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른 글 440

"-을 필요로 하다."를 "-이 필요하다."로

우리말을 하면서도 우리말 표현 구조를 두고 필요 없이 영어식으로 표현하는 문제를 짚어봅시다. 그중 대표적으로 "-을 필요로 하다."와 "요구된다'란 말이 있는데 영어식의 표현으로 아주 대표적인 말입니다. 우리말에는 "-을 필요로 하다."가 원래 없습니다. 영어의 "need food"나 "need time"처럼 "need"란 조동사를 직역해서 바로 우리말에 적용시킨 사례이지요. "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분량이 얼마나 됩니까?" 이 말을 우리말 표현으로 고쳐보면, "한 사람에게 필요한 분량이 얼마나 됩니까?"라고 해야 맞습니다. "남북의 경제협력은 정치문제의 해결을 강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 이 표현도 역시 좀 쉽게 우리말 표현으로 간단하게 할 수 있죠. "남북의 경제협력은 정치문제의 해결이 대단히 필요하..

'구랍'과 '정월'

새해 1월에 지나간 12월을 가리켜 흔히 '구랍(舊臘)'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구랍에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의 면면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가물가물 잠이 들었다. 이 예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구랍(舊臘)'은 어려운 한자어로 그 뜻은 앞서도 잠깐 말씀드렸듯이 '지나간 12월'을 말하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음력으로 지나간 섣달'을 가리킵니다. 이 '구랍(舊臘)'은 12월을 '납월(臘月)'이라고 지칭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지나간 납월'이 줄어서 바로 '구랍(舊臘)'이 된 것입니다. 덧붙여서 '구랍(舊臘)'을 대신하여 다른 말로 '객랍(客臘)'이란 말도 있습니다. 여하튼 '구랍(舊臘)'과 '지나간 12월'은 결국 같은 말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 '구랍(舊臘)'을 대신하여..

고뿔 → 감기(감기의 어원)

지금은 감기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모두 '고뿔'이라고 했습니다. '코'의 옛말이 '고'였기 때문에 '고뿔'하면 코에 뿔이 난 것처럼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코에 불이 났다'는 표현입니다. 즉, '코에 열이 난다'는 뜻인데요. '고뿔' 이전에는 '곳불'이었습니다. '코'를 뜻하는 '고'에 '불'이 붙었던 것인데, 이후 '곳불'에 '불'이 된소리로 돼서 '고뿔'이 된 것이죠. 그런데 요즈음 '감기'라는 한자어가 쓰이고 있는데요. 이 '감기'란 한자말은 느낄 '감(感)'에 기운 '기(氣)'자를 쓴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어입니다. 혹시 일본어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감기를 바람 '풍(風)' 사악할 '사(邪)를 써서 '풍사'라고 합니다. 감기와 관련된..

'계약금'을 치른다.

우리가 흔히 돈을 주면서 계약을 할 때, 여러분은 '계약금을 치른다'라고 하십니까 아니면 '계약금을 치룬다'라고 하십니까? 이 두 문장 가운데 하나는 바른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틀린 표현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계약금을 치른다'가 올바른 표현입니다. 두 문장 가운데 '치르다'는 대체로 세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첫째, '마땅히 줘야 할 돈이나 값을 내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아직 물건값을 치르지 않았어요." "계약금은 언제 치릅니까?" "오늘 중도금을 치렀어요." 이처럼 '계약금을 치르다'가 맞습니다. 또 '치르다'는 '잔치를 치르다, 홍역을 치르다, 큰 일을 치르다'처럼 '무슨 일을 당해서 겪어낸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침, 저녁 등을 먹는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

'정류장'과 '정거장'

"아저씨, 종로 3가는 여기서 몇 정거장 더 가야 되죠?" "두 정거장 더 가서 내리시면 됩니다." 버스 안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대화지요? 여기에서 잘못 사용된 단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정거장'입니다. 원래 '정거장'이란 말은 '열차가 출발해서 여객이나 화물 또는 열차 편성 등을 다루는 데 사용되는 설비를 갖춘 곳'을 뜻하고요. 다른 말로로는 '역'이라고 합니다. 이와는 달리 '정류장'이란 말은 '자동차나 전차에 사람을 태우고 내리게 하기 위해서 머무르는 일정한 장소'를 가리키는데, '정류소'라고도 부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이 '정류장'과 '정거장'을 올바로 구분해서 사용하는 분은 극히 적은 것 같습니다. 대개의 경우, '정류장'도 '정거장'으로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버스 정거장..

