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른 글 474

벽창호

앞서 '옹고집'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고집이 센 사람,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을 무엇이라 하는가요? 보통 '고집쟁이, 고집통, 고집통이'라 하고, 고집을 피우는 정도가 심하면 '옹고집쟁이, 황고집쟁이'라 하지요. 고집이 센 사람을 표현하는 말에는 이 단어들 말고도 '벽창호'가 있습니다. '벽창호'는 고집이 센 사람뿐만 아니라 우둔한 사람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완고해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현재 '벽창호'는 주로 말이 도통 통하지 않는 무뚝뚝한 사람을 지시하지만, "너 참 벽창호구나. 이제 고집 좀 꺾어라"는 문장에서 보듯 '고집이 센 사람'을 일차적으로 지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20세기 초 문헌에서야 발견되는데요. 사전으로는 '큰사전'(1950)에 처..

북한의 속담 2

남한과 북한의 속담을 한 번 비교해 보겠습니다.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그 느낌은 역시 한 가지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요. 우선 우리 속담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것이 있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순한 사람도 함부로 건드리거나 얕보면 맞서 반항한다는 것'을 이르는 속담인데요. 이것을 북한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요? 네, 북한에서는 이런 경우에 '고인 물도 밟으면 솟구친다'라고 한다는군요. 우리보다는 조금 어감이 약한 것 같긴 하지만 공감이 되시죠. 또 있습니다. '범보고 애보라기'.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네, 북한의 속담인데요, '믿지 못할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긴다는 뜻'으로 위험성이 있거나, 하는 짓이 어리석음을 조롱할 때 하는 속담입니다. 같은 뜻으로 우리는 이런 경우에 뭐..

육개장(肉개醬)

오늘같이 추운 날 밖에서 수고하시는 분들, 따끈하고 얼큰한 '육개장'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소고기와 각종 나물 그리고 고춧가루를 넣어서 얼큰하게 끓여낸 국, 삶아서 부드럽게 만든 후 가늘게 뜯어낸 소고기를 고춧가루와 함께 끓여낸 덕분에 소기름의 풍미와 고추의 향이 배어든 국물의 맛과 또한 매콤하고 짭짤한 맛 때문에 밥을 저절로 부르게 하지요. '육개장'은 들어가는 고기를 닭고기로 요리하면 '닭개장', 개고기로 요리하면 '개장국'이 됩니다. 본래 '육개장'은 '개장국'을 끓이는 방법에서 파생된 요리였기 때문에 '육(肉) + 개장'이라는 이름이 된 것이죠. 그런데 식용견이 사육 비용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고기가 적어 매우 비효율적이고 사람들의 식습관도 서구화되며 원전이었던 '개장국'은 한국에선 흔히 볼 수 ..

북한의 속담 1

북한의 속담에 대해서 살펴보겠는데요.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말이 주는 어감과 의미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속담이란 예부터 민간에서 생겨나 널리 익혀져 온 격언 같은 말을 가리키는데요. 교훈적인 내용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북한에서는 속담을 교훈적인 말과 격언으로 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사회적 견해와 투쟁적 지향 같은 것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보고 있기도 합니다. 분단 이후에 북한사회에서 생겨난 속담과 명언 중에는 우선 경제활동에 관련된 것이 많은데요. 부지런한 농사군에게는 땅이 없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농사는 속일 수 없다. 삼대독자 외아들도 일해야 곱다. 네, 이런 말들은 노동의 보람을 강조한 속담이죠. 또 협력을 강조한 ..

쑥대머리

판소리 중 춘향이 옥중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이 도령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 옥중가(獄中歌)에 '쑥대머리' 대목이 있습니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에 찬자리여 생각나는 것은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보고지고 손가락 피를 내어 사정으로 임을 찾아볼까 간장의 썩은 눈물로 님의 화상을 그려볼까 계궁항아 추월같이 번듯이 솟아서 비치고저 전전반측 잠못 이뤄 호접몽을 어이 꿀 수 있나 내가 만일 님못본채 옥중고혼이 되거드면 무덤앞에 섰난 돌은 망부석이 될 것이요 무덤근처 선나무는 상사목이 될 것이니 생전사후 이 원통을 알아줄 이가 뉘있으란 말이냐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에 찬자리여 생각나는 것은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보고지고 쑥대머리 내가 만일 님못본채 옥중고혼이 되거드면 무덤앞에 섰난 돌은 망..

