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일본

혼다 히사시

높은바위 2023. 2. 25. 04:22

 

  피에타(Pietà)


오늘, 쓸쓸함은 쓰라리고
밝고, 푸르게
빛나는 소금 같다
 
네 안에 있는 숲의 거처
너를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있지만
끝내, 네가 보이지 않는다
 
젖은 모래 같은 눈 안쪽에
너를 불러내려 해도
끝내, 너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를 둘러싸는 나무들
우물거리는 꿩과 비둘기의 울음 소리
나가 버린 후 돌아오지 않는 고양이
탁류에 삼키어 버린 산기슭의 마을
한 없이 늘어가는 죽은 자의 숫자
 
오늘, 슬픔은 깊고
끝없이, 높으며
넓은 하늘 같다
 
마른 바람에 부쳐 보내고 싶은
한 개의 푸른 과일
하지만, 네 있는 곳을 모른다
네 발 밑의 작은 산골짜기에서
너를 쳐다보며 눈을 크게 뜨고 있지만
네 시초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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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아홉 번째 개인 시집인 『풀의 영[草靈]』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나를 둘러싸는 나무들'로 시작되는 5연을 중심으로, 1~3연과 6~8연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쓸쓸함은 쓰라리고, '슬픔은 깊다'고 각 대구(對句)의 첫 머리부터 '쓸쓸함'과 '슬픔'을 직설적으로 거론하고, '보이지 않는다', '나타나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삼키어 버린', '모른다', '보이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서술어들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며, 고통과 슬픔(비애)의 정도를 중층적으로 심화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고통과 슬픔의 밑바닥에는 인간의 근원적 제약인 죽음이 있고, 그 죽음으로부터 파생되는, 피할 수 없는 고독(쓸쓸함)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40여 년에 걸친 혼다 히사시 시인의 세계 인식과 시업(詩業)을 관류하는 중요한 한 축으로서의 죽음과 상실, 그리고 이보다 앞서는 본원적 부재와 비재(非在) 또는 무(無)와 연관되어 있는 원형적 심상(心象)들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죽음 또는 이와 연관되는 상실이나 이별, 소멸은 인간의 태생적인 한계이고, 이에 대한 인식은 모든 예술과 철학의 근원을 이루는 것이다.
다만 혼다 히사시 시인의 경우, 스무 살 무렵 원인불명의 질병으로 하반신 불수가 되어, 오랫동안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한 그의 체험과 연관된 구체적인 자각에 기인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죽음의 이미지는 관념이 아닌 경험적 실체라고 할 수 있으며, 그의 쓸쓸함이나 슬픔은 보다 내재적이고 근원적인 통찰에 연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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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히사시는 1947년 미야자키현(宮崎縣) 출생으로 26세부터 시를 썼다.
제1회 이토세이유 상과 제42회 H씨상, 제47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과수원』 『시로 읊조리다-기억의 숲에서』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