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 62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

야경(Nachtliche Landschaft) 별 하나가 하루와 같습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빛과 빛으로 닿고 덮인 가장자리, 가거나 오거나, 떨어지거나 서거나, 불안하고, 유령 같았다.만약 그랬다면, 그것은 높은 밤이었다.그리고 만약 그랬다면, 어딘가에 하얗고 찌그러진 마을이 있었고, 숲이 만들어졌고, 잠으로 가득 찬 계곡, 물, 뒤얽힌 물건들, 무덤과 부엌의 문들이 폐허가 된 곳, 안개가 피어오르는 곳, 큰 구름과 습기가 있는 곳, 사람들이 잠든 오두막이 있는 곳, 꿈이 돌아다니는 곳, 열이 가득하고 낯섦으로 가득 찬 곳, 부르다. 동물의 빛, 갑자기 구름의 커튼을 찢어버린 곳; 그 뒤에는 '별을 만나다'나 '로켓의 왕국'이 자라났고, 심연에서 빛이 무섭고, 포효하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길을 따라..

캬랑캬랑

달이나 물빛, 산의 기운이 맑고 쟁쟁함. 금속성의 밝은 것을 의미. '카랑카랑'을 맑게 강조한 말.  내 곁에 와 내 마고자에두 눈 묻고 흐느끼던 그 계집애.눈 내리는 이 밤은 또 어디메서 울고 있는가.눈물도 말라 인제는 캬랑캬랑 하는가. (서정주, '눈 오는 날 밤의 感傷감상', "미당서정주시전집", p. 372) 밥이라니요? 밥이라니요? 굶는 것이 먹는 것보다 많아야마음은 캬랑캬랑 맑는 겁니다.먹는 것은 한 숟갈! 굶는 것은 열 숟갈! (서정주, '印度인도 떠돌이의 노래', "미당서정주시전집", p. 546)

안중근과 지바 도시치

1909년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당하자, 지바 도시치(千葉十七)라는일본 청년은 국가의 영웅을 죽인 '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 ~ 1910년 3월 26일)'을 처단하리라 결심했다. 군인 청년은 만주로 가, 안중근의 헌병 간수가 되었고, 그를 볼 때마다 욕설을 퍼붓고 괴롭혔다.어느 날 안중근은 적개심이 가득 찬 청년의 눈빛을 조용히 응시하며 말했다."개인과 민족과 세계는 그 자체로 귀하고 한 울타리가 되어야 하오. 하지만 당신의 영웅은 울타리를 파괴하고 해체한 사람이오.나는 세계평화를 위해 전범을 제거한 것뿐이외다."이 말은 지바 도시치의 가슴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안중근의 사람됨에 감동한 그는 그 뒤부터 꼬박꼬박안 의사라고 부르며 국적을 초월한 우정을 쌓아 나갔다.안중근은 ..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사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볕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는 '아이세여, 내 너를 사랑했노라…'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쓰여 있음을 볼 때.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쓰여 있었다.'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하나의 치기 어린..

어영부영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분명하게 해야지 어영부영하면 안 된다.""주인아저씨는 충무로의 초라한 뚝배기 집에서 어영부영 지내는 친구들이나 후배들과 낮술을 마시면서 세월을 허비했다." '적극성이 없이 아무렇게나 어물어물 세월을 보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을 '어영부영'이라고 한다.이 '어영부영'은 조선 시대 군대인 '어영청(御營廳)'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어영청(御營廳)은 조선 후기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국내 정세가 어수선하고, 대외적으로는 후금과의 관계가 위급해진 가운데 설치된 오군영 중 왕을 호위하던 군영을 말한다.어영청은 군대 기강이 엄격한 정예부대였는데 조선 말기 고종 때에 이르러 군기가 문란해지고 병기마저 낡아, 도저히 군대라고 부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이를 본 백성들이 '어영청은..

소기파(蘇起坡) 장군 이야기

조선왕조실록 중종 5년(1510) 4월 22일에 기록된 우리의 역사다. 조선 중기 성종 때부터 중종 때까지 활약한 인물로, 삼포왜란에서 크게 활약했던 '소기파(蘇起坡)'라는 무신인데,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한성부 판윤을 지낸 소효식(蘇效軾)의 차남이다. 그는 전투 후 아직 살아있는 왜적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서 그 쓸개를 안주로 삼았고, 얼굴과 손에 피를 바르기를 자약하게 하니, 사람들이 ‘소야차(蘇夜叉)’라 하였다. 불교에서는 악귀를 잡아먹는 무서운 귀신을 야차라고 하니, 왜군은 물론이거니와 조선 사람들마저 소기파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무예가 엄청 뛰어나서 삼포왜란의 1등 공신으로 뽑혔는데, 관료들이 보기에도 이 소기파가 껄끄러웠는지 1등 공신에서 빼자고 건의할 정도였다. 왜란 당시 공격을 받던 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