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일본 34

쿠사노 신페이(草野心平)

가을밤의 회화 춥구나 그래 춥구나 벌레가 운다 그래 벌레가 운다 곧 땅 속에 들어가야지 땅 속은 싫어 파리해졌구나 너도 무척 파리해졌구나 어디가 이렇게 죄어올까 배일까 배라면 죽고 말 거야 죽고 싶지는 않아 춥구나 그래 벌레가 운다 * * * * * * * * * * * * * * * 이 시의 주제는 명확하다.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비틀거리며, 서글픔 속에서도 이기고 살아가는 의지, 그것을 시시껄렁한 말은 없으면서 일상어로 노래하고 있다. 이 시가 풍기는 슬프면서 아름다운 세계는 달리 비할 바 없다. 두 마리 개구리에 기탁되어 묘사되고 있는 것은 인생 그 자체이다. 가을의 싸늘함이 몸에 스며드는 밤, 삶의 슬픔과 괴로움을 벌레에게 공감을 기탁하면서 말하는 정경에는, 작자의 젊은 날의 모습이 투영되고 있다..

쿠사노 신페이(草野心平)

옴개구리 야. 나야. 나왔어. 옴개구리야. 나야. 놀라지 않아도 돼. 빛이 이렇게 흐르고 흐트러진 것은 내가 빙글빙글 둘러보고 있기 때문은 아니겠지. 참을 수 없구나. 새파랗구나. 사방에서 향기가 나는구나. 느긋하게 흐르는 구름이구나. 이쪽 저쪽에서 무언가 중얼중얼 울기 시작했구나. 힘껏 날아가버린 겨울 눈부시구나. 파랗구나. 참을 수 없구나. 봄아 나야. 옴개구리야. * * * * * * * * * * * * * * * 옴개구리 척삭동물문 / 양서강 / 무미목 / 개구리과 / 옴개구리속 ​ 몸길이 4~5.5cm 주름돌기개구리라고도 한다. 등면은 검은색 바탕에 많은 작은 융기가 있으며, 피부에서 독특한 냄새가 난다. 등 중앙에 연한 황색의 세로줄이 있다. * * * * * * * * * * * * * *..

쿠사노 신페이(草野心平)

봄의 노래 개구리는 겨울 동안 땅 밑에 머물다 봄이 되면 땅 위로 올라옵니다. 그 첫째 날의 노래. 너무 눈부셔요. 너무 기뻐요. 벌레는 미끌미끌. 바람은 솔솔. 쾰른 쿡. 아아 쾰른 쿡. 오 개불알풀꽃이 피어있네. 오 커다란 구름이 움직이고 있네. 쾰른 쿡. 쾰른 쿡. * * * * * * * * * * * * * * * 여기저기서 개구리가 울어대는 소리가 들리도록 의성어(擬聲語)가 나열된 싯구이다. 작가는 개구리의 울음과 풍경이 하나가 된 것 같다. 시 속의 의성어가 봄의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 * * * * * * * * * * * * * * 쿠사노 신페이(草野心平, 1903년 5월 12일 ~ 1988년 11월 12일 향년 85세)는 일본의 시인이다. 후쿠시마현 이시키 군 가미오가와무라(현 이와..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 朔太郎)

애련(愛憐) 질끈 귀엽고 굳은 치아로 초록색 풀을 깨무는 여자여 여자여 그 여리게 푸른 풀의 잉크로 남김없이 내 얼굴을 칠하여 내 정욕을 고양시켜 우거진 풀밭에 남몰래 놀자 보아라 여기에는 은방울풀이 머리를 흔들고 저기에는 용담풀의 손이 살랑살랑 움직인다 아아 나는 힘껏 네 유방을 끌어안는다 너는 네 힘껏 내 몸을 누르고 있다 그리하여 이 인기척 없는 들판 속에서 * * * * * * * * * * * * * * * 이 시는 대담한 에로티시즘을 관능적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이 작품 때문에 시집 는 판금 조치를 받았다. * * * * * * * * * * * * * * *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 朔太郎, 1886년 11월 1일 ~ 1942년 5월 11일)는 일본 근대의 시인이다. 일본 근대시의 아버지라고도..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 朔太郎)

