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525

정극인(丁克仁)의 향치주의(鄕治主義)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 1401년 ~ 1481년)은 세종 때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며, 문종 때 학행으로 추천을 받았다. 1453년 단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에 이르렀으나, 계유정난으로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사퇴하고 고향인 태인으로 내려가 후진 양성에 힘썼다. 1472년 성종 때 후진 양성에 노력한 공으로 3품 교관이 되었다. 한국 최초의 가사 작품인 〈상춘곡〉을 지었으며, 사후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불우헌집》이 있다. 그는 늘그막에 등과 하여 나이 70에 정언(正言)으로 하직, 태인에서 살면서 속칭 향치(鄕治)에 수범을 보였다.향치라 함은 지방관치(官治)가 아니라 지방자치(自治)를 뜻하며 미비한 행정력의 보비를 위해 현군은 이를 특히 장려했고, 또 현국자들은 이를 자신들이 해야 할..

주는 걸 아는 사랑

어느 마을에 아기가 태어났다.그 집을 방문한 한 낯선 노인이 아이를 축복하며 산모에게 말했다. "이 아이를 위해 한 가지 소원을 말해 보시오. 들어줄 테니..." 아이의 어머니는 한참 동안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말했다. "이 아이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은 아이가 되게 해 주세요." 어머니의 소원대로 아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아이가 가끔 씩 못된 장난을 쳐도 사람들은 그저 귀여워하기만 했다.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는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점점 버릇이 나빠졌다.어른이 되어서도 사랑을 받으려고만 할 뿐...베풀 줄 몰랐던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졌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그는 서서히 자신의 허황된 생활이 싫어지기 시..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의 슬견설(虱犬說)

이규보(李奎報, 1169년 1월 15일(음력 1168년 12월 16일) ∼ 1241년 10월 8일(음력 9월 2일) 강화도 사망)은 고려의 문신이자 시인이다.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본관은 황려(黃驪). 초명은 이인저(李仁氐),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백운산인(白雲山人)이며, 대몽항쟁시기에 피난 수도가 된 강화도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생을 마감한 그곳에 묻혔다. 시호는 문순(文順)이다.고려 무인 집권기 최 씨정권에 순종하며 활동한 문인 중의 한 사람이다.이규보가 남긴 시와 문장은 고려시대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규보가 쓴 이 작품은, 선입견을 버리고 사물의 본질을 올바르게 파악할 것을 깨우치게 하는 한문 수필로, 사물의 이치를 풀이하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서술..

일곱살 꼬마의 편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난 그날도 평소처럼 집 앞 횡단보도를 걷고 있었다.난 그만 시속 80km로 달리는 차를 못 보고 거기서 차와 부딪혀 중상을 입었다.결국 난 응급실에 실려 갔고 위독한 생명을 기적적으로 찾았다.그러나 의식이 돌아오는 동시에 난 깊은 절망에 빠졌다.그렇다. 난 시력을 잃었던 것이다.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난 너무 절망했고 결국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면서 난 꼬마를 만났다.그녀는 7살밖에 안 되는 소녀였다."아저씨, 아저씨 여긴 왜 왔어요."" 야, 꼬마야! 아저씨 귀찮으니까 저리 가서 놀아."" 아, 아저씨 왜 그렇게 눈에 붕대를 감고 있어요. 꼭 미라 같다"" 야! 이 꼬마가 정말, 너 저리 가서 안 놀래."꼬마..

한국의 치부(恥部) 유자광(柳子光)

세조정난공신인 유자광(柳子光)은 선비를 대량학살한 갑자사화의 원흉이요, 연산(燕山) 악정에 영합하는 등 보신(保身)을 위한 지조무화(無化)의 전통적 한국의 치부(恥部)를 대표하는 표본적 인물이었다. 중종반정은 이 연산악정에 대한 쿠데타였고, 갑자사화에 죽은 선비들의 복수 쿠데타였다.그러기에 유자광은 연산군 다음으로 쿠데타에 의해 제거돼야 할 인물이었다.한데 유자광은 반정 후에도 계속 세도를 누렸고, 오히려 그 반정공신(反正功臣)으로 녹훈(錄勳)되기까지 하였다.역사의 익살도 이에 더할 수 없는 노릇이다.이 같은 역설의 처세(處世)를 해내는 그 인물자체에서 한국인의 전통적인 제거돼야 할 부정적 가치의 성향을 짚어볼 수가 있겠다. 그가 중종반정에서 제거되지 않았음은 반정의 수모자(首謨者)인 성희안(成希顔)과 ..

