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 101

오드리 로드(Audrey Geraldine Lorde)

여성이 말한다(A Woman Speaks) 해의 흔적과 손길을 받은 달 내 마술은 쓰이지 않았으니 바다는 되돌아올 때 내 형체를 뒤에 남겨 두겠지. 나는 호의가 필요 없다 혈연에 연연하지 않고 사랑의 저주만큼 가차 없으며 내가 저지른 실수만큼 또는 자만만큼 영원하기를 나는 혼동하지 않는다 사랑을 동정과 증오를 경멸과 만약 나를 알고 싶다면 끊임없이 바다가 철썩거리는 천왕성의 내장을 들여다보길. 나는 출생에도 신성에도 깃들지 않으며 늙지 않고 반쯤 자라 여전히 찾고 있다 내 자매들을 다호메이*의 마녀들은 우리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둘둘 감은 옷 안에 나를 입고 애도한다. 나는 여성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 미소를 조심하라 나는 오래된 마법과 정오의 새로운 분노 당신에게 약속된 드넓은 미래를 품은 위험한 ..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과연 어떤 하루를 보내야 할까? 어느 영화 속의 주인공이 그랬다. 매일매일을 지루하게 사는 주인공에게 어느 날 아침,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아침에 눈을 뜨는데 다른 날 아침이 아니라,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똑같이 반복돼서 펼쳐지는 것이다. 내일이 없는 오늘만이 계속되는 끔찍한 형벌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삶이 지겹다고 늘 불평만 하던 사람인데,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지옥이 따로 없는 것이다. 후회를 하고 용서를 빌어도 눈을 뜨면 늘 그날이 그날, 결국 주인공이 내일에 대한 기대를 접고 체념하게 되고서야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에 관심 없이 지나쳤던 사람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고 그렇게 관심을 갖다 보니까 그들이 겪는 고통이 보이고, 그 고통을 나누..

님 찾아 간 길

흐르는 곡은, Bob Welch - Ebony Eyes(검은 눈동자) * * * * * * * * * * * * * * * 님 찾아 간 길 高巖 정서가 가난한 내 마음 내 무딘 언어의 파편을 가다듬으려 찾아 간 길 아니 우리의 사랑 확인하러 간 길 고규(孤閨)의 적막 속에 아늑함은 아득함으로 향기로운 님의 체취(體臭)는 간 곳 없고 타지의 외로움과 돌아와 지지 않을 어둠과 사르지 못한 체념에 눈앞이 가리고 고뇌가 저려옵니다 자신을 지키려는 고귀(高貴)함이 왜 제겐 쓸쓸함과 자괴심(自愧心)이 오는 건가요 저는 당신의 평범한 객인가요 지금까지 온 길보다 더 많은 길을 가고픈 데 그대 어이 낯선 가슴인가요 우린 동위원소(同位元素)인가요.

파울 첼란(Paul Celan)

죽음의 푸가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저녁에우리는 마신다 점심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밤에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그는 그걸 쓰고는 집 밖으로 나오고 별들이 번득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사냥개들을 불러낸다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유대인들을 불러낸다 땅에 무덤 하나를 파게 한다그가 우리들에게 명령한다 이제 무도곡을 연주하라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밤에우리는 너를 마신다 아침에 또 점심에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

마지막 교시(敎示)

부처의 마지막 교시가 '법등명( 法燈明) , 자등명 (自燈明)'이라고 한다. '자기를 등불 삼고, 법을 등불 삼아 가라'는 이 가르침은, 부처의 제자였던 밧칼리 존자의 열반 당시에도 설해졌다고 한다. 육신의 고통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 밧칼리 존자가, 마지막으로 부처의 얼굴을 뵙고 싶어 하자, 이 말을 전해 들은 부처가 지체 없이 달려갔다고 한다. 마지막 임종을 앞둔 제자에게 부처가 물었다. "밧칼리여, 육신의 고통은 어떠한가." "세존이시여, 저는 더 이상 이 고통을 견딜 수 없습니다. 다만 죽기 전에 부처님을 뵙게 됐으니 더 여한이 없습니다." 간절한 제자의 유언을 들은 부처는 자상한 위로의 말 대신, 엄한 꾸짖음을 내렸다고 한다. "···결국은 썩어 문드러질 이 늙은 육신을 보려고 나를 찾았는가? 법..

다랑이논

산골짜기 같은 곳에 층층으로 된 좁고 작은 논배미. → 다랑논. 산수유나무들 집집마다 다랑이논 밭두렁마다 언덕마다 (고은, '산수유', "해금강", p. 28) 그 산골짝 불질러 비알밭 일구고 다랑이논 층층이 단을 이루니 그 소출로 목구멍 풀칠하다 끊겨 부황난다 (고은, '난관', "백두산 · 2", p. 79) 포크레인이 산흙을 져 나르는 대모산 기슭에 쭈그리고 앉아 아직도 거기 남은 다랑이논을 써레질하는 늙은 농부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시영, '달', "길은 멀다 친구여", p.73)

나이가 들수록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이, 손가락 사이로 물이 새듯이 줄줄 새는 것같이 느껴진다. 언젠가 어느 스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이제는 웰빙이 아니라, 웰다잉을 생각하며 살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음이 있고, 누구나 예외 없이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 마련이다. 꼭 나만은 예외일 것 같은 것이 바로 이 죽음이다. 그래서 천년만년 살듯이 '네 것이다, 내 것이다.', '네가 옳다, 내가 옳다.' 자기 몫 챙기기에 급급한 것이 중생의 삶인 것이다. 나이가 들면 알 것은 알게 된다. 주변에 먼저 가신 분들을 보더라도 그렇다. 살아서 아무리 큰 재산을 이루고, 명예를 이루고, 성공을 이루었다고 해도, 갈 때는 먼지 한 톨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우리가 가지고 ..

앙리 미쇼(Henri Michaux)

서울에서 서구 문명은, 물론, 온갖 결점을 다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모든 문명을 쓸어가는 자력(磁力)을 갖고 있다. 세계에는 얕은 즐거움, 흔들림을 향한 일방적인 충동이 있다. 일본의 옛 음악은 바람의 신음 소리와 같다. 새것은 이미 명랑해지고 있다. 중국의 옛 음악은 순수한 경이이다. 가슴에 순하고 느리다. 새것은 다른 것과 같다. 한국의 옛 음악은 비극적이고 무시무시하지만 그것을 부른 것은 기생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 즐겁게 춤을 춥시다’ (그들의 현재의 음악은 망할 놈의 빠른 곡이며, 황인종 중에서도 한국인의 특색을 이루는 그 특이한 격정을 보여준다). 사람은 이제 세계의 먹이가 아니지만, 세계는 사람의 먹이이다. 사람은 오랜 침체에서 빠져나온다. 전에는 정말 울적해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