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479

괴로움도 함께 나눌 때

경기가 어려워지고 실직하는 가장들이 늘어나면서, '가족해체 현상'도 더 심해진다고 한다. 살림살이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우리 옛날 부모님 세대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통도 불편하고 먹을 것도 흔하지 않았다. 지금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는 살림살이였는데도 그 위기를 견뎌내는 힘만큼은 대단했다. 옛말에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똑같은 위기를 맞아도 뿌리가 튼튼한 가정은 그만큼 내성도 강하다고 하는데, 요즘 대부분의 가정은 그렇지 못하다. 부부간이나 친인척 간에도 그렇다. 좋은 일, 기쁜 일, 자랑할 만한 일은 잘 나누면서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숨기려고 한다. '아이들이 기죽는다.'라고. '가족들이 실망할까 봐.', '자존심 상한다.'라고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병만 크게 ..

늘 부드럽게 말하는 마음

아이들이 말하는 태도나 행동을 대하다 보면, 은연중에 그 부모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말씨가 거칠거나 행동이 폭력적이어서 자주 다투고 싸우는 아이들을 보면, 전혀 근거 없이 그러는 것이 아니다. 유치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다. 어쩌다 아이들 집에 전화할 일이 있어서 전화를 걸면, 남편이 전화를 받아서 아내를 바꿔줄 때 이렇게 말하는 가정이 있다. "야, 유치원 선생한테 전화 왔는데 받아봐!" 집안의 가장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내를 '야!"라고 부르고, 선생님을 '선생'이라고 함부로 말하니, 아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의 말과 태도는 그 생각과 마음의 표현이라고 한다. 아내를 '야!'라고 하는 말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읽히지가 않고, 선생님을 '선생'이라고 하는데 그 어디..

바른 말과 행동으로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구슬이 보배가 된다고는 하지만, 구슬을 꿰지 않고 그냥 두면 별반 가치를 갖지 못하게 된다. 불교의 인과법이 그와 비슷하다. 꽃씨를 놓고 봐도 꽃씨라는 원인에는 꽃이 될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다 꽃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씨앗이라는 원인에 흙이나 물, 햇빛, 바람 같은 조건이 더해져야 비로소 싹이 트고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씨앗이 그렇고 구슬이 그런 것처럼 우리 안의 불성도 그렇다. 석가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부처될 씨앗이 있다'고는 하였지만, '부처가 될 씨앗'이 있다고 해서 모든 중생이 다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꽃씨라는 원인에 꽃이 필 조건이 필요하고, 구슬이라는 원인에 보배가 될 조건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안의 ..

흔히 사람의 한평생을 '길'에 비유하기도 하고, 하루하루의 삶을 '배움'이나 '수행'에 비유하기도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또 짧은 것이 우리 인생이다. 세상의 수많은 생명 중에서 하필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도, 어지간한 인연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가 여간 소중한 시간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매일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열심히 일하고, 충분히 자고, 만족한 자신의 기호 시간을 가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름대로 수행을 하는 사람도 제 자신을 잘 보지 못하고, 늘 남에게 먼저 초점을 맞추기가 십상이다. 누군가 못마땅한 말을 한다거나 못마땅한 행동을 하면, '말을 왜 저렇게 할까? 행동을 또 왜 저렇게 할까?',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소중한 ..

망상(妄想)이 빚어낸 허상(虛像)

누구나 어린 시절에 비가 온 뒤 일곱 빛깔 무지개가 뜨면, '저기가 어디일까.' 궁금하고 신기해서 마냥 따라가보고 싶은 마음을 느낀다. 동화 중에서도 무지개를 따라간 한 소년의 이야기가 있다. 동화 속에 무지개를 쫓아간 소년은,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도록 끝내 무지개를 잡지 못했다. 무지개가 우리 눈의 착시현상에서 비롯된 신기루인 것처럼, 우리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여기는 것 역시 망상이 빚어낸 허상이라고 한다. 사실 행복에는 그 어떤 조건도 없는 법이다. 행복은 행복하려고 마음먹는 순간, 지금 여기에서 느낄 수 있는 '순간의 느낌'이라고 한다. "봄을 찾아 여기저기 들판을 헤매다 돌아와 보니, 집 마당에 매화꽃이 만발하였더라." 옛 조사 스님의 말씀처럼 참 행복은 어디 멀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

