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508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내

아내는 전화 상담원이고, 남편은 군인이다.맞벌이 부부가 다 그렇듯이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아내가 언제부턴가 눈이 피곤하다며 일찍 잠자리에 들곤 했다."병원에 안 가봐도 되겠어?""좀 피곤해서 그럴 거야 곧 괜찮아지겠지."이렇게 두 달이 지난 후에 병원에 갔더니 각막염이라고 했다.두 눈에 다 퍼져서 수술을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하지만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했다. 일주일 후에 아내는 수술을 받았다.회복하는데 한 3일 정도가 걸린다고 해서 입맛이 없는 아내를 위해반찬도 만들어다 주고 심심해할 때는 책도 읽어 주면서그동안 고생만 했던 아내에게 모처럼 남편역할을 하는 것 같아 행복했다.7일이 지난 후 눈에 붕대를 풀었다."나 보여?" 아내에게 물었다."아니 아직 안 보여"의사 선생님은 조금..

쥐와 가렴주구(苛斂誅求)

전라남도 고흥(高興) 앞바다 다도해에 이란 무인도가 있다.이 쥐섬에만은 소의 방목(放牧)을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고양이만큼 한 쥐들이 소를 잡아먹기 때문으로 알고 있었다.이 쥐섬에 대해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이 지역에서 채집되었다. 옛날에 흥양(興陽=高興의 옛 이름) 사람들은, 매일같이 관가에 소 한 마리씩을 바치게끔 되어 있었다.어느 하루 그 고을 백성이 빈손으로 관가에 들어섰다.고을원이 "왜 소가 없느냐"라고 물으니까, 호주머니 속에서 쥐 한 마리를 꺼내놓으며 "여기 소를 가져왔습니다" 하였다."그것이 무슨 소냐"고 물으니까, "쥐섬에서 소를 잡아먹고 자란 쥐이기에 소나 같습니다" 하였다.관리의 가렴주구에 대한 통쾌한 익살이다. 중국문헌인 《소부(笑府)》에도 이와 동계열의 소화(笑話)가..

소망에 관한 글

소망에 관한 글 나에게는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내 마음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는 것입니다.높아지기보다는 낮아질 때 마음이 따뜻해지기 때문입니다.나는 날마다 마음이 낮아지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내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해지는 것입니다.생각이 복잡할 때보다 단순해질 때 마음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나는 날마다 생각이 단순해지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소망은내 마음이 부유해지기보다는 가난해지는 것입니다.마음이 부유해질 때보다 가난해질 때 마음이 윤택해지기 때문입니다.나는 날마다 마음을 비워 내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나에게 소망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의 한 가지..

선약해(宣若海) 장군

병자난에 의롭게 죽은 선약해(宣若海=左水使좌수사·亭忠詞정충사, 1579년 ~ 1643년) 장군은 자는 백종(伯宗), 호는 강의재(剛毅齋)이다.본관은 보성(寶城)이며 보성선 씨 시조 선윤지의 10세 손이다. 자는 백종(伯宗), 아버지는 임진왜란시 최경장(崔慶長)의 부장으로 의병활동과 이순신(李舜臣) 막하(幕下)의 진도군수로 노량해전에 공을 세운 부사(府使) 선의문(宣義問)이다. 1605년(선조 38년) 무과에 급제,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1631년(인조 9년) 비변사낭청(備邊司郎廳)으로 있을 때, 문무의 재주를 겸비하였다고 추천되어 국서(國書)를 가지고 청나라 선양(瀋陽)에 사행(使行)하였다.이때 숭명배청(崇明排淸)의 대의(大義)에 입각하여 일을 처리하고 외국의 위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하여 돌아와서 ..

도시락의 비밀

오래전 이야기이다.가끔씩 머리카락이 섞인 도시락밥을 먹는 중학생이 있었다.게다가 심심찮게 모래까지 깨물리는 모양이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학생은 한 번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머리카락이 있으면 다소곳이 그것을 가려내고 모래가 씹히면조용히 그것을 뱉어낼 뿐이었다.어떤 때는 머리카락과 돌을 그냥 넘겨 삼키는 바람에 한동안목이 메이기도 하였다.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교실의 다른 아이들은 그 학생을 안쓰럽게여기면서 위생이 철저하지 못한 학생의 어머니를 비난했다.어쩌면 계모일지 모른다고까지 생각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교실에는 그 학생과 매우 다정하게 지내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하지만 친구도 그 학생의 집을 몰랐다.그 학생은 친구에게 한 번도 자기 집을 구경시켜 주지 않았던 것이다.하지만 이해심이 많은 ..

