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첼란(Paul Celan) 4

파울 첼란(Paul Celan)

눈 하나 열린 오월 빛깔, 서늘한, 시간 이제는 부를 수 없는 것, 뜨겁게 입안에서 들린다. 다시금, 그 누구의 목소리도 없고, 아파 오는 안구의 밑바닥. 눈꺼풀은 가로막지 않고, 속눈썹은 들어오는 것을 헤아리지 않는다. 눈물 반 방울, 한층 도수 높은 렌즈, 흔들리며, 너에게 모습들을 전해 준다. * 눈 하나 : Ein Auge 첼란의 시에서 빈번히 나오는 고통의 심상이다. 감기지 못한 눈, 뜬 채로 굳어진 눈, 생명의 물기를 잃어버린 눈, 본 것이 준 고통이 각막에 지워지지 않은 상흔으로 남아 지층에 총총히 박혀있는 눈 등. 이 시는 에 수록되어 있다. * * * * * * * * * * * * * * * * 파울 첼란(Paul Celan, 본명: 파울 안첼 Paul Antschel, 1920년 11..

파울 첼란(Paul Celan)

어느 돌을 네가 들든 어느 돌을 네가 들든 - 너는 드러내 버린다. 돌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벌거벗긴 그들은 이제 짜임을 새롭게 한다. 어느 나무를 네가 베든 - 너는 짜 맞춘다. 그 위에 혼(魂)들이 또다시 고일 잠자리를, 마치 흔들리지 않을 듯이 이 영겁(永劫) 또한. 어느 말을 네가 하든 - 너는 감사한다 사멸(死滅)에. * * * * * * * * * * * * * * * * 파울 첼란(Paul Celan, 본명: 파울 안첼 Paul Antschel, 1920년 11월 23일 ~ 1970년 4월 20일 향년 49세)은 루마니아 출생의 독일어 시인이다. 처음에는 의학을 공부하였으나 전쟁으로 중단하고, 소련군 점령 후에는 빈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최초의 시집을 발표하였다(1947). 194..

파울 첼란(Paul Celan)

흑암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주여. 잡힐 듯 가까이. 이미 잡혀서, 주여, 저희가 하나하나의 몸이 당신의 육신인 듯, 서로를 움켜쥐고 주여. 기도하소서, 주여 저희에게 기도하소서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바람에 뒤틀린 채 저희가 갔습니다 향하여 갔습니다. 물 괸 웅덩이와 분화구를 찾아 몸을 굽히려고. 물 마실 곳으로 갔습니다, 주여. 피였습니다, 그건 당신께서 흘리신 피였습니다, 주여. 그것이 반짝였습니다. 그것이 우리 눈에 당신의 형상을 비추었습니다, 주여. 눈과 입이 저렇듯 열려 있고 비어 있습니다, 주여. 저희가 마셨습니다, 주여. 피와 그 피 속에 잠겨 있는 형상을, 주여. 기도하소서, 주여.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 흑암 : '어둠' 외에도 '죽음의 밤'이라는 뜻도 있는데, 특히 예수가 십..

파울 첼란(Paul Celan)

죽음의 푸가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저녁에우리는 마신다 점심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밤에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그는 그걸 쓰고는 집 밖으로 나오고 별들이 번득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사냥개들을 불러낸다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유대인들을 불러낸다 땅에 무덤 하나를 파게 한다그가 우리들에게 명령한다 이제 무도곡을 연주하라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밤에우리는 너를 마신다 아침에 또 점심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