가슴 뛰는 삶

한동안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책 중에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다. 책은 읽지 않았다 해도 제목만큼은 익숙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책 제목도 제목이지만, 주위에 많은 사람이 얘기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슴 뛰는 경험이 얼마나 있었던가? 손가락으로 꼽기도 어렵다" 그저 남과 다르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면서, 남의 생각이 내 생각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다 보니 재미있는 일도 없고, 가슴 설렐 일도 없는 것이다. 시간과 돈과 성공에 매달려서 달리다 보니, '이제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다.'라는 사람도 많다.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먹고살아야 하니까... 일은 해야 하니까...' 하기는 하는데, 몸만 바쁘고 ..

겨울

겨울은 회상과 우울과 고독의 계절이다. 그것은 지나간 화려했던 계절을 돌이켜보고 해[年]가 지나가는 허탈감 속에서, 차가운 밤바람 소리에 가슴죄는 계절이며, 집 떠난 방랑자가 방랑의 고독을 다시 한번 사무치게 느껴보는 계절이다. 문학 작품에서 흔히 겨울은 생명력이 결여되어 있다거나 차갑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함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취약계층에서는 의식주에 그야말로 서럽고, 힘들며, 배고픈 계절이기도 하다. 신라 자비왕 때, 경주 낭산(狼山) 동리(東里)에 가난한 선비 백결(百結) 선생이 있었다. 어찌나 가난한지 옷을 백 군데나 꿰맨 것을 걸쳤다 한다. 섣달그믐에 이웃집에서는 떡방아 찧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백결 선생 집에는 찬바람뿐, 빈손을 만지는 아내에게 떡방아 찧는 소리를 거문고로 타서 방아타령을..

충고와 조언

'어려운 일은 어떤 것인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그러면 쉬운 일은 어떤 것인가?' '남에게 충고하는 것이다.' 앞서도 충고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충고를 하고 조언을 하는 것처럼 곤란한 문제는 없다. 내 딴에는 진심으로 위한다고 한 이야기인데, 상대가 서운해해서 당황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남편이나 아이의 성적이나 시집, 이웃이야기에 불평에 괜히 어설프게 맞장구쳤다가 화를 당하기가 십상이다. "그렇다고 우리 남편이 뭐...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아무리 그래도 애가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지 않나요?" 내 딴엔 좋은 뜻에서 바른말해준다고 한 말인데, 도리어 원망이나 서운함으로 되돌아올 때가 종종 있는 것이다. '충고'라는 것이 그렇다. 나는 '바른말' 한다고 하지만..

산 물고기는 흔들리지 않는다

어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같은 삶을 살더라도 죽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산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세상의 수많은 생명 중에서도 사람의 생명을 얻는 인연이 그렇게 지중하다고 한다. 이 귀한 삶을 그저 뜻 없는 말과 행동으로 시간을 죽이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남을 헐뜯고 비방하거나, 좀 이익이 된다 싶으면 남에게 상처되는 일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까지 쌓아온 업도 어쩌지 못하면서 살면서 계속 나쁜 업만 더 짓게 되니, 이런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죽은 삶'을 사는 사람이다. 물고기를 봐도 그렇다. 죽은 물고기는 그저 물살이 흐르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릴 뿐이지만, 산 물고기는 흔들리지 않는다. 요리조리 자기 의지대로 방..

지혜의 눈으로 내 안의 풍요를

스님들께서는 '깨달음이 곧 지혜고 지혜가 곧 깨달음'이라고 한다. 지혜는 또 '존재의 본질을 바르게 아는 것'이라고도 한다. 결국은 '바르게 아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는 말씀이다. 요즘처럼 소비를 부추기고 소유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를 살다 보면, 사실 '무엇이 진짜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 그 가치를 바로 알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이 몰라서 '가진 게 없다 가난하다'라고 하지... 사실, 자기 몸 하나만 제대로 볼 줄 알아도 세상에 부자 아닌 사람이 없다." 많은 스님들이 이와 같은 법문을 설하신다. 이빨 하나 신장 하나만 따져도 수백수천을 호가하는데, '가진 게 없고', '가난하고', '부족한' 것은 어리석은 내 생각 속에서만 그렇다고 한다. 지혜로운 눈으로 알아차리고 보면, 있는 그대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