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일본 28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벚꽃의 삶 너와 나의 삶 그 사이에 벚꽃의 삶이 있다. * ​ * * * * * * * * * * * * * * *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년 ~ 1694년 11월 28일(음력 10월 12일)), 또는 마쓰오 주에몬 무네후사(松尾 忠右衛門 宗房)는 에도 막부 전기의 시인이다. 아명은 긴사쿠(金作). 바쇼는 1644년 일본 남동부 교토 인근에서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이른 사망으로 집안이 몰락하자 바쇼는 요시타다라는 권력자의 시중을 드는 일을 하게 됐다. 요시타다는 하이쿠에 취미가 있었는데 바쇼는 이때 어깨너머로 하이쿠를 배우기 시작한다. 요시다타가 죽자 바쇼는 교토 생활을 접고 에도(도쿄)로 거처를 옮긴다. 도쿄 니혼바시에서 상점 직원으로 일할 무렵 그의 하이쿠 실력이 입소문으로 ..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매미 허물 너무 울어서 텅 비어 버렸을까 저 매미 허물은. * 제목은 편의상 썼음. ​ * * * * * * * * * * * * * * * 하이쿠는 중세 이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시 장르다. 일본어 기준으로 5·7·5의 음수율에 전체 17음절로 구성된 시다. 시 속에 계절을 나타내는 시어인 기고(季語)가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하이쿠는 원래 장시의 앞부분을 칭하는 말이었다. 15세기에 유행하던 장시 하이카이렝카(俳諧連歌)의 첫 번째 구(句)를 홋쿠(發句)라고 했는데, 바쇼가 본격적으로 이 부분만을 따로 쓰기 시작했고 이것이 하이쿠의 전형이 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자수와 소재의 제약이 가혹하다 보니 하이쿠는 점점 고도의 상징성과 여운에 기대는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가 세계화..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고촌광태랑)

물떼새와 노는 치에코 사람 하나 없는 구주쿠리(九十九里)의 모래사장 모래에 앉아 치에코는 논다. 수많은 친구가 치에코의 이름을 부른다. 치이, 치이, 치이, 치이, 치이 -- 모래에 작은 발자국을 남기며 물떼새가 치에코에 다가온다. 계속 무언가 중얼거리던 치에코가 두 팔을 들어 새를 부른다. 치이, 치이, 치이 -- 양손에 쥔 조개를 물떼새가 달라고 조른다. 치에코는 조개를 후드득 후드득 던진다. 몰려드는 물떼새가 치에코를 부른다. 치이, 치이, 치이, 치이, 치이 -- 인간 세계를 훌훌 버리고, 이제는 자연(自然) 저편으로 떠나버린 치에코의 뒷모습이 동그마니 보인다. 석양은 한참이나 떨어진 여기 방풍림(防風林)까지 물들이고 흩날리는 송화(松花) 가루 아래 나는 언제까지나 마냥 서 있다. * * * * ..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고촌광태랑)

레몬 애가(Lemon 哀歌) 애타도록 당신은 레몬을 찾고 있었다. 죽음의 슬프고도 화려한 병상에서 내가 쥐여준 레몬 한 알을 당신의 하이얀 이가 생큼히 깨물었다. 토파즈 빛으로 튀는 향기. 하늘의 것인 듯 몇 방울의 레몬 즙이 당신의 정신을 잠시 맑게 되돌려 놓았다. 푸르고 맑은 눈빛으로 가냘피 웃는 당신. 내 손에 꼬옥 쥔 당신의 싱그러움이여. 당신의 목 깊숙이에서 바람 소리 일지만 생과 사의 어려운 골목에서 그대는 옛날의 그대가 되어 생애의 사랑을 이 순간에 다 쏟는 것인가. 그리고 잠시 그 옛날 산마루에 올라 쉬던 심호흡 하나 쉬고 당신의 모습은 그대로 멈췄다. 벚꽃 그늘이 있는 사진 앞에 토파즈 빛 향기의 레몬은 오늘도 두자. * * * * * * * * * * * * * * * 사랑하는 사람이 ..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고촌광태랑)

