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498

스승과 제자

어느 고매(高邁)한 스승이 임종의 자리에서 자신이 가장 아끼던 제자를 불렀다.스승이 베개 밑에서 한 권의 책을 꺼냈다. 모든 사람이 그 책이 과연 무슨 책인지 궁금해하였다.스승은 이제껏 아무에게도 그 책만은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한밤에 제자들이 가끔 열쇠 구멍을 통해 훔쳐보노라면 스승이 혼자 그 책을 읽고 있곤 했었다.'무슨 책일까? 스승님은 그 책을 왜 그렇게도 비밀시 하는 걸까?'스승이 방을 비울 때면 그 방은 언제나 잠겨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 방에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랬으므로 그 책이 무슨 책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스승은 아끼는 제자를 불러놓고 말했다."이 책을 잘 간직하거라. 여기에 내가 가르친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이 책은 내 스승이 내게 주셨던 책이다. 이제 내가 그대에게 이..

전남 보성(寶城)의 열녀들과 또 다른 사랑 이야기

보성(寶城)의 진주 소 씨(晉州 蘇氏) 삼여걸(三女傑)은 상향(上向)성 양성(陽性) 기질의 표현이다. 정유난(丁酉再亂:1597년, 선조 30년)에 왜적이 소안전(蘇安田)의 처 황(黃) 씨를 겁탈하려 들었다.손으로 앙칼스럽게 할퀴자 군도로 팔을 잘라버렸다.발길로 머리를 차 실신시키자 발을 잘라 버렸다.소몽참(蘇夢參)의 처 김 씨(金氏)는 달려드는 왜적의 국부를 물어 죽였다.소동하(蘇東河)의 처 조 씨(趙氏)는 겁탈저항에 왜적이 눈알을 빼자, 흐르는 피를 받아 적의 안면에 뿌리고, 허둥지둥한 틈을 타 도망쳐 나와 투신했다. 임란에 왜적이 朝鮮義士)>라고 유일하게 존대한 송제(宋悌=高興고흥)의 처 구(具) 씨는 손가락을 끊어, 방벽에 의시(義詩)를 써놓고 죽었다.의병 박제(朴悌)의 처 송 씨(宋氏=宋象賢송상현..

행복한 사람

어느 나라에 모든 것이 풍족한 왕이 살고 있었다. 이 왕이 이상한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놀란 왕자들과 신하들은 전국의 용하다는 의원을 불러들여 진찰해 보았지만,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 없는 희귀한 병으로 판명되었다. 그런데 한 시골의사가 왕을 진맥해 보고는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입어야 병이 낫는다는 처방을 알려 주었다.왕자와 신하들은 전국적으로 흩어져 행복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을 만나기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이 사람이다」고 생각하고 다가가 보면 그에겐 몇 가지의 불만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었다.부자도, 명예가 있는 자도 모두 불행한 사람들이었다. 왕자는 크게 실망을 하고 궁궐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그때 산속 어디선가 도란도란 얘기하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사육신 박팽년(朴彭年) 일가의 멸족

집현전 선비에 신숙주, 최항, 이석형, 정인지 등이 박팽년, 성삼문, 유성원, 이개, 하위지와 함께 모두 한때 이름을 날렸는데, 성삼문은 문란(文瀾)이 호방하나 시에는 짧고, 하위지는 대책(對策)과 소장(疏章)에는 능하나 시를 알지 못하고, 서원은 천재가 숙성하였으나 본 것이 넓지 못하고, 이개는 맑고 영리하여 높이 빼어났으며 시도 또한 뛰어나게 맑았으나 제배들이 모두 박팽년을 추앙하여 집대성(集大成)이라 하였으니 그는 경학, 문학, 필법이 모두 능함을 이름이다.그러나 참화를 입어서 저술한 것이 세상에 남지 못하였다.《慵齋叢話용재총화》 세조가 육신들에게 형을 줄 때에 김질(金礩)로 하여금, 술을 가지고 옥중에 가서, 옛날 태종이 정몽주에게 부르던 노래를 읊어 그 마음을 시험했었다.이때 성삼문은 정몽주의 ..

이씨네와 김씨네

옛날 어느 마을에 이씨네와 김씨네라는 대조적인 두 집안이 있었다.김씨네는 무척 가난하고 자식들도 많았지만. 늘 화목해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반면 이씨네는 집안살림도 넉넉하고 자식도 적었지만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이 서로 다투고 시끄럽기만 했다.이 씨는 김씨네가 뭣 때문에 매일 즐거운 것인지 의아해하던 중에, 하루는 그 까닭을 물어보기 위해 김 씨 집을 찾았다.이때 갑자기 김씨네 막내아들이 뛰어들어오며 외쳤다.『아버지 큰일 났어요. 소가 보리밭에 들어가 보리를 마구 뜯어먹고 있어요.』이 말을 들은 식구들은 모두 집 앞 보리밥으로 달려갔다. 가보니 소가 보리를 뜯어먹고 있다가 사람들이 몰려오자 놀라서 이리저리 뛰며 보리를 마구 짓밟는 것이 아닌가.온 식구들이 합심하여 간신히 소를 붙잡아 외양간에다 넣었..