서커스

내가 십 대였을 때의 일이다.어느 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서커스를 구경하기 위해 매표소 앞에줄을 서 있었다.표를 산 사람들이 차례로 서커스장 안으로 들어가고,마침내 매표소와 우리 사이에는 한 가족만이 남았다. 그 가족은 무척 인상적이었다.열두 살 이하의 아이들이 무려 여덟 명이나 되는 대식구였다.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결코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하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비싸진 않아도 깨끗했고,아이들의 행동에는 기품이 있었다.아이들은 둘씩 짝을 지어 부모 뒤에 손을 잡고 서 있었다.아이들은 그날 밤 구경하게 될 어릿광대와 코끼리, 그리고온갖 곡예들에 대해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들이 전에는 한 번도 서커스를 구경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날 밤은 그들의 어린 시..

조불출이(趙不出伊) 이야기

지난 "포수 한성순(韓性純) 이야기"에 이은 또 다른 우직한 한국인의 기질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 가려한다. 양근(楊根 : 경기도 양평)에 사는 가난한 조불출이(趙不出伊)는 홀아비 아들로 자라, 서른 살이 되도록 장가를 가지 못했다.보기에 흉한 용모고, 또 미련하며 세사에 머리가 좀 떴기에, 사람들은 놀림감으로 밖에 상종해주질 않았다.한데 동네 상머슴 세 곱의 일을 하며, 힘도 세 곱을 썼고, 밥도 세 곱을 더 먹었다.그는 우직하였다. 이 불출이가 정다산(丁茶山)의 형제인 천주학의 정약종(丁若鍾)의 집에 드나들면서 가 되었고, 정약종(丁若鍾)이 가장 믿는 신도가 되었다.1,800년 4월, 여주의 교도 이중배(李中培)의 집에 연락 갔다가 잡혀, 여주 관가에서 배교(背敎)를 강요받았다.그는 수월스레 배교 방..

노란 손수건

남쪽으로 가는 그 버스 정류소는 언제나 붐비었다. 생기 찬 모습의 젊은 남녀 세 쌍이 까불거리며 샌드위치와 포도주를 넣은 주머니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플로리다주에서도 이름 높은 포트 라우더데일이라는 해변으로 가는 버스였다. 승객이 모두 오르자 버스는 곧 출발했다. 황금빛 사장(沙場)과 잘게 부서져 오는 하얀 파도를 향하여. 차장 밖으로 추위 속에 움츠러든 회색의 뉴욕 시가가 뒤로 뒤로 미끄러져 흘러갔다.세 쌍의 남녀들은 알지 못한 곳으로의 여행이 주는 흥분 때문에 계속 웃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들도 뉴저어지주를 지나갈 무렵쯤 되어서는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회복하여 조용해져 가고 있었다.그들의 앞자리에는 몸에 잘 맞지 않는 허술한 옷차림의 한 사내가 돌부처처럼 묵묵히 앞쪽만 응시하고 앉아 있었다. 먼지..

포수 한성순(韓性純) 이야기

전남 구례사람 한성순(韓性純)은 한말의 명포수였다.어찌나 우직(愚直)했던지 통칭 '우포수(愚砲手)'로 불리었다. 50리의 산길을 밤낮 가림 없이 이웃처럼 넘나들며, 다정히 놀던 황사중(黃仕中=光陽광양)이 1906년에 항일의병을 일으켰을 때, 그는 위태로운 그 일을 일으킨데 반대하였고, 또 참여할 것을 거절하였다.배운 것도 없고 소견도 좁길래, 그 의병의 뜻이 뭣이며, 또 의로운 것, 또 나라라는 것을 몰랐다.알아도 그의 생각으로 별 것이 아니었다.이것은 한말의 서민들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었을 것이다. 마을이 왜군에게 포위되어, 의병대장 황사중(黃仕中)이 자수하지 않으면, 마을을 태우고, 동민을 학살하겠다는 포고를 내렸다.그가 진중에 잡혀갔다는 말을 듣고, 우포수는 엽총을 들고 왜군영에 달려갔다.그는 단신..

통근버스 놓친 날

그날도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섰습니다.이윽고 저만치에 통근버스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그런데 웬일인지 버스가 내 앞을 쌩 하고 지나치는 것이었습니다.저와 함께 통근버스를 기다리던 다른 한 직원이 지나간 버스의뒤꽁무니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제게 물었습니다."저 버스, 통근버스 아닙니까?""그런 것 같은데 그냥 가버리네요."저 역시 황당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그러는 중에 택시 한 대가 우리 앞에 서더니 나이 지긋해 보이는기사 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우리에게 물었습니다."방금 지나간 버스가 회사 통근버스 아닌가요.""맞는데요...."그러자 기사 아저씨는 우리에게 얼른 택시를 타라고 손짓했습니다.영문도 모른 채 차에 오르자 아저씨는 다음 정차 지점까지 버스를쫓아가자고 했습니다.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