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 63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떼까마귀가 있는 겨울 풍경 물방아 홈통의 물은, 돌로 만든 수문(水門)을 지나,저 검은 연못 속으로 곤두박질쳐 떨어지고,연못에는, 우스꽝스럽고 철 지난, 백조 한 마리가눈(雪)처럼 정숙하게 떠돌고 있다, 그 하얀 반사를확 끌어내리길 갈구하는 구름 덮인 마음을 조롱하며. 준엄한 태양은 늪지 위로 하강한다,이 유감(遺憾)의 풍경을 더 오래 바라보기를수치로 여기는, 주황색 키클롭스 눈(目).생각에 어둡게 깃털 덮인 채, 난 깊은 상념에 잠겨떼까마귀처럼 훌쩍 걷는다, 겨울밤은 밀려오는데. 지난여름의 갈대는 모두 얼음 속에 새겨져 있다,당신의 영상이 내 눈 속에 그러하듯. 메마른 서리는내 상처의 창의 유리가 되어간다. 어떤 위안이바위를 치면 나와서 마음의 황무지를 다시금 푸르게 만들 수 있을까? 누가 이 모진 곳..

'영문(營門)을 모르겠다'의 어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영문을 모르겠다.""오랑캐들이 북병사에게 절을 올리니 영문 안에는 울부짖는 환호의 소리가 또 한 번 진동한다." 도통 알 수 없는 일이나 상황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영문(營門)을 모르겠다'라는 말을 쓴다.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뜻이 여럿이 있는데, '일의 진행되는 까닭이나 형편', '병영의 문', '군대가 주둔하는 지역의 안' 중에 '병영의 문'이 어원의 유래와 관계가 깊다. 조선시대, 각 도의 감사(監司)가 업무를 맡아보던 관아인 '감영(監營)'의 '영(營)'과 '문(門)'이 합쳐진 말이다.팔도의 종 2품(從二品)의 높은 품계를 가진 감사(監司)가, 후에 호칭이 관찰사(觀察使)로 바뀐다.그런 관찰사만이 '영문'을 드나들 수 있었고, 관찰사의 경호문제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과..

캐럴 앤 더피(Carol Ann Duffy)

여가를 위한 교육 난 오늘 뭔가를 죽일 거야. 무엇이든지.난 지겨울 만큼 충분히 무시되었고, 오늘은신이 되려고 해. 오늘은 그저 그런 날이야,거리에 따분함이 넘쳐 우울하게 느껴지는.​ 난 파리를 엄지손가락으로 창문에 짓눌러 죽였어.우리는 학교에서 그랬었어. 셰익스피어가. 그건다른 언어였고, 이제 파리는 다른 언어 속에 있어.난 내 재능을 창문에 불어내었고, 내 이름을 써넣었어.​ 난 천재야. 난 무엇이든지 될 수 있어, 기회만주어진다면, 하지만 난 오늘 세상을 바꿀 거야.누군가의 세상을. 고양이가 날 피하네, 고양이는아는 거야, 내가 천재인 줄, 그리고 숨어버렸어.​ 난 금붕어를 변기에 쏟아붓고, 물을 내렸어.그것이 보기에 좋았어. 앵무새는 공포에 질렸어.보름에 한 번은, 난 2마일을 걸어 도시로 가지,..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튤립 튤립은 너무 흥분을 잘해요, 이곳은 겨울. 보세요, 모든 것이 순백색이잖아요, 조용하고 또 눈 속에 갇혀 있어요. 햇살이 이 흰 벽, 이 침대, 이 손에 떨어질 때 나는 조용히 혼자 누워 평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무명인입니다. 그래서 폭발과는 아무 관계도 없지요. 나는 내 이름과 내 세탁물을 간호원들에게, 또 내 병력을 마취사에게, 내 몸은 외과 의사들에게 내주어 버렸답니다.  그들은 내 머리를 베개와 시트 끝동 사이에 받쳐놓았어요 마치 닫히지 않는 두 개의 흰 눈꺼풀 사이의 눈처럼. 멍청한 눈동자, 모든 걸 놓치지 않고 봐야만 된다니. 간호원들이 지나가고 또 지나가요, 그들이 성가시진 않아요. 그들은 흰 캡을 쓰고 갈매기가 내륙을 지나가듯 지나가죠. 저마다 손으로 일을 하면서, 이 간호원이나..

캐럴 앤 더피(Carol Ann Duffy)

첫사랑 첫사랑이 립스틱만큼 입술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말하는 꿈에서 깨어나, 난 네 이름을, 수년간의 침묵 후에, 베개 머리맡에 말하네, 네 이름의 힘은 날 발가벗은 맨몸으로 창가에 다가가, 빛에 흔들리는 정원에 이름을 재차 말하게 하네. 아이의 사랑이었네, 하나 난 그 영상들을 눈에 힘주어 떠올리네, 처음엔 초점 없이 흐릿하게, 그러곤 거의 또렷하게, 낡은 영화가 느린 속도로 상영되듯이. 종일 난 그것을 보네, 내 연인의 두 눈을, 거울 속에서, 수시로 바뀌는 하늘을 담은 창문에서, 네가 그 어디에 있더라도. 그리고 나중에 여기, 오래전에 죽은, 한 별이 정확히 눈물방울 크기처럼 보이네. 오늘 밤, 꿈속에서의 연애편지가 내 가슴에 말을 더듬네. 얼마나 진지했던가. 넌 그 마지막 저녁에도 내 머릿속에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