너덜너덜한 타조 뭐가 재미있어서 타조를 기르는가. 동물원의 4평 반 진창 안에서는. 다리가 너무 길지 않은가. 목이 너무 길지 않은가. 눈 오는 나라에서 이 상태라면 날개가 너무 너덜너덜하지 않는가. 배가 고프니까 건빵도 먹지만, 타조의 눈은 먼 곳만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몹시도 고통스럽게 불타고 있지 않은가. 유리색 바람이 당장이라도 불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작고 소박한 머리가 무한대의 꿈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이미 타조가 아니지 않은가. 인간이여, 이제 그만 좀 두시지, 이런 짓은. - 일본 고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 수록. * * * * * * * * * * * * * * *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 1883년 3월 13일 ~ 1956년 4월 2일)는 일본에서 국민 시..

혼다 히사시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서 만개한 벚꽃나무에 기대어 있을 때 해체된 말의 앞다리가 달려왔다 뒤이어 뒷다리도 달려왔다 그 뒤를 이어 하늘에서 떨어진 몸통이 네 다리 위에 올라앉았고 머리가 없는 채로 말은 잠자코 서 있다 이윽고 짐수레를 끌고 노파가 다가와서 짐받이에 싣고 온 말의 머리를 나의 발아래에 내려놓고 갔다 나는 말의 머리를 제자리에 붙여 놓고 다시 말을 보았다 그 말은 내가 소년이었을 적에 사산(死産)으로 해체된 모태에서 끌려 나온 말이었다 말은 이제야 처음으로 보는 걸 허락받은 자와 같았다 나는 침으로 상처를 닦아 주고 손을 번쩍 들어 말의 엉덩이를 쳤다 말은 우렁차게 울고 나서 들판 끝으로 달려갔다 그때 봄 폭풍으로 한꺼번에 지던 벚꽃 꽃잎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는 벚꽃나무가 문득 비틀거리는 것을 ..

혼다 히사시

피에타(Pietà) 오늘, 쓸쓸함은 쓰라리고 밝고, 푸르게 빛나는 소금 같다 네 안에 있는 숲의 거처 너를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있지만 끝내, 네가 보이지 않는다 젖은 모래 같은 눈 안쪽에 너를 불러내려 해도 끝내, 너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를 둘러싸는 나무들 우물거리는 꿩과 비둘기의 울음 소리 나가 버린 후 돌아오지 않는 고양이 탁류에 삼키어 버린 산기슭의 마을 한 없이 늘어가는 죽은 자의 숫자 오늘, 슬픔은 깊고 끝없이, 높으며 넓은 하늘 같다 마른 바람에 부쳐 보내고 싶은 한 개의 푸른 과일 하지만, 네 있는 곳을 모른다 네 발 밑의 작은 산골짜기에서 너를 쳐다보며 눈을 크게 뜨고 있지만 네 시초가 보이지 않는다 * * * * * * * * * * * * * * 시인의 아홉 번째 개인 시집인 『풀의 영..

혼다 히사시

배 그 배는 이미 항구마다, 아니다 그 바다 자체에서조차 거절당했다 그 배는 이미 푸르게 넘실대는 바닷물에 잊혀져 활 모양의 수평선에 버려졌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그 사람의 슬픈 기억의 바다에 떠 있고 돛대는 묶여 있다 그 배는 이미 배를 벗어난 배 이름을 명사로서 부를 수 없는 배 어쩌면 그 사람의 새가 되고 싶다는 상념을 닮은 모습 혹은 머무를 수 없는 비망(非望) 그럼에도 쇠퇴한 별빛을 쌓아둔 채 바람을 기다리고 있다 바다에서 태어나 저 멀리 바다를 초월한 바다로 향하는 배 한 척 * * * * * * * * * * * * * * * 혼다 히사시는 1947년 큐슈 미야자키 현(宮崎縣)에서 태어나 26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제1회 이토세이유 상과 제42회 H씨상, 제47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