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이탈리아

에우제니오 몬탈레(Eugenio Montale)

높은바위 2023. 2. 1. 07:08

 

죽음을 말한다

 

더 이상 볼 수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인식할 수가 없다는 것

더 이상 인식할 수가 없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

 

더 이상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증언을 못한다는 것

더 이상 증언을 못한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

 

더 이상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

더 이상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

 

더 이상 사랑할 수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용서를 못한다는 것

더 이상 용서를 못한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

 

더 이상 살아 있는 것이 못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변화할 수가 없다는 것

더 이상 변화할 수가 없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

 

* * * * * * * * * * * * * * * * 

 


* 에우제니오 몬탈레(Eugenio Montale,1896년 10월 12일 ~ 1981년 9월 12일)는 1896년 10월 12일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나, 1917년 제노바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중단, 장교로서 전선에 투입되었다.

군 제대 후 대학 공부를 포기했으며, 잠시 성악을 공부하다가 회의를 느끼고 문학 공부에 정진했다.

1925년 시집 『오징어 뼈』를 발표하고 1927년 피렌체로 이주, 벰포라드 출판사에서 일했다.

문예지 《솔라리아》의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39년 시집 『기회』를 발표했다.

1948년에는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편집자로 초빙되어 밀라노로 이주했다.

1956년 『폭풍우와 기타』를 출간하고 마르초토 문학상을 받았다.

1961년에 밀라노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1967년에는 종신 상원 의원으로 피선되었다.

197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많은 시와 산문, 비평문을 남기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다른 분야의 문화 예술 활동에도 많은 업적을 남긴 뒤 1981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에우제니오 몬탈레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 오래전부터 이미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어 왔을 정도로 유럽 문단에서 이름을 떨친 작가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린제이 상, 파토레 문학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고, 그의 시적, 문화적 업적이 인정되어 종신 상원 의원으로 추대받기도 하였다.

또한 전통성과 역사성을 외곬으로 고집하는 이탈리아 대학가에서도 동시대의 시인인 그에 관한 연구열이 아주 높다.


몬탈레는 운가레티, 콰시모도와 함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탈리아 시단에 새롭게 물결친 순수시 운동 '에르메티스모'의 선봉자로 평가받고 있다.

에르메티스모의 시인들은 전통을 모두 뒤엎고 개혁 정신을 고취하려는 미래주의나 심미적 감각주의에 반기를 들고, 암울한 현실을 유추와 암시를 통해 시의 화판에 담았던 이들이다.

이 운동의 중심점에 서 있는 몬탈레는 자기와 동시대인의 정신 상태를 심리 분석적인 상징법을 적용하여 작품에 잘 투영하여, 우리 시대 시인의 이미지를 가장 적절하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물리적인 상태에서 형이상학적인 단계로 끌어올림으로써 양자 사이의 괴리감을 소멸해 나갔다.

1930년대부터 그가 남겨온 방대한 양의 시에는 시의 순수한 형태를 빌려 그의 깊은 사상이 담겨 있으며, 그 안에 자리 잡은 굳건한 사상적 기반으로 그는 시를 통하여 이탈리아의 20세기 정신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에우제니오 몬탈레는 '절망의 시인'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의 현실에서 얻은 경험이 시의 뼈대를 이룬 데서 나온 말이다.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몬탈레는 참혹한 전쟁 경험에서 현실에 대한 커다란 절망감과 위기의식을 느낀다.

자기 자신이 처한 세계에서 현실과 부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느끼는 절망감과 공허감 때문에 그는 현실로부터 한 발 물러나 바다의 이야기를 즐겨 노래한다.

이는 바다와의 대화로부터 현실과의 끊어진 관계를 수립하려는 시인의 의도적인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시인의 바다는 리구리아(이탈리아 북서부의 한 지방)를 끼고 흐르는 지중해다.

이 지중해는 몬탈레의 시들이 비 오고 난 뒤 늪 속에 솟아난 버섯들처럼 옹기종기 피어난 온상과도 같다.

다음 구절에는 그가 바라보는 지중해가 나타나 있다.



그대가 심연에 있는 온갖 쓰레기를
바닷가 불가사리, 코르크 조각, 해초 속으로
내리치듯 나 역시 모든 불결 씻어버리라고…….
그대가 맨 처음 나에게 일러주었소.


'오징어 뼈'라는 시집의 타이틀 자체가 시사하듯 몬탈레의 시에는 어떤 암시가 도사리고 있다.

'뼈'는 바닷가에 흩어진 퇴적물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바닷가에 버려진 잡동사니, 이것을 곧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보는 것이 몬탈레의 관점이다.

바다라는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은 초라할 수밖에 없다.



바다여, 그때처럼 오늘도
그대 앞에 무감각해지는 나,
나 어찌 받을 수가 있을지
그대 호흡이 주는 숭고한 충고를,
내 마음의 미세한 고동일랑
한순간의 그대 숨결에 그친다고……



황량한 바다를 앞에 두고 보면, 우리는 헐벗은 자와도 같고 정신을 가다듬을 지혜마저 잃으며 오직 절망감만이 남을 뿐이다.

이것은 곧 자기 부정과 마찬가지다.



오늘 그대에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린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뿐.



이것은 삶에 대한 몬탈레의 부정적 태도를 시사한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때 우리는 암흑 속에 있는 기분을 느낀다.

아니 암흑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무(無)만 있을 뿐 원하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실존과 본질의 문제를 사양 없이 부정해 버리니 허무감과 허탈감만 감돈다.

이 때문에 몬탈레를 가리켜 '절망의 시인'이라 한 것이다.

파시스트 독재 치하에서 고통당하는 독자들의 내면에 도사린 무미건조성, 억압된 상황의 고달픈 욕망이 빚어낸 사악한 짓들, 또 그 때문에 인간에게 남은 것은 무관심뿐이고 아무런 선이 없다는, 그가 바라본 근본적인 인간의 정신 상태를 몬탈레가 시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지중해 해안가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위에서 피어난 꽃줄기와도 같은 그의 시들은 시인이 현실에서 얻은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의 부산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마나코르다 교수(로마 대학교의 문학 교수로 현대 문학 비평으로 유명하다.)는 몬탈레의 시를 이렇게 평했다.

"일반적으로는 실존주의적이며 구체적으로는 역사적인 두 가지 요소를 공히 받아들이는 극적인 인간 조건을 대변했다."


이러한 몬탈레의 사상은, 깔끔하고 단순한 장면의 묘사와 음악적인 운율의 언어로 아름답게 표현된다.

시인 자신이 음악에 조예가 깊어 시의 단어에 흐르는 리듬과 멜로디를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서는 상징적인 단어, 아른거리는 신비감, (원전에서는) 가락이 척척 들어맞는 운율을 항상 느낄 수 있다.

어두운 현실 속에 홀로 강하게 서 있는 그의 시들은, 바다 빛을 띠고 독자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