'샛강'은 어떤 강?

"울산시민들이 태화강 살리기 운동을 벌였다. 샛강을 살립시다 캠페인에선 강 상류 및 지류에서부터의 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샛강'은 느낌도 좋고 뜻도 예쁜 말이기도 하지만 신문이나 방송이 사람들의 생각을 황당하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샛강'은 위의 기사 내용처럼 '시냇물'이나 '조그만 하천' 혹은 '개천'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 샛강 - 큰 강에서 한 줄기가 갈려 나가서 중간에 섬을 이루고 아래에 가서 도로 합류하는 강. 샛강이 있으려면 반드시 섬이 있어야 합니다. 여의도 샛강처럼 한강의 본류에서 벗어나 여의도나 영등포 사이로 흐르는 강이 바로 샛강인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샛강을 개천이나 작은 하천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이 잘 못쓰기 시작한 말..

'짜집기' 하지 마시고 '짜깁기'하세요.

양복 따위의 모직물에 구멍이 날 경우 그 부분만 표시가 안 나게 메우는 기술로 '짜깁기'라는 게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짜집기'로 알고 있고 또 대부분의 세탁소, 옷수선점에서도 '짜집기'로 표시해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깁다'의 사투리 '집다'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짜깁기, 짜깁다'가 옳은 말입니다.

'안갚음'할 사람에게 '앙갚음'을......?

까마귀는 새끼 때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고 자라지만, 어미가 늙어 기운이 없으면 그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합니다. 이것을 한자로는 '반포(反哺)'라 하고,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가리켜 반포지효(反哺之孝), 반포보은(反哺報恩)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말로는 '안갚음'이라고 합니다. '어버이의 은혜를 갚는다'는 뜻이죠. 이와 같이 한낱 미물인 까마귀도 안갚음을 할 줄 알거늘 사람으로 나서 제 부모 제 조상을 몰라본대서야 사람이라 할 수 없겠죠. 마치 원수에게 '앙갚음'을 하듯 행동하는 자식들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앙갚음'과 '안갚음'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그 뜻이 다릅니다. '안갚음'을 해야 할 사람에게 '앙갚음'하듯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낱말 자체도 그 뜻에 따라 잘 구분해서 ..

결혼하다 / 혼인하다

현재 '결혼하다'와 '혼인하다'는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결혼하다'와 '혼인하다'는 다른 뜻이었습니다. '혼인하다'는 오늘날 쓰이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였지만, '결혼하다'는 다른 뜻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철수가 복동이와 결혼하였다'라는 말을 쓸 수 있었습니다. 즉 '철수'의 자손과 '복동'이의 자손이 '혼인'할 것을 결정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끼리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일본에서는 '결혼하다'가 현재의 '남녀 혼인'의 뜻으로 쓰였는데요. 이것이 우리 국어에 들어와서 그 뜻이 변하게 된 겁니다. 원래 '혼인하다'의 뜻은 '혼'은 '신부집'을 말하고 '인'은 '신랑집'을 말한 데서 비롯했다고 합니다. 옛날에 혼인을 할 때에는 신랑이 '혼' 즉, 신부집..

건 빨래 → 마른빨래, 사래 전 → 사래밭, 잔전 → 잔돈

어휘 선택의 변화에 따른 표준어 규정 중에서 고유어 계열의 단어가 널리 쓰이고 그에 대응되는 한자어 계열의 단어가 용도를 잃게 된 것은, 고유어 계열의 단어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죠. 옛날에 자주 썼던 '건 빨래'는 지금 그 용도를 잃게 된 단어이기 때문에 쓰이지 않습니다. '마른빨래'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죠. 이와 마찬가지로 '사래 전'도 사양화돼버린 한자어로 고유어 계열의 단어인 '사래밭'이 표준어로 인정되었으며 마찬가지로 '사래 답'도 이젠 쓰이지 않으니 표준어로 삼지 않고 '사래논'이 표준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잔전'도 표준어가 아니며 '잔돈'이라고 해야 옳은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