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 640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Hans Magnus Enzensberger)

똥(Die Scheie) 곧잘 그것이 모든 잘못의 근원인양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다 보시라, 그것은 얼마나 부드럽고 겸손하게 우리 밑에 앉아 있는가? 도대체 우리는 왜 그 좋은 이름을 모독하여 미국 대통령에 경찰에 전쟁과 자본주의에 비유되는가? 그것은 얼마나 덧없는 것인데, 그것에 따라 이름 붙인 것들은 저토록 견고한가! 그것, 그 순종적인 것을 혀끝에 올려놓고 우리는 착취자들을 생각하는구나. 그것, 우리가 표현해 보인 그것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분노를 표현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를 편하게 해 주지 않았던가? 부드러운 성질로 독특하게, 비폭력적으로? 그것은 인간의 온갖 산물 가운데 아마도 가장 평화로운 것이리라.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 * * * * * * * * * * * * *..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Hans Magnus Enzensberger)

미들클래스 블루스 우리는 불평할 수 없다. 우리는 할 일이 있다. 우리는 배부르다. 우리는 먹는다. 풀이 자란다. 지엔피가 자란다. 손톱이 자란다. 과거가 자란다. 거리는 한산하다. 종전 협상은 완벽하다. 방공경보는 울리지 않는다. 다 지나갔다. 죽은 이들은 유언장을 썼다. 비는 그쳤다. 전쟁은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 그것은 급할 것이 없다. 우리는 풀을 먹는다. 우리는 지엔피를 먹는다. 우리는 손톱을 먹는다. 우리는 과거를 먹는다. 우리는 감출 것이 없다. 우리는 늦출 것이 없다. 우리는 할 말이 없다. 우리는 있다. 우리는 무엇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가? 시계가 다시 돌아간다. 상황은 정돈되었다. 접시는 씻겼다. 마지막 버스가 지나간다. 버스는 비어있다. 우리는 불평할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더 기다..

엘제 라스커쉴러(Else Lasker-Schüler)

나 아느니(Ich weiss) 나 아느니, 머잖아 나 죽음을 맞아야 하리라는 것을 그러나 모든 나무들은 일제히 빛을 비춰 주네 오래도 갈망했던 7월의 키스를 향해 − 몽롱하게 되어 가네 나의 꿈들 − 이보다 더 희미하게 마감해 본 적은 없었네 나의 시운(詩韻)을 읊었던 시집들 속에서. 그대 한 떨기 꽃을 나에게 인사로 꺾어 주네 − 나 그러나 그것을 맹아(萌芽) 속에서 이미 사랑했었네. 나 아느니, 머잖아 죽음을 맞아야 하리라는 것을. 나의 숨결 신의 강물 위로 나부끼고 − 나 발걸음을 사뿐히 영원한 고향으로 가는 오솔길 위에 얹는다. * * * * * * * * * * * * * * * * 엘제 라스커쉴러(Else Lasker-Schüler, 1869년 2월 11일 ∼ 1945년 1월 22일)는 독일계..

루이 자크 나폴레옹 베르트랑(Louis Jacques Napoléon Bertrand)

밤의 가스파르 중 오! 몇 번이나 나는 스카르보를 보고 들었던가, 황금빛 꿀벌로 얼룩진 남색 깃발 위에 은화 같이 달이 밝은 한 밤중에! 몇 번이나 나는 들었던가 내 침대를 둘러싼 실크 커튼 속에서 긁어 대는 듯 울려 퍼지는 그의 웃음소리를. 몇 번이나 나는 보았던가 천정에서 떨어져서 손을 놓은 마녀의 빗자루처럼 방 안을 빙글빙글 돌아 춤추는 것을, 그리고 그가 사라지는가 하고 생각하자마자 그는 대당의 첨탑처럼 커지고 또 커져서 달빛을 가리고 그의 뾰족한 모자에서 금종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의 몸은 푸르게 변하고 그리고 마치 촛농처럼 투명해졌다. 그의 얼굴은 꺼져가는 양초처럼 창백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그는 사라졌다. * * * * * * * * * * * * * * * * 루이 자크 나폴레옹 베..

엘제 라스커쉴러(Else Lasker-Schüler)

나의 푸른 피아노 나는 집에 푸른 피아노 한 대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음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지하실문의 어둠 속에 서 있다, 세계가 야만화 한 이후로. 별의 손 넷이 연주한다 -달의 여인은 보트 안에서 노래하였다- 이제 쥐들이 달그락거리며 춤춘다. 건반이 부서졌다··· 나는 푸른 死者(사자)를 애도한다. 아, 친애하는 천사여, 나에게 -나는 쓰디쓴 빵을 먹었다- 나에게 살아 있을 때 하늘의 문을 열어다오- 禁令(금령)을 거스를지라도 * * * * * * * * * * * * * * * * 엘제 라스커쉴러(Else Lasker-Schüler, 1869년 2월 11일 ∼ 1945년 1월 22일)는 독일계 유대인 시인이자 극작가로, 베를린에서의 보헤미아니즘 라이프스타일과 그녀의 시로 유명하다. 그녀는..

