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의 소녀
님의 그림자도 없네
검은 모래
모래 언덕의 바닷가
아득한 석양의 훈풍에
휘날리며
사랑의 노래 부르며
해변을 따라 걸어오고 있네.
아리따운 소녀의 자태
그 노래 소리는
검은 모래로
울려 퍼지는
저녁노을의 파도
사라졌다가 다시 들리네.
바람 속에 휘말렸다가
다시 들리네.
황혼이 비치는 구름 속에
피어 번지네.
그 소리를
그 노래를
그 누가 듣는가?
황량한
이 해변
나는 새도 없고
한 척의 배도 없네.
그저
저녁노을이 비치는
검은 모래로
울려 퍼지는 파도
또 파도.
아득히 보이는 해안선에
흔들리며 반짝이는
어두운 해심에
땅거미가 내리네.
저녁노을이 내리는 바다
밀물 따라 부는 바람
소금냄새도 그득히
휘날리는
그 검은 머리에
보랏빛으로 물들인
점점이 보이는 뭍
노랑나비가 춤을 추네.
어둠속에 거세어진 파도
불꽃처럼 부서지며
소용돌이치네.
휘몰아치는 물보라는 사랑의 화분처럼
울려 퍼지는 바람 속에
눈처럼 휘날리며.
불의 바다와
해맑은 서녘하늘
저물어 가는 석양으로
퍼졌다가 몰리는
은빛 안개
진홍빛에 그을려
바다 속에 누워서
죽음처럼 엎드려
다가오는
검은 산맥의 그림자
오! 님의 그림자이려나.
머언 수평선의
남빛 저 건너에서
죽음처럼 살며시
빛을 빨아들이네.
악마의 무리처럼
난잡하게 타오르며
엷은 연지빛 날개를 펴고
부둥켜안고 뒹구는
구름의 모습
속삭임도 없이
몽롱하게 무너져
드디어
온 하늘로 퍼져나가네.
바람
바람
바람이 휘몰아 오는 저녁노을에
그 빛난 눈동자
지금 해변을 거닐고 있네.
그 눈동자는
그 소리는
맑게 개인
가을의 하늘
그 가을 하늘에서
들리는 듯
그 소리를
그 노래를
누가 듣는가?
바람의 바다
님은 오시지 않네.
바람아 불어라
바다야 울려 퍼져라.
그 눈동자
나의 가슴에
영원토록
불어 주어라.
꽃피는 꿈일랑
사랑의 환상일랑
사라짐이 없는 행복을.
무너지면, 미끄러지는
그 발끝을 적시는 파도
그 맨발에
와 닿는 파도
모래를 밟고
멀어져 가는
발걸음이 하얗게 빛나네.
드디어 바람은 더욱 더 거세어지고
노래 소리는 사라지네.
멀어져 간 그 자태
멀어져 간 저녁놀을 받으며
검은 모래의
모래 언덕의 그늘은
......시간은 흐르네
물거품 휘몰아대는
잿빛 바람의 저 건너로
태양은 님처럼 사라져 가네.
웬일인지
부서져 버리고
사라져 버리고 만
님의 소리
쏟아지듯 나는
구름의 날개소리
어두운 해심의 저쪽
다가오는 미지의 밀물소리
창백해진 바다는
점점 모래를 삼켜가네
사랑하는 님은 그림자도 없네.
* 이 시는 일종의 풍경시 비슷한 작품인데,
소녀의 심상을 자연상에 일치시킨 서정어린 대화는
참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La Petite Fille De La Mer(바닷가의 작은 소녀) - Vangel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