북한의 언어 : 방언이 문화어가 된 경우

북한언어 가운데는 원래 '방언이었던 것이 문화어'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특히 낯설게 느껴지는 '문화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는 평양말을 기준으로 문화어를 설정하면서도 고유어를 살려 말하려고 북부 지역에서 사용되던 방언들 가운데서 많은 어휘를 '문화어로 승격'시켰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약 4천여 개의 방언들이 문화어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말들을 우리가 알아듣는 일도 북한언어를 이해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할 듯싶습니다. 그중에서 몇 가지를 알아봅니다. '갑자르다'란 방언이 문화어가 됐는데, 이 말의 뜻은 '말을 하기 거북해 주저하다' 쯤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시원히 말하지 못하고 말끝마다 갑자르는데...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강구다'란 동사도 역시 방언 중 문화어가 된 경우인데, 이..

여염집

동요와 시를 써서 원래 시인으로 출발했던 황순원은 소설에도 뛰어났죠. 그의 소설 중에 '세계의 폭력성에 대한 분노를 못 이겨, 맞싸워 이길 수는 없지만 굴복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자살을 택하는 주인공 동호가 나오는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둘이는 다방을 나와 거기서 과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단골집으로 갔다. 간판도 없는 여염집으로 대개 한 번 왔던 손님이 찾아오는 술집이었다." 우리가 '여염집 아낙', '여염집 규수' 등 이런 말을 자주 접하는데요. 여기에 나오는 '여염집'이란 말은 '보통 백성의 살림집'으로 '백성들의 살림집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여염(閭閻)'이라 한 데서 나온 말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들이 괜찮은 '여염집'을 보고서 '요양을 한다'거나 혹..

북한의 언어 : '발맘발맘', '발볌발볌'

북한에서는 '발맘발맘 나무둘레를 재 보았다'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팔을 벌려 한 발씩, 또는 발길 닿는 대로 한 걸음씩 걸어가는 모양'을 말하기도 합니다. 단풍이 곱게 물들었을 때 아름드리나무에서 맴돌다가 한 팔 벌려 그 크기를 재보기도 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바로 그때 북한의 문화어로 표현을 한다면, '두 팔 벌려 발맘발맘 나무둘레를 재 보았다'의 표현이 썩 잘 어울릴 겁니다. 이와 비슷한 단어로 '발볌발볌'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더듬듯이 걸어가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발맘발맘'과 '발볌발볌'... 표현이 아담하고 예쁜 문화어 중의 하나입니다.

'바보'의 어원

1930년대 농촌의 풍경을 그린 김유정의 대표작 "봄봄"은 넘쳐나는 해학과 유머로 그리고 기지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가득 주는 단편소설입니다. 소설 내용 중에 "가뜩이나 말 한마디 톡톡히 못한다고 바라보는데 매까지 잠자코 맞는 걸 보면 짜장 바보로 알 게 아닌가."라는 설명에 '바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사전적 정의로는 '어리석고 못나게 구는 사람을 얕잡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 또는 '지능이 부족하고 어리석어서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바보'라는 말은 순우리말로, 원래의 어원은 '밥을 무식하게 많이 먹는다'는 의미의 '밥보'가 변해서 이루어진 말이며, '밥'에서 'ㅂ'이 탈락하면서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 '보'와 합쳐져서 '바보'가 된 것입니다. ..

북한의 언어 : '무더기 비' 때문에 축구 경기가 연기될까?

태풍이 불 때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불청객 '집중호우'가 있죠. 북한에서는 과연 이 '집중호우'를 어떻게 부를까요? 정답부터 알려드리죠. '무더기비'라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짧은 시간에 억수로 쏟아붓는, 많은 양의 비를 말할 때 '무더기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호우에 해당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집중호우'에 더 가까운 단어입니다. 저기압이나 태풍이 지나갈 때 200mm 이상 내리는 비이기 때문이죠. 일본어 투의 어휘인, '집중호우'는 북한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을뿐더러 사전에도 올라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4시간 동안 80mm의 비가 예상될 때 호우주의보가, 150mm의 비가 예상될 때 호우경보가 각각 발령되지만, 북한에서는 '무더기비'가 예상될 때, 주의보 없이 호우경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