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른 글 478

여염집

동요와 시를 써서 원래 시인으로 출발했던 황순원은 소설에도 뛰어났죠. 그의 소설 중에 '세계의 폭력성에 대한 분노를 못 이겨, 맞싸워 이길 수는 없지만 굴복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자살을 택하는 주인공 동호가 나오는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둘이는 다방을 나와 거기서 과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단골집으로 갔다. 간판도 없는 여염집으로 대개 한 번 왔던 손님이 찾아오는 술집이었다." 우리가 '여염집 아낙', '여염집 규수' 등 이런 말을 자주 접하는데요. 여기에 나오는 '여염집'이란 말은 '보통 백성의 살림집'으로 '백성들의 살림집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여염(閭閻)'이라 한 데서 나온 말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들이 괜찮은 '여염집'을 보고서 '요양을 한다'거나 혹..

북한의 언어 : '발맘발맘', '발볌발볌'

북한에서는 '발맘발맘 나무둘레를 재 보았다'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팔을 벌려 한 발씩, 또는 발길 닿는 대로 한 걸음씩 걸어가는 모양'을 말하기도 합니다. 단풍이 곱게 물들었을 때 아름드리나무에서 맴돌다가 한 팔 벌려 그 크기를 재보기도 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바로 그때 북한의 문화어로 표현을 한다면, '두 팔 벌려 발맘발맘 나무둘레를 재 보았다'의 표현이 썩 잘 어울릴 겁니다. 이와 비슷한 단어로 '발볌발볌'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더듬듯이 걸어가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발맘발맘'과 '발볌발볌'... 표현이 아담하고 예쁜 문화어 중의 하나입니다.

'바보'의 어원

1930년대 농촌의 풍경을 그린 김유정의 대표작 "봄봄"은 넘쳐나는 해학과 유머로 그리고 기지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가득 주는 단편소설입니다. 소설 내용 중에 "가뜩이나 말 한마디 톡톡히 못한다고 바라보는데 매까지 잠자코 맞는 걸 보면 짜장 바보로 알 게 아닌가."라는 설명에 '바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사전적 정의로는 '어리석고 못나게 구는 사람을 얕잡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 또는 '지능이 부족하고 어리석어서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바보'라는 말은 순우리말로, 원래의 어원은 '밥을 무식하게 많이 먹는다'는 의미의 '밥보'가 변해서 이루어진 말이며, '밥'에서 'ㅂ'이 탈락하면서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 '보'와 합쳐져서 '바보'가 된 것입니다. ..

북한의 언어 : '무더기 비' 때문에 축구 경기가 연기될까?

태풍이 불 때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불청객 '집중호우'가 있죠. 북한에서는 과연 이 '집중호우'를 어떻게 부를까요? 정답부터 알려드리죠. '무더기비'라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짧은 시간에 억수로 쏟아붓는, 많은 양의 비를 말할 때 '무더기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호우에 해당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집중호우'에 더 가까운 단어입니다. 저기압이나 태풍이 지나갈 때 200mm 이상 내리는 비이기 때문이죠. 일본어 투의 어휘인, '집중호우'는 북한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을뿐더러 사전에도 올라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4시간 동안 80mm의 비가 예상될 때 호우주의보가, 150mm의 비가 예상될 때 호우경보가 각각 발령되지만, 북한에서는 '무더기비'가 예상될 때, 주의보 없이 호우경보가..

'하룻강아지'의 어원

우리 속담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상대가 뭐든지 간에 막 나가는 사람에게 주로 사용하는데요. '철딱서니 없이 아무에게나 함부로 덤비는 짓'이나 '경험이 적고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사람이 철없이 함부로 덤비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개에게 있어 생후 일 년이면 천방지축 까불고 겁 없이 짖어댈 때이니 '범' 무서운 줄 모를 게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하룻강아지'는 '하릅강아지'가 변한 것이죠. '하릅'이라는 단어의 문헌적 용례는 아주 드물지만, 17세기의 에 보이고, 19세기말의 (1987)에 '하릅강아지'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리고 총독부 간행 (1920)과 문세영 저 (1938)에는 '하룻강아지'만 나오고요, (1957)에도 '하릅강아지'는 보이지..

