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이탈리아

레오파르디

높은바위 2015. 9. 14. 09:42

 

        고독한 새

 

낡은 교회의 종탑 위에

고독한 새 한 마리

해질 때까지 넓은 광야를 향해

끝없이 노래하고 있나니

그 노래 소리 온 마을에

즐겁게 울려 퍼지도다.

아름다운 봄은

대기를 밝게 하고

대지를 충족시키니

이를 찬미하는 이의

마음 흐뭇하게 하노라.

들에선 양떼와 소들의

지껄이는 소리 들리고

하늘엔 만족스런 듯이

새들이 자유를 구가하면서

하늘을 누비며, 새들에게

가장 좋은 계절을 이리

즐거워하고 있노라.

생각에 가득 찬 듯한 한 마리 새,

너는 이 광경을 모두 보면서도,

친구도 찾지 않고, 날 생각도 않고,

즐거움을 마다하는구나.

다만 노래 부르는 것으로

가장 아름다운 계절과

너의 젊은 시절을 보내는구나.

 

아 너의 그 외로운 모습,

어찌 나의 고독함과

그리 닮았느뇨!

젊은 시절의 흥겨운 동반자인

즐거움과 웃음도, 젊은이의

형제인 사랑도,

늙은 후의 후회도 나에겐

또 나의 젊은 시절을,

나 자신을 그 누가 이해하리오?

그렇게까지 된다면

아 나는 후회 속에 나를 보낼 것이며,

위로의 희망도 없이

지난날의 추억 속에서만

삶을 지탱해 나갈 것이로다.

 

 

 

* 레오파르디(Giacomo Leopardi : 1798-1837)는 레마르케주(州) 레카나티의 백작 집안에서 태어나 소년시절부터 가정교사를 하며, 지나친 공부가 생애에 걸친 병의 원인이 되어 11세 때 구루병, 17세 때에 폐결핵과 눈병까지 앓았다.

일찍이 그리스 · 라틴 · 헤브라이 · 프랑스 · 영국의 각국어에 정통했고, 언어학적 논문을 쓴 후, 1816년에 심원(深遠)한 염세사상을 표현한 최초의 시 <죽음에 다가서는 찬가>를 써서 탁월한 염세시인의 편모를 나타내었다.

 

1817년 말 유부녀인 카시에와의 첫사랑의 파탄에서 <초련(初戀)>이 나왔고, 다음해 자기 집 마부의 막내딸을 연모하게 되어 시인의 불행한 처지를 윤택하게 한 숭고한 사랑의 추억을 장식하였다.

이것이 후년의 명시(名詩) <시루비아에>(1828)에 잘 표현되어 있다.

같은 해에 그의 재능을 간파한 작가 졸다니와 알게 됨으로써, 1817년 조국의 정치적 · 지적 쇠퇴를 한탄하여 단편시 2편의 애국시 <이탈리아에 바친다>, <단테의 비(碑)에 부쳐서>가 나왔고, 본격적인 시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어린 천재로 알려졌으나 병으로 약하여져 세상을 비관하는 그의 경향은 그의 시의 특징이 되었다.

 

1822년 로마에 유학하여 고대 문학을 연구한 후, 볼로냐 · 피렌체로 전전하다가 나폴리에 안착하여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의사의 권유로 1827-1828년 피사에 전지(轉地)하여 명시 <부활>, <시루비아에>를 완성, 이어 고독한 청춘의 회고 <고독한 새>(1829), 인류의 숙명적 고뇌를 달에게 묻는 <아시아에서 방황하고 있는 목자(牧者)의 밤의 노래>(1830)를 썼다.

 

1830년 피렌체에 체재하면서 토체티 부인과 실연하였고, 1836년 친구인 리니엘리와 그의 누이의 초청으로 나폴리에 가서 베수비오 화산 산록의 한촌(寒村)에 머물면서, 칸초네 41편을 수록한 <칸티(Canti)>의 결정판이 1835-1836년의 사이에 간행된 외에, 대화체의 단편집 <도덕적 소품집>, 에세이 소품집인 <잡기장(雜記帳)> 및 <서간집> 등을 남기고 나폴리에서 누이동생의 간호를 받으며 죽었다.

그의 문체는 간소하고 명백하여 고전적 색채가 강하다.

                                                                                                                                (두산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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