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파랑새는 창안(鶬鴳)이라 하여, 입춘 무렵부터 울기 시작하여 입하 무렵에 울음을 그치는, 봄에만 노래하는 봄 새다.
즉 파랑새는 봄의 정수(精髓)다.
서양에도 파랑새가 있는데 구미(歐美)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하지만 파랑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징적인 새인 것이다.
서양에서는 도르노이(1705년 사망)의 동화 속에서 아름다운 여인, 동경의 대상으로 상징화하였는데, 벨기에의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Polidore Marie Bernard Maeterlinck, 1862년 8월 29일 ~ 1949년 5월 6일)에 의해 붙잡을 수 없는 행복으로 상징화되었다.
가난한 초부(樵夫)의 아들 딸, 틸틸과 미틸 남매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다가 문득 깨어나, 자기들이 기르던 비둘기가 바로 그 파랑새였음을 깨닫는다는 내용으로, 행복은 항상 가까이에 있다는 주제를 형상화했다.
붙잡을 수 없는 행복이 서양의 파랑새다.
한데 동양의 파랑새는 항상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메신저[使者]를 상징하였다.
붉은 목에 검은 눈, 발이 세 개인 이 파랑새는 서왕모(西王母 : 중국 도교 신화에 나오는 신녀(神女)의 이름.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의 이(齒), 표범의 꼬리를 가진 산신령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했다고 한다.)의 사자(使者)로서, 서왕모와 동방삭과의 교신도 이 파랑새의 발에 전낭(箋囊)을 달아 전서구처럼 교신에 이용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대사를 성적으로 유혹함으로써, 그 시련을 테스트하는 여인이 등장하고 있음을 본다.
원효가 다리밑에 이르렀을 때 한 여인이 월수포(월경대:月經帶)를 빨고 있는 것을 본다.
대사는 이 여인에게 먹을 물을 달라고 한다.
이 여인은 월수포를 빤 오수(汚水)를 한 박 쪽 퍼준다.
이 같은 우화의 진행은 바로 성교행위에의 유혹을 상징하는 것이다.
대사가 이 물을 버린 행위는 시련의 승리를 뜻한다.
다시 길을 걷는다.
이제는 논에서 벼를 베고 있는, 한 흰옷 입은 미녀를 만난다.
원효는 그 여인의 유혹에 빠져들어 희롱을 한다.
이때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가 "제호화상(醍醐和尙)"을 부르고 자취를 감춘다.
나락 베던 여인도 사라지고, 파랑새가 앉았던 소나무 아래 그 여인이 신었던 신발 한 짝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첫 번 시련에서 유혹을 이겨낸 원효는 두 번째 시련에서 유혹에 패배하고 만다.
제호(醍醐)란 불도(佛道)에서 정법을 뜻한다.
즉 불성에 바른 스님이란 뜻이다.
파랑새가 외친 "제호화상"이란 말뜻은 두 가지로 풀이될 수가 있다.
'정법의 불성을 지닌 스님'이란 뜻과 그와 정반대인 '성적으로 타락한 스님'이란 뜻이 그것이다.
이것은 관음이 바로 미녀로 변신하여 대사의 법도를 시험했다는 것이 되며, 파랑새는 바로 이 관음의 화신이 미녀로 변신하는 중간과정으로 이해된다.
관음의 메신저 노릇을 했다는 점에서 동양적인 파랑새의 이미지가 같고, 또 그것이 아름다운 여인이요, 동경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서양적인 파랑새의 이미지와도 같다.
이 삼국유사의 기사는 원효대사의 현성(顯性) 세계를 엿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원효의 정신세계의 갈등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강원도 양양에 있는 낙산사(洛山寺)의 관음과 파랑새는 원효대사의 고사(故事) 말고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금도 속전에 관음굴에 사는 관음에게 치성을 드리면 파랑새가 나타나는 것으로 구전되고 있다.
앞에 설악산 "오세암(五歲菴) 이야기" 설화에 다섯 살 난 신동이 한해 겨울 혼자서 이 절에서 지냈는데, 그동안 한 흰옷 입은 여인이 나타나 아이를 보살피고 파랑새가 되어 날아가곤 하였다고 역시 관음화신을 파랑새에 귀결시켰음을 본다.
즉 파랑새는 관음의 화신(化身)이며, 관음정토사상의 사자(使者)인 것이다.
불교가 설정한 행복의 심벌이요, 따라서 한 추구 끝에 나타나는 보람의 심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