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이탈리아

다눈치오

높은바위 2015. 9. 15. 09:13

 

          숲에 내리는 비

 

조용해 주오.

숲속에 이르니

이제 여기엔

인간의 목소리 들리지 않고,

다만 새로운 소리,

물방울 소리와 나뭇잎

소리만 저 멀리서

들려오나니.

 

들으세요.

흩어진 구름에서

비가 내리는구려.

 

여름 더위에

찌들어진 상록수

나뭇가지에,

소나무 솔잎에

비가 내린다.

 

성스러운 이 나무들에

찬란한 노란 꽃송이 위에,

모든 풀 위에

비가 내린다.

 

우리의 즐거운 얼굴에,

가리지 않고 있는 우리들 손에

우리의 가벼운 옷에,

아무 관심이 될 수 없으며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들로 부터 항상

멀리 도피하고 있노라.

 

내 고향 땅이건만 나는

혼자이며 이방인으로

이 봄을 지내는도다.

 

이 마을의 축제날,

해는 져서 저녁이 다가오니,

사람들은 축연을 열게 되고

조용한 대기를 뚫고

종소리와 축포소리 울리며

그 소리는 집에서 집으로

멀리까지 전해지는구나.

 

모든 이들은 예복을 입고

집을 나서 거리로 쏟아지니

젊은 남녀는 서로서로

쳐다보며 즐거워하더라.

 

나는 홀로 이 마을을

떠나면서 모든 유희와 즐거움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따가운 태양빛에 노출된

나의 얼굴에 따가움을 느끼면서,

 

저 먼 산 넘어 해가 지고,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추는 것을 보니

마치 축복된 젊은 시절도

저 태양과 같이 저물 날이

있으리라, 느껴지도다.

 

너, 외로운 새야,

하늘이 너에게 준

생명의 마지막 날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너는 너의 지난 외로운 날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

 

모든 동물의 욕망은

그러하지 않건만

나 만일 늙기 전에 죽음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가질 수 없게 되어,

 

나의 늙은 눈이 다른 이의

마음을 읽지 못하게 될 때

이 세상은 바로 공허이며,

앞날은 지루하고

참기 힘든 시간일 것이다.

 

고독을 찾아 헤메이는

이 나의 심정을

새롭게 된 마음을 간직하는

새로운 생각들에,

어제는 에르미로네, 너를

오늘은 나를 놀라게 한

그 짧은 이야기 위에

비가 내린다.

 

우리의 즐거운 얼굴에,

가리지 않고 있는 우리들 손에

우리의 가벼운 옷에,

아무 관심이 될 수 없으며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들로 부터 항상

멀리 도피하고 있노라.

 

내 고향 땅이건만 나는

혼자이며 이방인으로

이 봄을 지내는도다.

 

이 마을의 축제날,

해는 져서 저녁이 다가오니,

사람들은 축연을 열게 되고

조용한 대기를 뚫고

종소리와 축포소리 울리며

그 소리는 집에서 집으로

멀리까지 전해지는 구나.

 

 

 

* 다눈치오(Gabriele D'Annunzio : 1863-1938)는 아브루치의 페스카라에서 태어나 로마대학을 졸업한 천재시인이며, 소설가, 극작가다.

플라토의 기술학교 재학 중, 카르두치의 영향을 받은 카르두치풍(風)의 1880년 시집 <조춘(早春)>을 처음 출판하여 호평을 받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1881년 로마로 이사하였으나, 시골출신인 이 청년은 순식간에 저널리즘의 총아가 되어 귀족들이 모이는 살롱의 인기인이 되고, 문학적으로는 유럽 데카당스의 흐름을 따라 G.카르두치의 시풍에서 벗어나 1915년까지 문단의 중심적 존재가 되었다.

이교적이며 신비적인 작품을 쓴 그는 후기로 가면서 탐미적, 감각적 경향을 보였다.

 

정력적인 작가로 시집 13권, 단편집 4권, 소설 8권, 극작 17편, 그 밖에 평론, 산문집 등이 있다.

1893년에 <죄없는 자>의 불역(佛譯)이 나와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1910년에 빚 때문에 프랑스로 도피,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에 조국 이탈리아의 참전을 주장하고 귀국, 그해 7월 의용군에 가담하여 전선에서 활약하였으나 그 이듬해 비행 중 오른쪽 눈이 실명되었다.

종전 후 국제 연맹의 결정에 항의하여 피우메 시(市)를 점령하는 장거를 감행하였다.

1921년 동시를 자국군에 인계하고 귀국, 1924년 파시스트 정부로부터 몬테 네보소공(公)으로 후작의 칭호를 받고 아카데미 회장이 되었으나, 파시즘과는 맞지를 않아서 만년에는 은퇴하여 북 이탈리아에서 생활했다.

1938년 가루다 호반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프랑스 자연주의와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시는 풍부한 시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활기에 찬 운율로 생의 환희를 노래하며 관능적 미가 넘치는 것이었다.

특히 <하늘과 땅과 바다와 영웅의 찬가>중의 제3권 <알초네>(1904) 가운데에 우수작이 많다.

 

19세기 말 퇴폐적인 남부 유럽적 향락을 구가하는 소설도 많이 썼는데, 대표적인 장편소설 <죽음의 승리>(1894)는 <쾌락>(1889), <죄 없는 자>(1892)와 함께 3부작을 이루어 그 스스로 <장미의 로망스>라는 제목을 달았다.

육체의 쾌감을 추구하면서 항시 불안에 괴로워하는 향락주의자의 심리를 시와 같이 응축된 문체로 묘사하고 있다.

어느 작품에나 대중 취향을 꺼려한 니체적인 초인사상(超人思想)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한없는 미의 추구자이던 그는 동양 문물에도 흥미를 가져 이를 작품 속에 취급한 것이 있다.

한편, <백합의 로망스>에는 <바위의 처녀>(1895), <석류의 로망스>에는 <불꽃>(1900)이 출판되었다.

                                                                                                                           (브리태니커 참조)

소사나무숲의 아름다운 멜로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