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70. 달․葡萄․잎사귀

높은바위 2005. 7. 11. 05:56
 

70. 달․葡萄․잎사귀

 

                   장 만 영(1914 - 1975)

 

  順伊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어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順伊 포도넝쿨 밑에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1936. 시선집

 

* 이 시는 가을 밤, 달이 비치는 뜰의 모습을 시각적인 형상을 통해 표출한 아름다운 시이다. 서정적 자아가 순이라는 여인을 부름으로써 이 작품이 그리는 달밤의 뜰이 한결 호젓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따게 한다. 여기에 벌레와 포도와 잎사귀가 함께 어우러져 달밤의 정서를 한껏 고조시킨다. 작중 인물이 현재 있는 곳은 벌레 우는 옛스런 뜰인데, 여기에 달빛이 밀려와 있다. 우는 벌레나 밀려드는 달은 뜰의 적막함을 돕는다. 포도에는 달빛이 스미고,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어 간다. 이런 배경 속에서 달은 과일보다 향기로울 수 있을 수 있다.

 

  달의 의미 : 우리 문학에서 달은 여러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나타난다. 향가인 원왕생가, 찬가파랑가의 달은 서방 정토의 인도를, 고대 가요 정읍사에서 달은 기다림과 그리움을 의미한다. 이 시에서의 달은 이러한 전통적 정서를 계승하면서 나아가 시적 자아가 그리워하는 대상과의 합일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