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92. 道 峯

높은바위 2005. 7. 18. 06:02
 

92. 道    峯

 

                                      박 두 진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나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山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山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生은 오직 갈사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1946. 『청록집』

 

* 이 시는 저녁 무렵의 산을 배경으로 하여 삶의 외로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먼저, 쓸쓸한 가을 산의 전체적인 모습이 그려지고, 그 속에서 누군가를 불러보는 주인공과 그 주변 상황이 전개된다. 마침내 주인공의 괴로운 모습이 나타나면서 그의 마음 속에 담긴 슬픔까지도 포착하게 된다. 이처럼 이 시는 뒤로 갈수록 조용한 사색의 분위기에서 짙은 우수의 빛깔로 변화하는 흐름을 보인다.

  이 시의 표형상의 특징은 각연이 자연 및 인간의 행위의 표현과 그에 대한 공허한 대답으로 대응됨으로써,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관조적 태도와 자기 정화의 효과를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