백정(白丁) 이야기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백정(白丁)은 군역의 의무를 지지 않는 일반 농민을 의미했다.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 고려시대의 천민 계층인 '화척'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다.화척은 여진·거란족 등 북방 민족의 후예로 유랑생활을 하며 소·돼지를 도살하고, 고리와 가죽신을 만드는 일을 하며 생계를 잇는 사람들이었다.세종대에 이들을 양인으로 대우해 주고자 백정이라 부르게 했다. 백정(白丁)은 여느 사람처럼 말을 타고 장가도 가지 못하였다.가마를 타고 시집을 가지도 못하였다.일생일대의 이 영광스러운 날에 말을 못 타고, 가마를 못 타다니... 하고, 몸부림을 쳤으나 관례가 그런 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그들은 신랑은 말 대신 소를 타고 신부는 가마 대신 널빤지에 얹혀, 장가를 가고 시집을 가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덮..

하늘로 간 딸에게 보내는 편지

한 아기아빠가.. 라디오에 보낸 사연내용입니다.안녕하십니까? 김승현 씨, 양희은 씨!저는 마산에 살고 있는 스물여덟 살의 아기아빠였던 이상훈이라고 합니다.저는 스물한 살에 아내와 결혼을 했습니다.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고 서툰 결혼생활에 기쁨도 있었습니다.그리고 스물두 살에 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얻었습니다.세상을 다 얻은 것보다도 더 기뻤습니다.정은이... 이정은.제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사랑스러운 딸이었습니다.퇴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면 밤늦도록 자지도 않고저를 기다렸다가 그 고사리 같던 손으로 안마를 해준다며제 어깨를 토닥거리다가 제 볼에 뽀뽀하며 잠드는 아이를 보며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그런데 99년 2월 29일, 2월의 마지막 ..

종교극단주의

미국의 뉴욕에서 일어났던 일이다.어느 신교의 목사가 유색인종 학대에 분개해서 그 악습을 반항하는 뜻에서, 자기의 딸을 흑인에게 시집보냈다.이것을 안 시민들은 곧 목사의 집을 습격했다.목사는 얻어맞고 겨우 죽음을 면했다. 집은 산산조각이 났다.불쌍한 건 딸이었다.딸은 시민들에게 사로잡혀 모욕을 혼자 받았다.그녀는 린치 당했다.그녀는 발가숭이 몸이 되어서 온몸에 골탄칠을 받았다.그녀는 털요에 뒹굴려 졌다.그리고 전신에 달라붙은 털을 옷 대신으로 해서 거리 한복판에 질질 끌려 다녔다. 오! 자유여, 네 이름은 악몽이다. 종교에 적힌 가르침을 맹신한 나머지 극단주의로 변하여, 종교의 본질을 상실하고, 수단에만 집착하는 일이 벌어진다.이들은 성소수자 및 다른 인종에 대해 차별적인 행동을 하는 호모포비아 및 인종 ..

매관매직(賣官賣職)과 황감역(黃監役)

한말 갑신(甲申:1884년, 고종 21년), 을유(乙酉:1885년, 고종 22년)년 이후부터 전국적으로 성행했던 매관매직의 악풍은 20여 년간을 휩쓸었다.매매된 관직은 주로 감사(監司), 목사(牧使), 부사(府使), 군수(郡守), 현감(縣監), 현령(縣令), 중군(中軍), 영장(營將), 도사(都使), 감역(監役: 조선 시대, 선공감(繕工監)에 둔 종구품(從九品) 벼슬을 이르던 말. 토목이나 건축 공사를 감독하였다.), 주사(主事), 참봉(參奉)이었고, 이 매관루트가 약 10여 루트로 형성되어, 그 정점에는 이왕가의 귀족, 외척, 대신, 근시여관(近侍女官), 그리고 일본, 노국, 중국 등 외세의 권신 등이 앉아 있었다. 이 루트 간의 암목과 경쟁으로 매관매직의 단가는 마구 상승하였다.일례를 들면 5만 량으..

송재(松齋) 서재필(徐載弼)과 집안 이야기

갑신정변(甲申政變 : 조선 말기, 1884(고종 21)년에 김옥균(金玉均), 박영효(朴泳孝), 홍영식(洪英植) 등의 개화당이 독립적인 정부를 세우기 위하여 일으킨 정변을 이르던 말. 이 일이 일어난 지 이틀 만에 민 씨 등의 수구당(守舊黨)과 중국 청나라 군사의 반격으로 실패하였다.)의 실패로 샌프란시스코에서 가구상의 광고전단을 붙이고 다녔던, 전라도 동복군(현 보성군) 출신 서재필(徐載弼 : 1864년 1월 7일 ~ 1951년 1월 5일)은 어느 한국사람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둘째 아우 서재창(徐載昌=弘文館 副提學홍문관 부제학)은 연좌제의 포망(捕網)을 피해, 상노(床奴)의 등불을 앞세우고, 안동병문(安洞屛門)을 빠져 피신하려다가 붙잡혀 타살당했다.그의 부인 광산김 씨(光山金氏)는 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