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프랑스

파울 첼란(Paul Celan)

높은바위 2023. 12. 11. 07:35

 

죽음의 푸가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점심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그는 그걸 쓰고는 집 밖으로 나오고 별들이 번득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사냥개들을 불러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유대인들을 불러낸다 땅에 무덤 하나를 파게 한다

그가 우리들에게 명령한다 이제 무도곡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아침에 또 점심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공중에선 비좁지 않게 눕는다

그가 외친다 더욱 깊이 땅나라로 파 들어가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노래하고 연주하라

그가 허리춤의 권총을 잡는다 그가 총을 휘두른다 그의 눈은 파랗다

더 깊이 삽을 박아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계속 무도곡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낮에 또 아침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가 외친다 더 달콤하게 죽음을 연주하라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가 외친다 더 어둡게 바이올린을 켜라 그러면 너희는 연기가 되어 공중으로 오른다

그러면 너희는 구름 속에 무덤을 가진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점심에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저녁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의 눈은 파랗다

그는 너를 맞힌다 납 총알로 그는 너를 맞힌다 정확하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타락 마르가레테

그는 우리를 향해 자신의 사냥개들을 몰아댄다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 하나를 선사한다

그는 뱀들을 가지고 논다 또 꿈꾼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 마르가레테는 전형적인 독일 여인 이름이고, 줄라미트는 전형적인 유대 여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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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죽음의 푸가’는 원래 제목이 ‘죽음의 탱고’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7년 한 잡지에 발표되었다가 1952년 펴낸 시집 <양귀비와 기억>에 수록되었다.

이 시를 통해서도 우리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벌어졌을 법한 비참상을 그려 볼 수 있다.

이 시에는 지극히 수세에 몰려 있는 ‘우리’와 점점 지시와 요구가 난폭해지는 ‘한 남자’가 대치 관계 아래 등장한다.

‘우리’가 하는 행위는 검은 우유를 마시는 것, 무덤을 파는 것뿐이다.

순종을 버리고 맞서서 반항할 위치에 있지 않다.

 

‘검은 우유’는 죽음의 은유로 읽힌다.

‘무덤’은 학살당한, 무력하기만 했던 이들의 시체가 묻힐 매장지로 읽힌다.

이에 반해 ‘한 남자’는 몹시 거칠고 사나운 권력자의 함의로 읽힌다.

적의에 차 명령하는 그는 뱀을 갖고 있고, 사냥개를 불러내고, 마침내 살해하고, 주검을 묻게 한다.

‘마르가르테’는 독일 여인을, ‘줄라미트’는 유대 여인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이 둘의 관계는 ‘한 남자’와 ‘우리’의 관계 그것과 대위적으로 진행되고 이해된다.

이 시를 통해 우리가 듣게 되는 것은 그 어떤 ‘호곡(號哭)’이다.

‘마신다’, ‘판다’ 등 동작어의 규칙적인 반복은 잔인함과 처참함의 절정으로 몰아가면서 독자들을 더 강도 높게 전율케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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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첼란(Paul Celan, 본명: 파울 안첼 Paul Antschel, 1920년 11월 23일 ~ 1970년 4월 20일 향년 49세)은 루마니아 출생의 독일어 시인이다.

파울 첼란은 루마니아 왕국 체르너우치에서 태어났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프리드리히 횔덜린,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잇는 독문학 역사상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이자, 20세기 독어권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파울 첼란은 1920년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온건파 시오니스트로 자식들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 반면, 어머니는 독문학 애호가였으며 독일어야말로 가문의 언어임을 피력했다.
 
10대의 첼란은 유대계 사회주의 조직에 참가했고, 스페인 내전에서는 공화파를 지지한다.
 
1938년, 첼란은 의학을 공부하고자 했으나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오스트리아 병합으로 인해 비엔나에서 공부할 수 없게 되었고, 루마니아의 학교들은 유대인 할당제를 실시하며 입학이 힘들어졌다.
첼란은 학업을 위해 프랑스 투르로 향하는데 베를린에서 체류하던 중, 수정의 밤 사건을 목도하고 자신의 삼촌을 만나게 된다.
이듬해 첼란은 고향으로 돌아오고 문학과 로망스어를 공부한다.


