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려던 시점에 조선의 의복 문화와 상거래 관행에 변화를 일으킨, 문익점(文益漸=司議사의·提學제학·享丹城道川書院향단성도천서원·江城祠강성사·楮山書院저산서원·松秀書院송수서원, 1329년 2월 8일(충숙왕 16년) ~ 1400년 2월 8일(정종 2년), 향년 70세) 이야기이다. 진주 남강(南江) 상류 경남 산청군 신안면(新安面) 원터는 문익점을 모신 도천서원의 옛터라서 붙은 마을이름이고, 그곳에서 五(오)리 남짓 강 따라 올라가면 단성면(丹城面) 사월리(沙月里)에 이르는데, 이 마을의 속칭 효자리(孝子里)는 문익점의 효자정각(孝子旌閣) 때문에 붙은 이름인 것이다.이 마을에는 문익점의 면화시배사적비(棉花始培寺跡碑)가 그 시배지에 서 있다. 그가 한국변방을 소란케 한 홍건적의 실황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