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미국

메리앤 무어(Marianne Moore)

높은바위 2023. 12. 18. 07:46

 

세월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의 결백인가,

무엇이 우리의 죄인가? 모든 것이

다 드러나며, 어떤 것도 안전하지 않네.

이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답이 없는 질문,

확고한 의심, -

말 못 하는 자가 묻고, 귀먹은 자가 듣네 -

불행에 있어, 심지어 죽음에서조차,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실패함에 있어서도 부추기는,

영혼에게 강해질 것을?

죽을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는

깊이 보며 기뻐하네,

자신의 굴레를 박차고

일어나네

심연의 바다처럼,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나, 이룰 수 없는,

좌절 속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러므로 강렬하게 느끼는 자는,

바르게 행동하네. 노래할수록 키가 커지는

바로 그 새는 그의 몸을 똑바로 세우며

버티네. 비록 새장에 갇혔으나,

그의 힘찬 노래는 말하네,

만족이란 천박한 것이며,

기쁨은 너무나 순수하네.

이것은 인간의 죽을 운명이요,

이것은 영원함이다.

 

* * * * * * * * * * * * * * *

 

메리앤 무어(Marianne Moore, 1887년 11월 15일 ~ 1972년 2월 5일)는 미국의 모더니스트 시인, 비평가, 번역가, 편집자이다.

그녀의 시는 형식적 혁신, 정확한 어법, 아이러니, 재치로 유명하다.

 

무어는 미주리 주 커크우드의 장로교회에서 태어났는데, 그녀의 외할아버지인 존 리들 워너가 목사로 섬기고 있었다.

기계 공학자이자 발명가인 그녀의 아버지 존 밀턴 무어(John Milton Moore)는 정신병적 발작을 앓았고, 그 결과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헤어졌다.

무어는 그를 만난 적이 없다.

그녀와 그녀의 오빠 존 워너 무어는 어머니 메리 워너 무어에 의해 양육되었다.

가족은 평생 동안 서로에게 방대한 양의 편지를 썼고, 종종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The Wind in the Willows : 1908년에 처음 출판된 영국 소설가 케네스 그레이엄의 아동 소설)'의 등장인물을 기반으로 한 장난스러운 별명과 사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서로를 불렀다.

어머니와 남동생과 마찬가지로 무어는 할아버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헌신적인 장로교인으로 남았으며, 기독교 신앙을 시련과 유혹을 통해 입증된 힘의 교훈으로 접근했다.

그녀의 시는 종종 힘과 역경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녀는 "종교적 믿음 없이는 살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무어는 6살이 될 때까지 세인트루이스 지역에서 살았다.

1894년 할아버지가 사망한 후, 세 사람은 2년 동안 피츠버그 근처의 친척 집에 머물렀고, 그 후 펜실베이니아 주 칼라일로 이사하여 어머니가 사립 여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자리를 찾았다.

무어는 1905년 Bryn Mawr College에 입학했다.

그녀는 역사학, 경제학, 정치학을 전공하고 4년 후 A.B.로 졸업했습니다.

시인 힐다 두리틀(Hilda Doolittle)은 신입생 시절 동급생 중 한 명이었다.

Bryn Mawr에서 Moore는 캠퍼스 문학 잡지인 Tipyn O'Bob에 단편 소설과 시를 쓰기 시작했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졸업 후에는 멜빌 듀이의 레이크플래시드 클럽(레크리에이션 클럽 : 리조트)에서 잠시 일한 후, 1911년부터 1914년까지 칼라일 인디언 산업 학교에서 경영학 과목을 가르쳤다.

펜실베이니아 학교에서 속기(速記)를 가르치기도 하고, 뉴욕 공립도서관에 근무하기도 했다.

그 후 <다이얼>지(誌)의 편집자도 지냈다.

시집 <관찰>(1924)로 다이얼상을 받고, T. S. 엘리엇의 서문이 든 <선시집(選詩集)>(1935), <세월이란 무엇이냐>(1941), <그럼에도 불구하고>(1944) 등을 내었다.

<전시집(全詩集)>(1951)은 볼링겐상과 퓰리처상을 받았다.

지적인 관찰, 정확한 이미지, 특이한 시형(詩形) 등으로서 그녀는 가장 독창적인 미국 시인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다.

라퐁텐의 <우화>를 영역하기도 하고, 평론집 외에 근래의 시집에는 <성채(城砦)처럼>(1957), <용이 되고파>(1960)가 있다.

 

81세의 나이에 무어는 1968년 국가 문학 훈장을 받았다.

이 상을 주관하는 위원회는 "우리 시대 몇 안 되는 진정한 시 발명가 중 한 명인 시의 영부인 마리안느 무어는 우리에게 절묘한 완벽함을 암시한다"라고 밝혔다.

무어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무어는 말년에 여러 차례 뇌졸중을 앓았다.

그녀는 1972년에 사망했고, 그녀의 유골은 펜실베이니아 주 게티즈버그에 있는 에버그린 묘지에 있는, 가족의 묘지에 어머니의 유골과 함께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