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첼란(Paul Celan)
흑암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주여. 잡힐 듯 가까이. 이미 잡혀서, 주여, 저희가 하나하나의 몸이 당신의 육신인 듯, 서로를 움켜쥐고 주여. 기도하소서, 주여 저희에게 기도하소서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바람에 뒤틀린 채 저희가 갔습니다 향하여 갔습니다. 물 괸 웅덩이와 분화구를 찾아 몸을 굽히려고. 물 마실 곳으로 갔습니다, 주여. 피였습니다, 그건 당신께서 흘리신 피였습니다, 주여. 그것이 반짝였습니다. 그것이 우리 눈에 당신의 형상을 비추었습니다, 주여. 눈과 입이 저렇듯 열려 있고 비어 있습니다, 주여. 저희가 마셨습니다, 주여. 피와 그 피 속에 잠겨 있는 형상을, 주여. 기도하소서, 주여.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 흑암 : '어둠' 외에도 '죽음의 밤'이라는 뜻도 있는데, 특히 예수가 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