한니발의 초상화

​한니발 바르카(𐤇𐤍𐤁𐤏𐤋𐤟𐤁𐤓𐤒, Hannibal Barca, 기원전 247년 ~ 기원전 183년 또는 기원전 181년, 향년 64세-66세)는 고대 카르타고 공화국의 총사령관으로, 세계사에서 카르타고를 대표하는 위인, 명장이자 조국 카르타고를 꺾은 강대국 로마를 소수의 병력만으로 연파해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로마 최대의 숙적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다.오죽했으면 로마인들이 우는 아이를 나무랄 때 하는 말이 "한니발이 문 앞에 와 있다(Hannibal ad portas)"였다. 로마의 사료에도 한니발의 인격에 대한 평가는 상충되는 내용이 많다.대체로 로마의 역사가들은 한니발이 무자비하고 잔혹했다고 기록했다.한니발의 실제 인성과 별개로 로마인들은 그렇게 느꼈을 수밖에 없긴 하다. 마키..

고려의 절창(絶唱) 정지상(鄭知常)

고려 최고의 시인 정지상(鄭知常)은 고려의 절창(絶唱) 12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정지상은 당시 개경 문단을 주름잡던 김부식과 역사적으로 최대의 라이벌 관계에 놓인다. 역사가이며 유학자였고, 뛰어난 문재를 발휘했던 김부식이 개경 문단을 독식하던 시절, 점차 정지상의 이름이 문단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곧이어 정지상은 뛰어난 문재를 발휘하며 개경 문단의 중심이 되었고, 그의 시 「송인」이 개경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개경 문단에서 쌍벽을 이루며 활동하게 된 정지상과 김부식은 조정에서도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정지상은 특히 오언절구를 잘 지었다. 하루는 그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절간의 염불 소리 그치니새벽 하늘빛 맑은 유리로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풍경을 읊은..

씨족신 신앙(氏族神 信仰)

씨족신이란 씨족 공동체가 수호신으로 믿는 신이나 정령(精靈)을 말한다.한국의 신(神)들은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인 점에서 공통되고, 또 특수성이 있다.덕물산신(德物山神)인 최영(崔瑩) 장군, 흑석산신(黑石山神)인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극히 많은 그 일례다. 지리산의 마고(麻姑 : 단군신화 이전, 한반도 태초의 신),  단군은 장당경(藏唐京 : 단군왕검이 옮긴 도읍지. 황해도 구월산(九月山) 밑에 있었음)으로 옮겼다가 뒤에 돌아와 아사달(阿斯達)에서 산신(山神)이 되었고, 단종(端宗)은 태백산의 산신이 되고, 강릉의 김유신(金庾信) 장군 등 산신이 역사적 사건들과 연결되어 인격신으로 추앙되는 경우가 많다. 전남 순천(順天)의 신들은 씨족신인 점에서 이례적이다.순천김 씨(順天金氏) 시조인 신라 시대 김알지의..

전우치(田禹治)

전우치(田禹治, 조선 중종 ~ 명종, 생몰년 미상)는 조선 시대 각종 기록에서 등장하는 기인으로 실존인물이자, 고전 소설의 주인공이다.선도(仙道)로서 초자연적 일화를 많이 남긴 전우치(田禹治)는, 담양전씨(潭陽田氏)의 후손이다.호는 우사(羽士)이며, 도술을 부리는 조선시대 도사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그는 선술(仙術)에 의한 기담(寄談)을 많이 남긴 전설 속의 인물처럼 돼버렸다.《오산세림(五山說林)》, 《조야집요(朝野輯要)》에 그의 환상적 선술이 마치 사실인양 기록되고 있다.이를테면 송인수(宋麟壽), 신광한(申光漢) 등과 노는 자리에서, 그가 밥을 토하니까 밥티가 나비들이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는 둥. ―좌중에서 천상에 있는 천도(天桃)를 따올 수 있겠느냐고 했다.전우치는 쇠파리 수백 마리를 잡아 하늘로 ..

맹문장(猛文將) 전임(田霖) 이야기

세조, 성종 때 청백리 전임(田霖=漢城判尹한성판윤)은 청백과 절의에 어찌나 날카롭고 위엄이 깍듯한지 이란 별칭으로 불리었었다.전임(田霖)이 판윤으로 있을 때, 왕자 회산군 염(檜山君 恬)의 집을 지나다가 말을 멈추고, 역사(役事)를 주관하는 이를 불러 다음과 같이 일렀다."집을 지음에 칸수와 높고 낮은 치수는 법도가 있으니, 네가 죽기를 싫어하거든 아예 지나치게 하지 말라."저녁때 그 사람이 마중 나와서 말했었다."많은 것은 헐고 긴 것은 끊어 감히 법을 범하지 않았습니다."전임이 말하기를,"애초에 제도를 어긴 것은 진실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이나, 이미 규정을 지켜 행했으니 용서한다. 후에 다시 범하면 마땅히 전의 죄까지 합쳐서 다스릴 것이다." 《寄齋雜記기재잡기》 이조 오백 년에 임금으로서 연산군의 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