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479

어머니와 아들

보름달이 뜬 깊은 밤, 멀리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어머니를 등에 업은 아들은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뎠다.등에 업힌 어머니는 잠이 들었는지 아무 기척이 없었다.늙은 노인을 산에 갖다 버리라는 국법을 따르기는 하지만, 분하고 원통해서 그대로 주저앉아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산중턱을 지나자 얼마 전부터 눈여겨봐두었던 조그만 바위굴이 나왔다.아들은 그 안에 들어가 마른풀을 쌓은 한쪽에 어머니를 눕히고 작은 이불을 어깨를 덮어 드렸다.그러자 또 눈에서 눈물이 어른거렸다."얘야, 어서 돌아가거라. 밤이 깊었구나."어머니가 염려하며 나직이 말하자 아들은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어머니, 이틀에 한 번씩 양식을 가지고 들르겠으니 부디 몸조심하십시오.""괜찮다...

극락과 지옥

극락과 지옥은 우리 자신 속에 존재한다.잠시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극락과 지옥을 오고 간다. 어느 날 일본의 백은 선사에게 한 무사가 찾아와서 물었다."스님, 극락과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입니까?""그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요?""저는 무사입니다." 그러자 스님이 큰 소리로 비웃었다."무사라고? 도대체 당신 같은 사람에게 호위를 맡기는 이가 누군지 궁금하군. 머저리같이 생긴 사람에게 생명을 맡기다니!"화가 난 무사는 허리에 찬 칼을 들었다."그래, 칼을 가졌군. 하지만 내 목을 자르기엔 그 칼이 너무 무딜 걸세!"무사는 더 이상 분을 참지 못하고 칼을 뽑아 들었다. "지옥의 문이 열렸구나!"조금의 동요도 없는 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당황한 무사는 크게 뉘우쳐, 칼을 제..

당신은 지금 누구의 나이를 살고 있는가?

수명(壽命, life span)은 생물의 목숨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다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의 기간이다.의사들과 생물학자들이 다년간 연구한 결과, 고대 인간의 자연수명의 경우는 38세이고, 현대 인간의 경우는 120세라고 한다.사람이 처음 생겨났을 때에는 지금처럼 목숨이 길지 않았다.그러나 생각할 줄 아는 존재였으므로 스스로 수명을 늘리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겨울이 오자 사람은 집을 짓고 그 속에서 따스하게 지냈다.추위가 점점 더해지고 큰 눈이 내리자,말이 참다못해 사람의 집으로 찾아와 집 안에 넣어달라고 사정했다.그러자 사람은 만일 너의 수명을 얼마쯤만 나눠준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고 말했다.얼어 죽게 된 말은 사람이 제시한 조건에 응했다. 얼마 있다가 이번에는 소가 왔다.역시 추워서 견딜 수 없으..

진리(眞理)를 찾아서

오래전 어느 마을에 한 남자가 살았다.그는 항상 진리를 찾기 위해 깊이 생각에 잠기기도 했고 고민도 많이 했다.어느 날 그는 사랑하는 애인도 버려두고 멀리 광야로 진리를 찾기 위해 떠났다.마침내 3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무엇인가를 얻은 그는 기쁨에 넘쳐 애인의 집에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똑똑똑""누구세요?""나예요.""돌아가세요. 이 집은 나와 네가 있는 곳이 아니랍니다."그는 다시 광야로 돌아갔고 또 3년이 흘렀다.이제 사람이 산다는 게 무언지, 인간의 사랑이 무언지도 알 것 같았다.그는 마을로 돌아와서 애인의 집 문을 두드렸다."똑똑똑""누구세요?""나는 당신입니다."문이 금방 열렸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 사랑이 애인을 사랑하는 것이든, 친구를 사랑하는 것이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든, 상대방의 ..

마음은 매일 다듬어야

부인이 넷인 사나이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선고받은 그는 평상시 첫째로 애지중지하던 부인에게 죽음에의 동행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색을 하며, "살아서는 함께 떨어질 수 없었지만, 죽음까지는 결코 동행할 수 없다."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너무도 낙심한 사나이는 둘째로 사랑하던 부인에게 말했으나, "가장 아끼던 부인도 안 가는데 내가 왜 갑니까?" 셋째 부인에게 말하니, "장지까지는 따라가지요."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평상시에는 돌아보지도 않던 넷째 부인에게서 사나이는 뜻밖의 대답을 듣게 된다.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끝까지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이 사나이는,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 당신에게 가장 큰 관심과 사랑을 베풀었어야 하는 건데...."라고 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

