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落 花 96. 落 花 조 지 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8
95. 봉황수 95. 봉황수 조 지 훈 벌레 먹은 두리기둥1),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2)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8
94. 古 風 衣 裳 94. 古 風 衣 裳 조 지 훈(1920-1968) 하늘을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차마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짓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8
93. 해 93. 해 박 두 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어, 달밤이 싫어,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어…… 해..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8
92. 道 峯 92. 道 峯 박 두 진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나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山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山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生은 오..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8
91. 靑 山 道 91. 靑 山 道 박 두 진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루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 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넘엇골 골짜기 울어 오는 뻐꾸기 …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8
90. 墓 地 頌 90. 墓 地 頌 박 두 진 北邙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어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수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읫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곷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8
89. 離 別 歌 89. 離 別 歌 박 목 월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8
88. 家 庭 88. 家 庭 박 목 월 地上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8
86. 하 관(下 官) 86. 하 관(下 官) 박 목 월 관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 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全身)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 한국의 현대시 감상 2005.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