루이 자크 나폴레옹 베르트랑(Louis Jacques Napoléon Bertrand)

밤의 가스파르 중 아! 내가 들은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밤바람의 음산한 울림이었던가? 아니면 교수대에 매달린 죽은 이의 한숨인가? 아니면 그것은 나무가 불쌍히 여겨 보호해 주는 귀뚜라미의 울음이었던가? 그것은 죽음의 소리에 멀어버린 귓가에서 파리가 먹이를 찾는 신호인가? 아니면 벗겨진 머리의 피투성이 머리칼을 잡아 뜯는 풍뎅이인가? 아니면 아마도 죄어진 그 목을 장식하려고 기다란 머슬린을 짜는 몇 마리의 거미인가? 그것은 지평선 너머 마을의 벽에서 울리는 종소리, 그리고 붉은 석양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목 매달린 시체. * * * * * * * * * * * * * * * * 루이 자크 나폴레옹 베르트랑 ; 알로이우스 베르트랑(Louis Jacques Napoléon Bertrand, 1807년 4월..

루이 자크 나폴레옹 베르트랑(Louis Jacques Napoléon Bertrand)

밤의 가스파르 중 "들어봐요, 들어봐요...! 창백한 달빛에 비친 당신의 유리창에 물방울을 흩뿌려 울리게 하는 것은, 나 옹딘예요, 그리고 여기 무지개 빛 가운을 걸친 저택의 아가씨가 발코니에 서서 별이 총총한 밤의 아름다움과 잠든 호수를 바라보고 있어요, 흐름을 헤엄치는 물방울 하나하나가 물의 요정이고, 흐름의 하나하나가 나의 거처로 가는 오솔길이며, 그리고 나의 거처는 깊은 호수 속에 불과 흙과 공기의 세모꼴 속에 물로 만들어져 있죠. 들어봐요, 들어 봐요...! 나의 아버님은 푸른 버드나무 가지로 물가를 찰랑거리고 계시죠, 그리고 나의 자매들은 그 물거품의 팔로 물백합, 글라디올러스가 우거지 푸른 풀의 섬을 쓰다듬고, 수염을 드리우고 구부정하게 강물에서 낚시하는 버드나무를 놀려대지요." 낮은 목소리..

캐나다: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

겨울의 새벽 밤의 늪 위에는 별이 여전히 빛나고, 서리가 내린 언덕 위에는 침울한 소나무가 섬뜩한 바람을 품고 있다. 동양의 창백한 아치를 통해 아침은 새로 태어난 우유처럼 하얀 광채를 뿜어내고, 진홍색의 검이 그림자 무리의 회색 깃발을 자르고, 오, 그날! * * * * * * * * * * * * * * * * 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 1874년 11월 30일 ~ 1942년 4월 24일 향년 67세)는 캐나다의 소설가, 시인, 기자, 여성 작가로 그녀의 대표 작품 《빨간 머리 앤》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빨간 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 시리즈(1908~1939)를 비롯해, 평생 20편의 장편 소설과 530편의 단편 소설, 50..

캐나다: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

옛 집이 부른다 내게로 돌아와라, 넓은 세상을 배회하는 작은 춤추는 발들아, 나는 다시 한번 내 고요한 방에서 날아다니는 너의 발걸음을 갈망한다. 내게로 돌아와, 웃음과 노래가 있는 작은 목소리들, 돌아와라, 희망으로 높이 뛰는 작은 심장들아, 나는 너를 오랫동안 그리워하고 슬퍼했어. 내 정원에 피어난 장미는 이슬에 흠뻑 젖어 달콤하게 걷고, 긴 언덕길에는 내 불빛이 내리쬐고, 저물어 가는 황혼은 내 처마 주위를 펄럭이고, 제비는 옛날처럼 내 처마 주위를 펄럭이고, 내 주위에는 굳건한 팔로 잣나무가 접힌다. 그러나 나는 아침과 저녁에 너희를 위해 피곤하노라, 오, 내 사랑의 자녀들아, 너희의 순례의 길에서, 너희가 돌아다녔던 바다와 평원으로부터, 초원을 넘어 길을 따라 활짝 열린 내 문으로 오너라, 그리..

캐나다: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

행복을 찾는 사람 행복을 찾아 해메었어요. 오 간절한 열망으로 멀리멀리 탐험했지요 산과 사막과 바다까지 뒤졌어요 동쪽에 가서 묻고 서쪽에서도 물었지요, 사람들이 북적이는 아름다운 도시로 가고 햇살 많은 푸른 바닷가도 찾아다녔지요 궁전 같은 집에 묵으며 서정시도 짓고 웃으며 즐겼지요 오 세상은 내가 간청하고 빌었던 것을 많이도 줬어요 그러나 그곳에선 행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실개천 가에 자그마한 흙벽 집 한 채가 있는 내 오랜 골짜기로 발길을 달렸습니다 산마루 호위하는 보초병 전나무 숲에 온종일 바람이 휘휘 부는 그곳 골짜기 위에 자리 잡은 고사리숲을 지나 어린 시절 걷던 오솔길을 구불구불 걸었습니다 들장미 정원 앞에 이르러 달콤한 향기를 들이켜는데 옛 시절처럼 내 집의 불빛이 어스름한 땅거미를 밝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