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478

성(性)과 삶

나는 넥타이를 풀었다. 여자는 옷을 벗어 던졌다. 나는 권총 달린 허리띠를 여자는 넉 장의 옷을 벗었다. 나르드[甘松감송] 나무도 조갯살도 이렇듯 부드러운 살결일 수는 없다. . . . . . . (중략) 진주조개의 젊은 망아지를 몰아 더할 나위 없는 쾌적한 길을 달리게 하였다. 제 블로그 '세계의 명시'에 소개했던 '스페인'의 시인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의 "부정(不貞)한 유부녀"란 시(詩)에서 성적(性的) 쾌락(快樂)의 묘사를 감상한다. 우리는 성(性) 때문에 잉태되며, 잉태되는 순간부터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여행을 시작한다. 죽을 때까지 이는 계속된다. 성(性)은 매우 강력해서 죽음도 잊어버리게 하고 성적 쾌락에 빠지면 정신은 완전히 나가 버린다. 성(性)이 탄생과 죽음의 ..

백유경(百喩經)의 우화

『백유경(百喩經)』은 우화로 이루어진 불경이다. 고대 인도의 우화적인 구비설화를 중심으로 엮은 이야기책으로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올바른 삶과 믿음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기존의 불교 경전은 함축된 의미의 문장과 어려운 단어로 인해 불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유대인들에게 성서와 동일하게 여겨지는 『탈무드』가 인간 사회 전반의 철학적, 수학적, 인문학적, 역사적 질문들과 담론들로 교훈을 준다면, 『백유경』은 온갖 비유로, 해학성이 넘치는 이야기 가운데 단순히 불교 가르침 이상의 깨달음을 준다. 고대 그리스의 국적 없는 동물들의 이야기인 『이솝 우화』가 우리 인간에게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는 교훈을 주고, 우리의 『전래동화』 역시 권선징악의 교훈이 있듯이, 『백유경』은 재미있고 쉬운 ..

아쉬움

"아쉬움"이란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거나, 필요한 것이 모자라거나 없어서 안타깝고 서운한 마음'이라고 한다. 세상사가 언제나 만족한 것은 아니다. 아쉬움이 있고 부족함이 있어야 심기일전( 心機一轉 ) 발동의 활력이 된다. 어떤 독일의 학자는 현대의 병을 가리켜 부족에서 오는 병이 아니라 과다(過多)에서 오는 병이라고 했다. 많이 먹고, 많이 소비하고, 많이 생산하고, 많이 즐겼기 때문에 육체나 정신이 항상 건전치 못한 상태다. 고통을 모르는 사람은 즐거움[樂]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고통이 없으면 즐거움이 즐거움인 줄 모르고, 출산의 고통이 없이 모성애(母性愛)를 어찌 알겠는가. 남보다 먼저, 남보다 높이, 남보다 탁월하게 등의 경쟁 사회가 요즘 사람들을 조그마한 아쉬움..

세상을 사는 세 가지 덕목

사람이 세상을 사는데 꼭 필요한 세 가지 덕목이 있다. 첫 번째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이고, 두 번째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관용'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이다.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 예외 없이 마주치는 인생의 난관들이 있다. 때로는 그것이 고통이 되고 괴로움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은 세상일을 읽을 줄 아는 지혜에서 오는 법이다. 아무리 많은 일이 있다고 해도 사실 크게 분류해 놓고 보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내가 어쩔 수 있는 나의 일이 있고, 내가 어쩔 수 없는 하늘의 일이 있다. 그리고 또 내가 어쩔 수 없는 남의 일이 ..

비우고 멈춤에 안락을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특별한 습관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지금 나에게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순위를 매겨보는 일이다. 가장 급한 일은 무엇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앉아서 순위를 매기다 보면, 사실 그렇게 중요하고 그렇게 급한 일은 몇 가지 안 되는 법이다. '중요하면서 급한 일'이 있고, '중요하면서도 급하지 않은 일'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외에는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들이 남는다. 중요하고 급한 경우만 정리하고 나면, 나머지 대부분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자질구레한 잡념들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괴로움, 고통, 근심, 걱정, 이런 번뇌가 모두 그렇다. 지나간 기억, 오지 않은 걱정을 다 비우고..

