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암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주여.
잡힐 듯 가까이.
이미 잡혀서, 주여,
저희가 하나하나의 몸이
당신의 육신인 듯, 서로를 움켜쥐고
주여.
기도하소서, 주여
저희에게 기도하소서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바람에 뒤틀린 채 저희가 갔습니다
향하여 갔습니다. 물 괸 웅덩이와
분화구를 찾아 몸을 굽히려고.
물 마실 곳으로 갔습니다, 주여.
피였습니다, 그건
당신께서 흘리신 피였습니다, 주여.
그것이 반짝였습니다.
그것이 우리 눈에 당신의 형상을 비추었습니다, 주여.
눈과 입이 저렇듯 열려 있고 비어 있습니다, 주여.
저희가 마셨습니다, 주여.
피와 그 피 속에 잠겨 있는 형상을, 주여.
기도하소서, 주여.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 흑암 : '어둠' 외에도 '죽음의 밤'이라는 뜻도 있는데, 특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직후, 골고다 언덕을 뒤덮은 어둠을 가리킨다.
첼란이 독일어를 두고 굳이 라틴어로 제목을 쓴 것은, 그로 인해 덧붙여지는 기독교적 의미를 신이 인간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이 뒤집힌 기도 형태의 시에 수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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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 첼란(Paul Celan, 본명: 파울 안첼 Paul Antschel, 1920년 11월 23일 ~ 1970년 4월 20일 향년 49세)은 루마니아 출생의 독일어 시인이다.
파울 첼란은 1920년 루마니아 북부 부코비나의 체르노비츠에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물한 살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체르노비츠가 유대인 거주 지역(게토)으로 확정됐으며, 독일군이 도시를 점령한 후,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갈 때 첼란의 가족도 포함됐다.
강제노역을 하던 중 부모가 처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첼란 역시 가스실 처형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이후 끔찍한 기억에 고통스러워하며 삶을 이어 갔다.
종전 후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번역과 출판 일을 하다가 오스트리아 빈으로 건너가 첫 시집 <유골 항아리에서 나온 모래>를 발표했다.
1948년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여, 센 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기까지 꾸준히 시작(詩作) 활동을 해 모두 7권의 독일어 시집을 남겼다.
1958년 브레멘 문학상을, 1960년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