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落 花
조 지 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1946. 『청록집』
* 이 시의 이미지는 별, 꽃, 촛불 등과 같이 사라지고 떨어지는 하강 이미지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이 다양한 공감각적 이미지를 통하여 비애와 우수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또한 이 시의 서정적 자아의 심정은 ‘성긴 별’, ‘떨어지는 꽃잎’, ‘귀촉도 울음’등 비애와 우수를 자아내는 소재에 의해 간접적으로 형상화된 서정적 자아의 심정이 마지막 연에서 직접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별이 사라지고 꽃잎이 지는 밤에 누가 알까 두려워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존재이며, 떨어지는 꽃잎만 보고도 애수에 젖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