한 해를 보내면서

세상이 산업 사회로 진입하고, 정보화의 시대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성의 황폐화를 보곤 한다. 패륜아가 부모를 폭행하고, 자식을 죽이는 뉴스가 온몸을 떨리게 한다. 지나친 공권력과 안 밝혀져도 좋은 사생활로 인해 죽음의 길로 몰고 간 어느 배우의 초상을 보며, 정의란 명분하의 법 앞에 인정은 없다는 냉혹함과 인간의 본성은 앙상하게 메말라 가고 있음을 절절히 느낀다. 윤리 질서와 도(道)는 인간이 쫓아가야 할 생명의 질서이며 우주의 정도(正道)이다. 불가의 초발심 자경(初發心自警文)에 '재색지화는 심어독사( 財色之禍 甚於毒蛇)'란 구절이 있다. 재산이나 부도덕한 남녀 관계의 타락의 화는 독사보다 그 독이 무섭다는 말이다. 재산의 탐욕은 우리의 혼을 흐리게 한다. 욕심은 세 가지 독(毒) 중에서 ..

나를 멈추는 용기

대부분의 갈등이나 충돌은 '나는 옳고 너는 틀린다'는 아집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보는 이 세상이 그렇다. 세상에 그 어떤 존재도 잠시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없는데, 우리 눈이 착시현상을 일으켜서, 마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과학적인 증거들을 매번 접하면서도, 좀처럼 버리기 힘든 것이 바로 아집이고 고집이다. 견해라는 것도 사실 나만의 색안경이라서 내가 보는 관점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안다고 하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이 또한 습관이고 업이다. 어쩌다 누가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이라도 내면 꾹꾹 눌렀던 습관이 여지없이 튀어나온다. '혹시라도 틀린 내 생각이 드러날까 봐.', '꼭 나만 옳아야 되는 것처럼...' ..

황희정승 어법

황희정승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하인 두 명이 싸움을 벌이다가 주인이 나타나자 서로 '자신이 옳고 상대가 잘못했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 말을 곰곰이 듣던 정승은 '네 말을 들으니 네가 옳고, 저 애 말을 들어보니 또 저 애 말도 옳다.'라고 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부인이 말하길, "아니, 이 애도 옳고 저 애도 옳다니요? 한나라의 정승이라는 분이 어찌 그리 사리분별에 어두우십니까?" 하니까 황희정승이 말했다. "맞소. 듣고 보니 또 부인 말도 옳구려!" 옳고 그름을 시비분별하지 않고,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라고 인정하는 태도를 '황희정승 어법'이라고도 한다. 사람에 따라서 그 해석이야 다양하겠지만 불교의 중도사상과 꽤 근접한 일화라고 할 수 있다. 석가는 '옳고 그름을 따지고 ..

아버지

그리스에는 '에게 해'라는 바다가 있다. 이 바다의 특이한 점은 파도가 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에게 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아버지의 바다'라는 뜻이다. 그 잔잔함이 마치 듬직한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누구나,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 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사시면서, 어지간한 감정이나 힘든 기색은 보이지 않는 분들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들이다. 좋아도 좋은 기색도 없고, 힘들어도 힘든 기색도 없고, 늘 잔잔한 바다 같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철없던 시절에는 그런 아버지의 등만 봐도 마음이 든든하고, 아버지만 있으면 귀신도 무섭지 않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다. '어디에서 그런 든든함이 느껴졌을까?' 비가 오던지 눈이 오던지 '좋다, 싫다'는 ..

괴로움도 함께 나눌 때

경기가 어려워지고 실직하는 가장들이 늘어나면서, '가족해체 현상'도 더 심해진다고 한다. 살림살이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우리 옛날 부모님 세대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통도 불편하고 먹을 것도 흔하지 않았다. 지금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는 살림살이였는데도 그 위기를 견뎌내는 힘만큼은 대단했다. 옛말에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똑같은 위기를 맞아도 뿌리가 튼튼한 가정은 그만큼 내성도 강하다고 하는데, 요즘 대부분의 가정은 그렇지 못하다. 부부간이나 친인척 간에도 그렇다. 좋은 일, 기쁜 일, 자랑할 만한 일은 잘 나누면서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숨기려고 한다. '아이들이 기죽는다.'라고. '가족들이 실망할까 봐.', '자존심 상한다.'라고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병만 크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