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밀 어 75. 밀 어 서 정 주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늘 가에 머무른 꽃봉오릴 보아라. 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 늘인 채일을 두른 듯, 아늑한 하늘 가에 뺨 부비며 열려 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저, 가슴같이 따뜻한 삼월의 하..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1
74. 歸 蜀 途 74. 歸 蜀 途 서 정 주 눈물 아롱 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西域 三萬里.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巴蜀 三萬里. 신이나 삼어줄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1
73. 자 화 상 73. 자 화 상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 먹고 싶다 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1
72. 花 蛇 72. 花 蛇 麝香 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아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뚱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1
71. 문 둥 이 71. 문 둥 이 서 정 주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시인부락 창간호, 1936. 11. * 관능적인 심상과 처절한 울음이 감각의 차원을 넘어 근원적인 체험에 도달하도록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이 시는 단순히 시적 자아의 존재에 대한 울음..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1
70. 달․葡萄․잎사귀 70. 달․葡萄․잎사귀 장 만 영(1914 - 1975) 順伊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어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順伊 포도넝쿨 밑에 어린 잎새들이 ..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1
69. 南으로 창을 내겠소 69. 南으로 창을 내겠소 김 상 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1934. 문학 * 이 시는 자연과 함께 사는 인생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이 시의 서정적 ..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1
68. 告 別 68. 告 別 어제 나에게 찬사와 꽃다발을 던지고 우뢰 같은 박수를 보내주던 인사들 오늘은 멸시의 눈초리로 혹은 무심히 내 앞을 지나쳐버린다 청춘을 바친 이 땅 오늘 내 머리에는 용수가 씌워졌다 孤島에라도 좋으니 차라리 머언 곳으로 --- 나를 보내다오 뱃사공은 나와 방언이 달라도 좋다 내가 떠..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07
67. 男사당 67. 男사당 노천명(盧天命)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香丹이가 된다 이리하야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려 람프불을 돋운 포장 속에선 내 男聲이 십분 굴욕된다 산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소도구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1940. 삼천리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07
66. 사 슴 66. 사 슴 노 천 명(1912-1957)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 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1938. ꡔ산호림ꡕ * 사슴..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