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 감상

52. 黃 昏

높은바위 2005. 6. 30. 05:48

 

52. 黃       昏

                        이 육 사(1904-1944)

 

  내 골방의 커텐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 십이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우 그 많은 囚人들에게도

  의지가지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탄 행상대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토인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 푸른 커텐을 걷게 하겠지

  암암히 사라지긴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보다

 

                               1933. 신조선

 

* 시적 발상의 계기는 첫 연과 마지막 연에서 드러난다. 시인은 5월의 어느날 골방의 커튼을 걷으며 황혼에 젖은 바다와 그 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를 바라본다. 보기에 따라 아주 예사로운 이 정경은 그러나 시인에게 심상치 않은 인생의 기미를 느끼게 해 준다.

김영무 교수에 의하면, "황혼은 죽어 가면서 더욱 붉은 빛으로 모든 것을 안아 들이는 크나큰 사랑"이며 그는 자신이 '황혼과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자아의 밀실[골방]의 커튼을 열고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날 별과 외로운 수녀, 감옥의 죄인들, 사막의 행상대, 아프리카의 토인 등 모든 외롭고 괴로운 존재들을 부드럽게 안아 뜨거운 입맞춤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초연하고도 관조적인 태도로 막연한 인류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모순 속에서 버림받고 '의지가지 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뜨거운 입술을 보내는 점이다. 입맞춤의 대상은 제2,3,4연에 열거되고 있는데, 그것들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에서 확실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나아간다. 2연의 '모든 것'이 제3연에서는 '별들', '수녀들', '수인(囚人)'로 제시되고, 4연에서는 '행상대', '토인들', '지구의 반쪽'으로 확산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점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하여 그는 결국 '골방'이라는 좁은 공간으로부터 '지구의 반쪽'을 내다보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그의 '골방'1920년대의 시인들의 시에 흔히 나타나는 '밀실'이나 '동굴'의 폐쇄적인 공간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그가 왜 '지구'라고 하는 대신 '지구의 반쪽'이라는 말을 쓴 것일까? 무엇보다 제4연에 열거된 '낙타 탄 행상대''활 쏘는 토인들'의 의미를 무심히 보아 넘길 수 없다. 우리는 앞에서 그의 사랑의 대상이 '의지가지 없는' 사람들이기에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가 온통 제국주의의 활극장을 이루고 있을 때, 그들은 아직도 '낙타'를 타고 ''을 쏘는, 소위 비문명국으로 남아서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한 사정은 당시의 우리 나라도 비슷하다. 세계가 온통 지배자의 나라와 피지배자의 나라로 양분되다시피 한 사정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지구의 반쪽'의 의미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