북한의 언어 : '력도', '유술'

북한과 우리가 달리 사용하고 있는 경기 종목명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북한이 각종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종목에는 역도와 유도, 레슬링을 들 수가 있는데, 이 중에 우리가 '역도'라고 부르는 경기를 북한에서는 '력기(力技)'라고 합니다. 북한 에 '력기'와 '력도' 두 단어를 모두 싣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쓰는 '력도'는 지난날에 쓰이던 한자말이나 한문투의 말로 일반 언어생활에서 될 수 있으면 쓰지 않아야 할 말로 표시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역도의 두 가지 경기종목 '인상'과 '용상'도 북한에서는 '끌어올리기'와 '추켜올리기'라고 합니다. '끌어올리기'와 '추켜올리기' 그 모양새를 생각해보면 금세 이해가 되실 겁니다. 여기에서도 북한에서 한자말보다도 우리말로 풀어쓰는 경향을 읽을 ..

황소

'황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많죠? 월드컵에서 활약한 황희찬 선수의 별명, 이중섭 화가가 1953년 38세에 그렸다는 그림, 증권거래소 앞의 동상, '불놀이야'로 에서 대상을 받은 캠퍼스 밴드 이름... 이 모두 '황소'라는 단어로 생각이 납니다. '황소'가 누런 소만을 가리키는 말인 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황소'는 '색깔이 누런(黃) 소가 아니고, 다 자란 수소(Bull)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어원을 설명하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요. '황소'의 황은 누를 황(黃)인데 이 한자에 '누렇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넓다'는 뜻도 있다는 주장이 있고요. 반면에, '크다'라는 뜻을 가진 토착어 '한'에서 유래된 '한소'가 변해서 된 말이라는 주장도 있지요. 고등학교 국어 ..

북한의 언어 : '에둘러 말한다'

"이야기할 때 말하려는 내용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에둘러서 말한다." 여기서 '에두르다'는 무슨 말일까요? 1992년 북한에서 발간된 을 보면요. '에두르다' [1. 둘러막다 2. 멀리 돌다 3. 속이다, 얼을 빼다]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에둘러 말한다'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멀리 돌다'란 뜻으로 '돌아가다'란 뜻으로 쓰인 것이죠? 우리말 사전에도 '에두르다'는 [1. 에워돌거나 막다 2. 바로 말하지 않고 짐작하여 알아듣도록 돌려서 말하다]로 나와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바로 말하지 않고 짐작하여 알아듣도록 둘러대다'라는 뜻으로 '에둘러치다', '에둘러대다'를 쓰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에두르다'의 의미가 더 많은 겁니다. 자, 그렇다면 통일이 됐을 때 교통 정보를 방송하는 곳에서는 이런 방송을 할 ..

'새끼'의 어원

'새끼'...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어린 동물을 뜻하는 단어로, 보통 생식 기능이 발달하는 성체가 되기 이전의 동물을 새끼로 부르며, 사람으로 치면 아기, 어린이 등에 해당합니다. 또, 자식(子息)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낮잡아 부르는 게 아니라도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를 부를 때 '어이구~ 우리 새끼~' 하는 식으로 부를 때 사용합니다. 그래서인지 남자들 사이에서는 친구끼리 친근감을 드러내기 위해 쓰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데, 이 '새끼'란 말이 욕으로 쓰이기도 하다 보니 이렇게 따로 부르는 말이 없는 동물의 새끼를 칭할 때 어감이 좀 뭣하게 되기도 하는데, 보통 새끼가 동물 이름의 앞에 오면 욕이 아니고, 뒤에 오면 욕이라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끼가 동물 이름의 뒤에 오더라도 욕설뿐만..

북한의 언어 : '알심'과 '끌끌한 사람'

"그 친구 참 알심 있구먼." 여기서 '알심'은 뭘 뜻하는 말일까요? 북한에서 '알심'이란 말은 '매우 실속 있고 착실한 사람'을 가리킬 때 '알심한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 참 성실하고 일을 잘하는 구만." 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이와 비슷한 말로 '생기 있고 듬직한 사람'을 가리켜서 '끌끌한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까 '끌끌하다'는 '마음이 맑고 바르고 깨끗하다'라고 나와 있는데 이런 단어가 생소하게 들리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우리말을 찾아내는데 게을리한 탓도 있겠지요? 이 '끌끌하다'라는 말은 우리가 자주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