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221

65. 전라도 가시내

65. 전라도 가시내 이용악(李庸岳) 알록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히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

64. 오랑캐꽃

64. 오랑캐꽃 이용악(李庸岳)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홈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ㅡ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건너로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 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백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을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께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1940. 인문평론 * 이 작품은 일제에 의해 강점당한 연약하고 순수한 한민족의 억울함과 비통함을 형상화한 시이다. 이 시는..

52. 黃 昏

52. 黃       昏                        이 육 사(1904-1944)   내 골방의 커텐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 십이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우 그 많은 囚人들에게도  의지가지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탄 행상대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토인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