음이 갈라졌고입김이 내 앞에 나타났다 사라졌지날씨와 무관하게 밤이나 낮이나현관 전등이 노랗게 불타고 있는 곳개는 나를 보고 짖었고그녀는 밖으로 나와 장갑을 끌어올렸지얼굴이 연분홍색으로 밝게 빛났지나는 미소 지으며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거리로 데려갔지중고차 매장과 일렬로 늘어선새로 심은 나무들을 지나한 상점 앞에서 숨을 돌렸지우리는 안으로 들어갔고작은 종이 울리자 주인아주머니가상품들이 진열된 좁은 복도에 나타났지나는 관중석처럼 늘어선사탕들 앞으로 가서그녀에게 무엇을 갖고 싶은지 물었지그녀의 눈에는 빛이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지나는 호주머니 속 5센트 동전을..

가시나

"순임이, 고 가시나가 등잔 불빛에 젖은 창호지처럼 파리한 얼굴을 해 가지고 뭐라고 쫑알쫑알했는데……""그 가시나가 말을 안 들으먼 기양 멀끄렁을 잡아챌란다야." '가시나'는 '계집아이'의 방언(경상, 전라, 충청)으로 '가시내', '가스나' 강원도는 '가스나이', 전라도 '가이내', 평안북도와 함경도는 '간나'라고 한다. '여자'를 의미하는 단어이다.어감으로 인해 단어가 비하의 의미가 있는 비속어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남부지방에서 동년배들끼리 '머스마(머시마)'와 같이 격의 없이 친한 사이에 자주 쓰이는 '여자애, 남자애'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가시나'의 어원은 여러 설이 있다. 첫째, 가시나의 중세 한국어형은 16세기 문헌에 보이는 '가ᄉᆞ나ᄒᆡ/갓나ᄒᆡ'이다. '가ᄉᆞ나ᄒᆡ..

게리 앤서니 소토(Gary Anthony Soto)

취업면접 전 자기에게 묻다 재채기는 했습니까?네, 내 속에 있는 사기꾼은 없애 버렸습니다.셔츠는 다렸습니까?네, 어머니의 미움을 스팀으로 썼습니다.손은 씻었습니까?네, 개인위생은 너구리한테 배웠습니다.무릎 꿇고 기도했더니 무릎이 통증으로 답했다.목양치질을 했다. 내가 누군지 보일 때까지 구두에 광을 냈다.중간이름을 써 이력서를 부풀렸다.면접 장소로 일찌감치 걸어갔다.태양은 전기스토브의 동그란 열선 같았다.회전문의 바람 속으로 들어서며 머리카락을 토닥였다.경비원이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은 19층이라고.경제는 상승세다. 미국 도시의 광장마다 깃발들이나부꼈다. 엘리베이터를 타며 내 눈으로 목격한 것이다.나 말고는 모두 직업이 있으니 엘리베이터는 텅 비어 있었다.귀지는 파냈습니까?네, 식수대에서 질질 떨어지는..

죽어서도 울었던 서화가(書畵家)

- 2015년 이후 복원된 삼전도비(三田渡碑)의 모습(서울 송파구 잠실동) -  삼전비(三田碑)는 병자호란 때 청(淸) 나라에 패배해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고, 청태종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적은 비석이다.조선 인조 17년에(1639)에 세워진 비석으로 높이 3.95m, 폭 1.4m이고, 제목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로 되어 있다. 이 삼전비(三田碑)의 비명을 쓴 서화가가 오준(吳竣 = 禮曹判書예조판서·提學제학)이다.오준(吳竣)은 이조참판을 지낸 오백령(吳百齡)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증 참의(贈參議) 고경룡(高慶龍)의 딸이다.  그는 당대 절세의 명필이었기로 호장(胡將) 앞에 화의를 표하는 굴욕의 삼전비(三田碑) 문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이 비문 쓴 것을 두고 마음이 괴로웠다.이 굴..

굴비

"굴비 두름이라도 있어야 모처럼 올라오신 시부모님 대접을 할 수 있을 텐데 이를 어쩌나.""베란다에 놓아둔 굴비에서 콤콤한 냄새가 난다." '굴비'는 '소금에 약간 절여서 통째로 말린 참조기'이다. 세는 단위는 마리, 손(2마리), 두름(20마리)이다. 예전부터 영광굴비가 유명했다. 굴비란 말은 말린 조기 모습에서 따왔다는 설이다.조기를 짚으로 엮어 말리는 과정에서 점점 머리와 꼬리가 아래로 쳐지는데, 조기의 굽은 등을 보고 '굽이'라고 부르던 것이 점차 구비(仇非), 굴비의 형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 900년 전 고려시대에 '이자겸의 난'을 일으킨 이자겸이 진상한 굴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이자겸은 인종의 외척세력으로 왕보다 더 높은 권력을 차지하려 반란을 일으켰다.이자겸은 인종의 외할아버지이며, ..

바라

자바라. 놋쇠를 징 모양으로 만든 악기.  袈裟(가사) 벗어 메고 袈裟(가사) 벗어 메고맨몸에 바라를 치며 춤을 추리라 (신석초, '바라춤 序章서장', "석초시집", p. 85) 내 간 뒤에도 민족은 있으리니스스로 울리는 自由(자유)를 기다리라그러나 내 간 뒤에도 신음은 들리리니네 破漏(파루:'바라'의 원래 말.)를 소리없이 치라 (설정식, '鐘종', "해금시인선", p. 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