가장 가치있는 시간

인생은 시간으로 이어진다.많은 시간을 가진 사람이라도 낭비해서 좋은 시간은 조금도 없다.삶의 보람이 될 만한 일을 하고자 하던 사람이 어쩌다 자기가 가진 재능을 쓰지 못해, 그 재능이 녹이 슬어 버린다면 얼마나 한탄할까.중국 후한 말기, 촉(蜀) 나라의 유비(劉備)가 유표라는 사람 집에 의탁하여 살던 때였다.그때 유비는 조조와 협력하여 용맹한 장군 여포를 무찌르고,조조의 주선으로 좌장군에 임명되었지만,조조의 휘하에 있는 게 싫어 수도 허창에서 탈출했다.유비는 각지로 전전한 끝에 황족의 일족인 유표에게 의지하게 된 것이었다.그곳에서 그는 작은 성을 받아 4년 동안 지냈다.그 사이에 하북(河北)에서는 조조와 원소가 격돌하여 싸움을 되풀이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황하 이남 땅에서는 소강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그..

첩(妾) 이야기

첩(妾)은 아내가 있는 남자가 데리고 사는 내연녀(內緣女)를 말한다.  "한 바지 다리는데 두 다리미 부딪치는 소리"라면 첩을 두었다는 뜻이 되었다.낭군 바지 하나를 본처와 첩이 맞붙들고 다리는 투기장면의 묘사이다. 씨앗(妾:첩)을 뜯으러 간다 산 넘어 할퀴러 간다 동산 밭에 메마꽃 같이 시원스레 나앉아 있는 씨앗(妾)내 눈에도 저만한 각시임눈에야 오죽할까.                       본처가 첩을 쥐어뜯으러 갔다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맥없이 되돌아와서 부르는, 탐미(耽美) 무드가 넘치는 이 같은 아름다운 아량도 이 처(妻)와 첩(妾)의 공존풍토 형성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첩은 첩실(妾室)·소실(小室)·별가(別家)·별방(別房)·측실(側室)·작은집·작은마누라·작은 계집이라고도 하였다.우리나..

제주도의 미풍(美風)

제주도를 돌(石), 바람(風), 여자(女)가 많다고 하여, 예로부터 삼다도(三多島)라고 일컬어 왔다.또 도둑과 대문과 거지가 없어, 삼무(三無)의 따뜻한 인정(人情)의 섬으로 인지(認知)되어 있다. 삼무(三無) 가운데 "도둑이 없다는 것"은 미풍(美風)의 형벌규례 때문이었다고 한다.예전 제주도 남해안 귤밭에는 이색적인 형벌행형이 있었다.수십 년 전까지 이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유일한 특산물이고, 값도 비쌌던 귤을 몰래 도둑질 해가는 귤도둑이 잡히면, 부젓가락으로 훔칠 '도(盜)'자를 크게 파 도려낸, 나무 팻말을 목에다 끼워 두는 것이다.만약 잘 때건, 깰 때건, 그 '도적패' 팻말을 잠시라도 벗은 흔적이 보일 때는, 하루에 벌금 1전(錢)씩을 가중하였다.물론 '도적패'를 목에 두르고 다니는 데..

인성(人性)이 최고인 자녀 교육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아들 못난 건 제 집만 망하고, 딸 못난 건 양사돈이 망한다.'석가모니가 출가 이전에, 아내인 야소다라 왕비가 임신한 아이로 라훌라( Rāhula. 라운(羅雲) , 나후라(羅睺羅)라고도 함)라는 아들이 있었다.라훌라는 석가모니의 친아들이자 10대 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석가는 어린 아들 라훌라의 인성 교육에 신경을 썼다.라훌라가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마도 예니곱살 사미(沙彌) 시절이었을 것이다. 어린 라훌라가 여러 고승 대덕이 수행하고 있는 큰 방이나 뜰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떠들며 놀기만 하는 모습을 보고, 석가가 라훌라를 조용히 세면장으로 불렀다.라훌라가 세면장으로 오자 때마침 세수를 마친 석가는 빈 세숫대야를 발로 세게 차버렸다.그러자 세숫대야는 큰 소..

신앙(信仰)

사람들은 신앙(信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양분되어 있다.세계의 인구를 크리스천, 회교도, 불교도, 배물(拜物) 교인 등등으로 나눌 수 있다. 신(神)의 존재에 대해서도 여러 관점이 있다. 신이 우주에 대해 초월적으로 존재하며 늘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격적인 신이라는 유신론(有神論), 신을 우주 저 멀리에 초월해 있는 인격적인 것에서 찾지 않고 이성(理性)과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우리 곁에 펼쳐져 있는 자연(自然) 속에서 찾고자 하는 이신론(理神論), 우주 만물이 곧 신이라는 범신론(汎神論), 세계가 신에게 포함되나, 신이 세계 그 자체는 아닌 것을 말하는 범재신론(panentheism, 만유내재신론, 세계내재신론), '왜 신은 세계를 만들고 방관하는가.' 하는 질문과, 범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