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 101

괴로움도 함께 나눌 때

경기가 어려워지고 실직하는 가장들이 늘어나면서, '가족해체 현상'도 더 심해진다고 한다. 살림살이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우리 옛날 부모님 세대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통도 불편하고 먹을 것도 흔하지 않았다. 지금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는 살림살이였는데도 그 위기를 견뎌내는 힘만큼은 대단했다. 옛말에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똑같은 위기를 맞아도 뿌리가 튼튼한 가정은 그만큼 내성도 강하다고 하는데, 요즘 대부분의 가정은 그렇지 못하다. 부부간이나 친인척 간에도 그렇다. 좋은 일, 기쁜 일, 자랑할 만한 일은 잘 나누면서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숨기려고 한다. '아이들이 기죽는다.'라고. '가족들이 실망할까 봐.', '자존심 상한다.'라고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병만 크게 ..

칼새

칼새과의 여름 철새. 제비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좀 크고 전체적으로 어둡게 보이며 허리에 하얀 띠가 있다. 날개가 길고 뾰족하여 칼모양임. 명매기. 발목이 빠진 채 논두렁을 걸으면 날으는 칼새, 지친 나의 한 마리 (박태일, '丑山港축산항 · 2-12月월', "그리운 주막", P.35) 칼새들은 마른 나무의 끝을 쪼고, 그대는 그대의 앙가슴팍을 쪼며 스스로 피흘릴 것이다. (김용범, '金김마리아傳전', "잠언집", P. 55) 칼새의 自由(자유)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 칼새의 칼과, 그의 날개와 날개의 줄과 힘줄과.······(중략)······ 칼새는 죽고 죽은 새는 더 많은 새들로부터 자유스러워진다. (김용범, '칼새에 관한 硏究연구 · 1', "비옷을 입은 천사", p. 39)

캐나다: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

행복을 찾는 사람 행복을 찾아 해메었어요. 오 간절한 열망으로 멀리멀리 탐험했지요 산과 사막과 바다까지 뒤졌어요 동쪽에 가서 묻고 서쪽에서도 물었지요, 사람들이 북적이는 아름다운 도시로 가고 햇살 많은 푸른 바닷가도 찾아다녔지요 궁전 같은 집에 묵으며 서정시도 짓고 웃으며 즐겼지요 오 세상은 내가 간청하고 빌었던 것을 많이도 줬어요 그러나 그곳에선 행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실개천 가에 자그마한 흙벽 집 한 채가 있는 내 오랜 골짜기로 발길을 달렸습니다 산마루 호위하는 보초병 전나무 숲에 온종일 바람이 휘휘 부는 그곳 골짜기 위에 자리 잡은 고사리숲을 지나 어린 시절 걷던 오솔길을 구불구불 걸었습니다 들장미 정원 앞에 이르러 달콤한 향기를 들이켜는데 옛 시절처럼 내 집의 불빛이 어스름한 땅거미를 밝혔..

늘 부드럽게 말하는 마음

아이들이 말하는 태도나 행동을 대하다 보면, 은연중에 그 부모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말씨가 거칠거나 행동이 폭력적이어서 자주 다투고 싸우는 아이들을 보면, 전혀 근거 없이 그러는 것이 아니다. 유치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다. 어쩌다 아이들 집에 전화할 일이 있어서 전화를 걸면, 남편이 전화를 받아서 아내를 바꿔줄 때 이렇게 말하는 가정이 있다. "야, 유치원 선생한테 전화 왔는데 받아봐!" 집안의 가장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내를 '야!"라고 부르고, 선생님을 '선생'이라고 함부로 말하니, 아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의 말과 태도는 그 생각과 마음의 표현이라고 한다. 아내를 '야!'라고 하는 말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읽히지가 않고, 선생님을 '선생'이라고 하는데 그 어디..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코코아 한 잔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 - 말과 행동으로 나누기 어려운 단 하나의 그 마음을 빼앗긴 말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려는 심정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적에게 내던지는 심정을 - 그것은 성실하고 열심한 사람이 늘 갖는 슬픔인 것을. 끝없는 논쟁 후의 차갑게 식어버린 코코아 한 모금을 홀짝이며 혀 끝에 닿는 그 씁쓸한 맛깔로,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프고도 슬픈 마음을. (1911.6.15) * * * * * * * * * * * * * * * *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1886년 2월 20일 ~ 1912년 4월 13일)는 일본 메이지 시대의 시인 겸 문학평론가이다. 백석이 존경하고 사랑했던 시인이다. 지금은 죽어 일본 하코다데에 묻혀 있는 시인. 교사 신분으로, 학교개혁을 위해 ..

바른 말과 행동으로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구슬이 보배가 된다고는 하지만, 구슬을 꿰지 않고 그냥 두면 별반 가치를 갖지 못하게 된다. 불교의 인과법이 그와 비슷하다. 꽃씨를 놓고 봐도 꽃씨라는 원인에는 꽃이 될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다고 다 꽃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씨앗이라는 원인에 흙이나 물, 햇빛, 바람 같은 조건이 더해져야 비로소 싹이 트고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씨앗이 그렇고 구슬이 그런 것처럼 우리 안의 불성도 그렇다. 석가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부처될 씨앗이 있다'고는 하였지만, '부처가 될 씨앗'이 있다고 해서 모든 중생이 다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꽃씨라는 원인에 꽃이 필 조건이 필요하고, 구슬이라는 원인에 보배가 될 조건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안의 ..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9월 밤의 불평(九月の夜の不平) 지도 위 놓인 조선국 강토 위로 地図の上朝鮮国に 새카매지게 먹을 칠하며 黒々と墨を塗りつつ 가을바람 소리 듣네 秋風をきく 누군가 나를 誰そ我に 피스톨 가지고서 쏴 주지 않으려나 ピストルにても撃てよかし 얼마 전 이토처럼 죽어 보여주련다 伊藤のごとく死にて見せなむ * * * * * * * * * * * * * * * * 위와 같이 한일 강제 병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담은 시를 짓고, 젊은이들로 하여금 제국주의 일본에 저항하길 독려하는 산문을 발표하는 등 반제국주의적 성향을 지닌 일본인이었다. 위의 단카는 실제로 일본과 같은 색으로 표기된 조선 지도 위에 먹을 칠하면서 지었다는 이야기도 그의 지인으로부터 전해진다. 천황 암살을 추진하다가 체포되어 사형을 당한 고토쿠 슈스이의 대..

흔히 사람의 한평생을 '길'에 비유하기도 하고, 하루하루의 삶을 '배움'이나 '수행'에 비유하기도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또 짧은 것이 우리 인생이다. 세상의 수많은 생명 중에서 하필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도, 어지간한 인연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가 여간 소중한 시간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매일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열심히 일하고, 충분히 자고, 만족한 자신의 기호 시간을 가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나름대로 수행을 하는 사람도 제 자신을 잘 보지 못하고, 늘 남에게 먼저 초점을 맞추기가 십상이다. 누군가 못마땅한 말을 한다거나 못마땅한 행동을 하면, '말을 왜 저렇게 할까? 행동을 또 왜 저렇게 할까?',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소중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