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248

고대 그리스:사포(Sappho)

아프로디테 찬가(Ode to Aphrodite) 죽지 않는 아프로디테여, 꽃으로 왕좌에 앉아 있는, 제우스의 딸, 오 무서운 마법사여, 이 슬픔과 이 고뇌로 내 영혼 을 꺾어라, 아가씨, 더 이상 그만! 다시 그 목소리를 들어라! 오, 듣고 들어라! 어서 오라, 그 섬의 새벽에서 왔듯이, 아버지의 황금빛 집에서 자비로 사포 에게 향하는 멍에의 차를 타고 날아가느냐! ... 기억한다: 빠르고 아름다운 참새들이 너를 이끌었고, 어두운 수확물 위로 날개를 빠르게 퍼덕였다, 창백한 하늘 아래로 내려가라, 번개가 곧 내리쳐라! 그리고 너, 가장 축복받고 빛나는 너여, 불멸의 눈꺼풀로 미소 지으며 내게 물었다: '처녀여, 너 사이에 무슨 일이 있니? 아니면 왜 나를 부르느냐?'이 미친 마음 속에서 다른 곳 보다 더..

국립국어원 다듬은 말(27)

1991년 순화자료집(1977~1991 종합)부터 2002년 순화자료집까지21,000여 개의 순화어를 종합한 국어 순화 자료. 번호다듬을 말원어다듬은 말270감람甘藍양배추 269 감내堪耐견딤268감광지感光紙해받이종이267감과앵도甘果櫻桃단앵두266감龕감실265갈판돌石展石갈판(saddle quern)264갈색조褐色藻갈색263갈색간그릇褐色磨硏土器갈색간토기(brown burnished pottery)262갈반병褐斑病갈색점무늬병261갈문병褐纹病갈색 무늬병

그리운 이여, 편히 가소서

흐르는 곡은, 인생노래 - 편히 가시게 * * * * * * * * * * * * * * * 그리운 이여, 편히 가소서 古岩 그리운 이여, 어찌 이리도 서둘러 떠나셨습니까.남겨진 우리는 그대의 이름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하염없이 눈물을 삼킵니다.손때 묻은 추억 하나, 따스했던 미소 하나까지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마음 깊이 새겨두었습니다.이제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이 가슴에 사무쳐 오늘도 조용히 눈물짓습니다. 부디, 우리의 슬픔은 뒤에 두고 그대 가시는 길..

가장 예쁘게 시를 짓는 시인 성운(成運)

조선 중기의 학자·시인·문신인, 성운(成運, 1497년(연산군 3) 음력 1월 16일 ~ 1579년(선조 12) 음력 5월 26일=향서원(享書院, 자는 건숙(健叔), 호는 대곡(大谷)이다.)은 이조사상 가장 맑게 숨어 산 사람으로 이름난 분이다.1531년(중종 26) 진사에 합격, 1545년(명종 즉위년) 성운의 형이 을사사화로 화를 입자 보은 속리산에 은거하였다.그 뒤 참봉·도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퇴하고, 선조 때도 여러 차례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은둔과 불교적 취향을 드러낸 시를 많이 남기고 있다. 서경덕(徐敬德)·조식(曺植)·이지함(李之菡) 등과 교유하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기묘사화, 을사사화에 실망한 그는 충청북도 보은(報恩) 종곡(鍾谷)에 숨어 살았는데,..

오귀스트 앙젤리에(Auguste Angellier)

내 고통은 내 삶의 중심에 있다 내 고통이 내 삶의 중심에 있듯이,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고통도 내 마음에 있다; 그리고 내 슬픔이 내 존재 깊은 곳에서 피를 흘릴 때, 내 슬픔의 깊은 곳에서 당신의 생각도 피를 흘린다. 내 슬픔이 해소되는 듯 보일 때, 그 안에는 더 먼 또 다른 고통이 떠오르는데, 그것은 희미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이 구절들 속 에서 그 자체가 그렇듯 희미한 상징일 뿐이다. 하지만 이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다, 가장 깊은 흐느낌 너머, 내 상처 입은 존재의 어두운 심연 속에 있다, 그리고 내 피에 잠기고, 그 피가 그 흐름에 굴러가며: 그리고 내 슬픔의 고통, 사랑하는 이여, 영원히 내 안에 표현되지 않을 것이다. * * * * * * * * * * * * * * ..

하롱하롱

꽃잎 따위가 가볍게 날리는 모습. 이울어 하롱하롱 지는 꽃닢,설지 않으랴, 푸른물에 실려가기, (정지용, '小曲소곡', "백록담", p. 63) 하롱하롱 흔들리는호롱불 석유내음 (유안진, '등잔', "그리스도, 옛 애인", p. 62) 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고이 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낙화', "적막강산", 196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