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72. 花 蛇

높은바위 2005. 7. 11. 05:58
 

72. 花      蛇

 

  麝香 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아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뚱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麝香 芳草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 석유 먹은 듯 … 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설이다 …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 … 스며라, 배암!

 

                        1936. 시인부락

 

  * 이 시는 시인의 시집『화사집』의 머리의 시로 시린 작품이다. 구약 창세기 원죄의 표상인 뱀(사탄)을 소재로 한 탈전통의 작품이다. 그런데 ‘돌팔매를 --- 따르는 것은’에 보이는 시적 자아의 이율 배반적인 모습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돌팔매를 쏘는 것은 유혹을 거부하는 윤리 의식, 초자아의 표현이며, 그에 따르는 것은 죄악에 이끌리는 무의식적, 원초적 자아의 발동이다. 서정적 자아가 이러한 길, 즉 어둠에 빛의 자아가 패배하게 됨으로써 반윤리적이고 탈역사적인 행로를 걷게 되며, 일제하 서정주의 친일 행위도 이러한 인식의 결과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