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61. 女 僧

높은바위 2005. 7. 2. 07:13
 

61. 女     僧

                    백  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山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1936. ꡔ사슴ꡕ

 

* 이 시는 한 여인의 기구한 삶과, 그에 대한 시인의 정회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여승은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삶을 살았던 여인의 한 사람이다. 지아비와 딸아이와 함께 농사나 지으면서 살았을 여인이, 집을 떠나 옥수수 행상으로 깊은 금점판을 떠돌며 남편을 찾아 헤매다, 딸이 죽어 돌무덤에 묻히자 삭발을 하고 가지취와 불경을 만지면서 여생을 보내는 여승이 된 것이다. 곧, 이 여승은 농촌의 몰락으로 가난하고 한스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여승의 모습에서 불경처럼 서러워지는 시적 자아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시의 시상은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고, 소설의 플롯처럼 재구성되어 전개된다. 곧, 1연에서는 산사에서 여승을 만나는 장면을, 2연에서는 옛날 평안도 어느 금점판에서 옥수수 행상을 만난 것을, 3연에서는 그 여인의 기구한 삶과 여승이 된 과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해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