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일곱살 꼬마의 편지

높은바위 2025. 5. 31. 06:23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난 그날도 평소처럼 집 앞 횡단보도를 걷고 있었다.

난 그만 시속 80km로 달리는 차를 못 보고 거기서 차와 부딪혀 중상을 입었다.

결국 난 응급실에 실려 갔고 위독한 생명을 기적적으로 찾았다.

그러나 의식이 돌아오는 동시에 난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렇다. 난 시력을 잃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난 너무 절망했고 결국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면서 난 꼬마를 만났다.

그녀는 7살밖에 안 되는 소녀였다.

"아저씨, 아저씨 여긴 왜 왔어요."

" , 꼬마야! 아저씨 귀찮으니까 저리 가서 놀아."

" , 아저씨 왜 그렇게 눈에 붕대를 감고 있어요. 꼭 미라 같다"

" ! 이 꼬마가 정말, 너 저리 가서 안 놀래."

꼬마와 나는 같은 301호를 쓰고 있는 병실 환자였다.

"아저씨 근데, 아저씨 화내지 말아. 여기 아픈 사람투성인데 아저씨만 아픈 거 아니잖아요. 그러지 말고 아저씨 나랑 친구 해요.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잘됐다."

"꼬마야. 아저씨 혼자 있게 좀 내버려 둘래?"

"그래 아저씨. 근데 언제라도 아저씨 기분 풀림 말해. 난 정혜야, 오정혜! 그동안 친구가 없어서 심심했는데 같은 병실 쓰는 사람이 고작 한다는 말이 귀찮다니, 이거 정말 서운해요."

그러면서 꼬마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다음 날이었다.

"아저씨, 그런데 아저씬 왜 이렇게 한숨만 푹푹 셔데?"

"정혜라고 했나? 너도 하루아침에 세상이 어두워졌다고 생각해 봐라. 생각만 해도 무섭지. 그래서 아저씬 너무 무서워서 이렇게 숨을 크게 내쉬는 거란다."

"근데, 울 엄마가 그랬어요. 병이란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내가 나 자신을 환자라고 생각하면 환자지만 나 자신이 환자라고 생각 안 하면, 환자가 아니라고. 그래서 난 절대로 날 환자라 생각 안 해요. 그러니까. 여기 있는 모두 다 불쌍해 보여. 정말 안쓰러워. 얼마 전 그 침대 쓰던 언니가 하늘에 갔어. 엄마는 그 언니는 착한 아이라서 하늘에 별이 된다고 했어. 별이 되어서 어두운 밤에도 사람들을 무섭지 않게 환하게 해 준다고..."

", 그래. 넌 무슨 병 때문에 왔는데?"

", 그건 비밀.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곧 나을 거라고 했어. 이젠 1달 뒤면 더 이상 병원 올 필요 없다고."

"그래? 다행이구나."

"아저씨, 그러니까 1달 뒤면 나 보고 싶어도 못 보니까, 이렇게 한숨만 쉬고 있지 말고 나랑 놀아줘. ? 아저씨."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비췄다.

그녀의 한 마디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마치 밝은 태양이 음지를 비추듯 말이다.

그 후로 난 그녀와 단짝 친구가 되었다.

"! 정혜야 주사 맞을 시간이다."

"언니, 그 주사 30분만 있다가 맞으면 안 돼? 나 지금 안 맞을래."

"그럼. 아저씨랑 결혼 못 하지. 주사를 맞아야 빨리 커서 아저씨랑 결혼한단다."

"!"

그리곤 꼬마는 엉덩이를 들이대었다.

어느새 꼬마와 나는 병원에서 소문난 커플이 되었다.

꼬마는 나의 눈이 되어 저녁마다 산책을 했고, 7살 꼬마 아이가 쓴다고 믿기에는 놀라운 어휘로 주위 사람, 풍경 얘기 등을 들려주었다.

"아저씨, 김 선생님이 어떻게 생겼는 줄 알아?"

"글쎄..."

"코는 완전 딸기코에다, 입은 하마입, 그리고 눈은 쪽제비같이 생겼다. 정말 도둑놈 같이 생겼어. 나 첨 병원 오던 날, 정말 그 선생님 보고 집에 가겠다고 막 울었어."

"크크크흐흐."

"아저씨 왜 웃어?"

"아니, 그 김 선생 생각하니까 그냥 웃기네. 꼭 목소리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탤런트나 성우처럼 멋진데 말이야."

"하하하하..."

"근데 정혜는 꿈이 뭐야?"

", 나 아저씨랑 결혼하는 거."

"에이, 정혜는 아저씨가 그리 좋아?"

"."

"그렇게 잘생겼어?"

", 그러고 보니까 아저씨 디게 못생겼다. 꼭 포켓몬스터 괴물 같애."

그러나 꼬마와의 헤어짐은 빨리 찾아왔다.

꼬마는 울면서,

"아저씨, 나 퇴원하면 꼭 찾아와. 알겠지? ? 약속."

"그래 약속."

우는 꼬마를 볼 수는 없었지만 가녀린 손가락에 고리를 걸고 약속을 했다.

 

2주 후, 나는 병원에서 퇴원했다. 그리고 또 2주일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최호섭 씨?"

". 제가 최호섭입니다."

"축하합니다. 안구 기증이 들어왔어요."

", 진짜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다.

 

일주일 후, 난 이식수술을 받고 3일 후에는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난 너무도 감사한 나머지 병원 측에 감사 편지를 썼다.

그리고 나아가서 기증자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던 중, 난 그만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기증자는 다름 아닌 정혜였던 것이었다.

나중에 알았던 사실이지만 바로 내가 퇴원하고 일주일 뒤가 정혜의 수술일이었던 것이었다.

꼬마는 백혈병 말기 환자였던 것이다.

난 꼬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꼬마가 건강하다고 믿었는데...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난 하는 수 없이 정혜의 부모님이라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많이 좋아했어요."

"."

"아이가 수술하는 날 많이 찾았는데..."

정혜의 어머니는 차마 말을 이어가질 못했다.

"정혜가 자기가 저세상에 가면 꼭 눈을 아저씨 주고 싶다고... 그리고 꼭 이 편지 아저씨에게 전해 달라고."

그 또박또박 적은 편지에는 7살짜리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저씨! 나 정혜야. 음 이제 저기 수술실에 들어간다. 옛날에 옆 침대 언니도 거기에서 하늘로 갔는데... 정혜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아저씨, 내가 만일 하늘로 가면... 나 아저씨 눈할께. 그래서 영원히 아저씨랑 같이 살께. 아저씨랑 결혼은 못하니까... 하지만 수술실 나오면, 아저씨랑 결혼할래. 아저씨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