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쉽게 볼 수는 없지만, 지금도 서울 원주민의 집이나 인사동 도기 파는 곳에서, 주먹만 한 "아도(啞陶)"라는 질그릇을 가지고 있는 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저금통 모양의 구형(球形)인, 이 질그릇 언저리는 "아도구(啞陶口)"라 하여, 저금통의 전구(錢口)처럼 기다랗게 입이 찢겨 있고, "아도귀(啞陶耳)"라 하여 양쪽에 구멍이 뚫어져 있다.
즉 귀인 셈이다.
며느리가 말대꾸를 잘한다든지 입심이 좋고 하면, 그것이 못마땅한 시어머니는 이 아도를 며느리에게 던져 줌으로써 무언의 훈계를 하였고, 또 구설수로 화를 당하면 아도 100개를 사서 문간에 쌓아놓기도 하였다.
입이 있되 말을 말고, 귀가 있되 듣지 않는 무간섭 안일주의의 상징으로서, 또한 가정교육의 귀감으로 삼았던 질그릇이다.
특히 사화(士禍)가 심했던 시대, 그리고 개화기의 외세가 난무하던 시대에 관직을 물러나는 선비들은, 이 아도 하나씩을 사들고 초야에 묻히는 것을 하나의 풍류로 알았다.
이 "아도(啞陶)"의 유래는 조선 건국 시 이태조가 정도전을 시켜 만들었는데, 입은 찢어져 있고 눈은 감겨 있는 얼굴 모양으로, 이 그릇을 지식인의 대문간에 하룻밤 새 100개씩 쌓아 놓으면 '말조심'하라는 경고의 뜻과 함께, 요시찰 인물임을 암시했다.
그래도 입이 험하거나 빳빳하면 끌어다가 고문을 가했다고 한다.
선비들 간에 정치 이야기가 나온다든지, 자기 소견을 말해야겠으나 그 말을 하면, 신상이 위태로와질 것을 알 때면, 그 선비는 말을 하는 대신 소매깃에 넣고 다니는 소형의 아도를 넌지시 꺼내어 보임으로써 말을 대신하였다.
이 벙어리 질그릇은 곡절 많은 한국의 정치 풍토와 매사에 소극성을 강요당한 정신적 전통과 야합되어 그같이 변질되어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