직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942년에는 나치 친위대와 루마니아 동맹군이 체르나우치를 점령한다.
첼란은 체르나우치의 유대교 회당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고 게토로 강제 이주당한다.
강제 노역과 핍박 속에서도 첼란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번역하고, 시를 창작하는 등 문학에 몰두한다.
 
1942년 부코비나 주지사는 유대인들의 체포 및 추방을 시행했고, 첼란은 부모님을 설득하여 해외로 피신하려 한다.
그러나 첼란이 집을 비운 사이 부모님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용소로 끌려갔으며, 아버지는 발진티푸스로, 어머니는 총살로 사망한다.
1943년 첼란은 몰도바의 수용소로 이송되었고, 이때 부모님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이후 1944년 소련군의 진격으로 해방될 때까지 노동수용소에 수감된다.

전쟁이 끝난 후 첼란은 팔레스타인으로의 이민도 고려했지만, 체르나우치를 떠나 부쿠레슈티로 이주한다.
이 시기 다양한 가명을 사용하고, 번역 작업과 시 창작에 몰두하며 활발한 문학 활동을 보인다.
 
1947년, 루마니아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첼란은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이주하게 된다.
 
1948년, 첼란은 자신의 첫 시집인 <유골단지에서 나온 모래> Der Sand aus den Urnen를 출간했으며, 당시 마르틴 하이데거에 관한 논문을 마친 잉에르보르크 바흐만과 친구가 된다.
직후 첼란은 프랑스 파리로 거처를 옮겼으나 극심한 외로움과 고립감에 시달리게 된다.

1952년, 독일로 떠난 여행에서 문학 집단인 '47그룹'에게 낭독자로 초청받았고, 강제수용소 생활을 묘사한 <죽음의 푸가> Todesfuge를 낭독하며 명성을 얻게 된다.
같은 해 12월, 첼란은 화가이자 조각가인 지젤 레스트랑과 결혼한다.

이후 첼란은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독일어 강사로 활동했고, 꾸준히 번역 작업과 창작에 매진하였으며, 1955년에는 정식으로 프랑스의 시민이 된다.
 
이 시기 프랑스계 독일인 시인인 이반 골의 아내가 표절 의혹을 제시하며 첼란을 공격했고, 그는 핍박을 받는다는 박탈감에 시달린다.
 
이후 1958년에는 브레멘 문학상, 1960년에는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
 
1967년 아내와의 별거 생활을 하게 된다.
같은 해, 첼란은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시 낭독을 하는데 프라이부르크 대학에 재직 중이던 마르틴 하이데거가 그를 연구실로 초청하여 만남을 가지게 된다.
첼란은 하이데거가 나치 문제와 관련하여 진심 어린 말을 해주길 원했지만, 하이데거는 완강한 침묵으로 일관한다.

1970년 4월 20일, 첼란은 49세의 나이에 파리 센 강에 몸을 던지며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다.
 

* 저서

  • 유골단지에서 나온 모래 Der Sand aus den Urnen (1948)
  • 양귀비와 기억 Mohn und Gedächtnis (1952)
  •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 Von Schwelle zu Schwelle (1955)
  • 언어격자 Sprachgitter (1959)
  • 누구도 아닌 이의 장미 Die Niemandsrose (1963)
  • 숨전환 Atemwende (1967)
  • 실낱태양들 Fadensonnen (1968)
  • 빛의 압박 Lichtzwang (1970)
  • 눈의 부분 Schneepart (1971)
  • 시간의 농가 Zeitgehöft (1976)

 

파울 첼란의 독창적인 시는 작가나 시인뿐 아니라 철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자크 데리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모리스 블랑쇼 등이 첼란의 작품과 관련된 철학적 작업을 수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