개구리의 죽음 개구리가 살해되었다 어린이들은 원을 이루고 손을 들었다 모두들 함께, 귀여운, 피투성이 손을 들었다, 달이 떠올랐다, 언덕 위에 사람이 서 있다, 모자 아래 얼굴이 있다. * * * * * * * * * * * * * * * 죄 없는 어린이들이 자기들의 놀이 친구인 죄 없는 개구리를 살해하고 말았다. 미워서 죽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만세를 부르고 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인가. 세상에서는 이와 비슷한 참극이 행해지고 있다. 그것도 온화한 봄날 저녁에 그런 일이 행해진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서도 망연하게 서 있는 인간 - 자신도 그중 한 명이지만,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인간의 원죄를 슬퍼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 * * * * * * * * * * * * * * 하기..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나비였네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 * * * * * * * * * * * * * * *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년 ~ 1694년 11월 28일(음력 10월 12일)), 또는 마쓰오 주에몬 무네후사(松尾 忠右衛門 宗房)는 에도 막부 전기의 시인이다. 아명은 긴사쿠(金作). 그의 생애 동안 바쇼는 공동 하이카이노 렌가 양식에서 그의 작품을 인정받고 있었다. 오늘날, 그는 당시 시대에 홋쿠라 불린 하이쿠의 명인으로 꼽히고 있다. 마쓰오 바쇼의 시는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있으며, 일본에서 그의 시 중 대다수는 기념물이나 역사적 장소에서 재생산되고 있었다. 바쇼는 그의 홋쿠로 서구에서 유명하지만, 그 자신은 그의 최고의 작품이 렌쿠에 참여하고 주도하는 것에 있다고 믿었다. 그는..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벚꽃의 삶 너와 나의 삶 그 사이에 벚꽃의 삶이 있다. * ​ * * * * * * * * * * * * * * *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년 ~ 1694년 11월 28일(음력 10월 12일)), 또는 마쓰오 주에몬 무네후사(松尾 忠右衛門 宗房)는 에도 막부 전기의 시인이다. 아명은 긴사쿠(金作). 바쇼는 1644년 일본 남동부 교토 인근에서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이른 사망으로 집안이 몰락하자 바쇼는 요시타다라는 권력자의 시중을 드는 일을 하게 됐다. 요시타다는 하이쿠에 취미가 있었는데 바쇼는 이때 어깨너머로 하이쿠를 배우기 시작한다. 요시다타가 죽자 바쇼는 교토 생활을 접고 에도(도쿄)로 거처를 옮긴다. 도쿄 니혼바시에서 상점 직원으로 일할 무렵 그의 하이쿠 실력이 입소문으로 ..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매미 허물 너무 울어서 텅 비어 버렸을까 저 매미 허물은. * 제목은 편의상 썼음. ​ * * * * * * * * * * * * * * * 하이쿠는 중세 이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시 장르다. 일본어 기준으로 5·7·5의 음수율에 전체 17음절로 구성된 시다. 시 속에 계절을 나타내는 시어인 기고(季語)가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하이쿠는 원래 장시의 앞부분을 칭하는 말이었다. 15세기에 유행하던 장시 하이카이렝카(俳諧連歌)의 첫 번째 구(句)를 홋쿠(發句)라고 했는데, 바쇼가 본격적으로 이 부분만을 따로 쓰기 시작했고 이것이 하이쿠의 전형이 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자수와 소재의 제약이 가혹하다 보니 하이쿠는 점점 고도의 상징성과 여운에 기대는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가 세계화..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고촌광태랑)

물떼새와 노는 치에코 사람 하나 없는 구주쿠리(九十九里)의 모래사장 모래에 앉아 치에코는 논다. 수많은 친구가 치에코의 이름을 부른다. 치이, 치이, 치이, 치이, 치이 -- 모래에 작은 발자국을 남기며 물떼새가 치에코에 다가온다. 계속 무언가 중얼거리던 치에코가 두 팔을 들어 새를 부른다. 치이, 치이, 치이 -- 양손에 쥔 조개를 물떼새가 달라고 조른다. 치에코는 조개를 후드득 후드득 던진다. 몰려드는 물떼새가 치에코를 부른다. 치이, 치이, 치이, 치이, 치이 -- 인간 세계를 훌훌 버리고, 이제는 자연(自然) 저편으로 떠나버린 치에코의 뒷모습이 동그마니 보인다. 석양은 한참이나 떨어진 여기 방풍림(防風林)까지 물들이고 흩날리는 송화(松花) 가루 아래 나는 언제까지나 마냥 서 있다. * * * * ..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郎고촌광태랑)

레몬 애가(Lemon 哀歌) 애타도록 당신은 레몬을 찾고 있었다. 죽음의 슬프고도 화려한 병상에서 내가 쥐여준 레몬 한 알을 당신의 하이얀 이가 생큼히 깨물었다. 토파즈 빛으로 튀는 향기. 하늘의 것인 듯 몇 방울의 레몬 즙이 당신의 정신을 잠시 맑게 되돌려 놓았다. 푸르고 맑은 눈빛으로 가냘피 웃는 당신. 내 손에 꼬옥 쥔 당신의 싱그러움이여. 당신의 목 깊숙이에서 바람 소리 일지만 생과 사의 어려운 골목에서 그대는 옛날의 그대가 되어 생애의 사랑을 이 순간에 다 쏟는 것인가. 그리고 잠시 그 옛날 산마루에 올라 쉬던 심호흡 하나 쉬고 당신의 모습은 그대로 멈췄다. 벚꽃 그늘이 있는 사진 앞에 토파즈 빛 향기의 레몬은 오늘도 두자. * * * * * * * * * * * * * * * 사랑하는 사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