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479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할 수 있을 때

머릿속에 아무리 좋은 생각과 뛰어난 아이디어가 있다 해도, 그것이 제대로 말로 표현되어 나오지 못하면 자연히 그 무게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선진국에서는 학생들에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길러주기 위해서, 토론수업을 시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토론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어쩌다 텔레비전에서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말하는 태도도 태도지만, 듣는 태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주장만 할 줄 알지 남의 말에는 귀 기울이는 법을 모른다. 혹시라도 상대의 말을 들으면, '내 알음알이가 무너질까 봐' 두려운 것처럼,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혀가며 화까지 낸다.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면 그만인데, 우리는 혹시 모르는 게 드러나면..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은 없다

제 아무리 나름대로 수행을 한다고 해도 '옳다 그르다'하는 분별심은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건너라는 신호등이 켜져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자동차가 멈추지를 않고 바로 코앞을 휙 지나가면, 순간 나도 모르게 화가 벌컥 일어나는 법이다. 그때 옆에서 길을 건너던 한 아이가 말했다. "아저씨 미워요! 다음부턴 꼭 신호등 지키세요!" 화를 내지 않는 아이는 같은 상황에서도 이렇게 예쁘게 말할 수 있다. 신호를 어기고 지나간 사람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급한 사정이 있는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섣부르게 내 식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괜히 화를 일으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의 어리석은 마음을 흔히 어둠에 비유한다. 어둠 속에서는 무엇 한 가지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는 법이다. 애벌레의 ..

관념의 굴레를 벗고

아무리 훌륭한 지식이 있고 좋은 기술을 가졌다고 해도, 현실을 살아가는 데 제때 적절하게 쓰이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종교가 그렇고, 세상의 모든 진리라고 하는 가르침들이 다 그렇다. 우리 삶에 적절하게 적용이 되고,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쓰일 때, 그 가르침도 진정으로 빛나는 것이다. 종교 때문에 늘 갈등을 빚는 이스라엘 소식을 접하다 보면 그렇다. 종교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자비하게 인명을 살상하고는 한다. 사람의 탐욕이 또 그 어리석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 종교의 가르침 자체가 어리석음은 아닐 것이다. 잘못된 믿음은 때로 이렇게 독이 돼서 사람을 죽이고, 세상을 죽이는 무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와 예수와 ..

반딧불만한 지혜

불가(佛家)에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 '혜총국사'라는 스님의 이야기가 있다. 그 당시에 아마 사람의 운명을 훤히 내다보는 한 도인이 살았던 모양이다. 사람들의 미래를 점치고, 운명을 점친다는 소문을 들은 스님은, 이 도인을 찾아가 물었다. "그대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안다고 하니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읽어보시오." 도인은 스님의 마음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스님이 복잡한 장터에 마음을 두면 그 도인은 자신이 본 세계를 그대로 묘사했다. 그러자 스님은 마지막으로 모든 경계를 비운 텅 빈 본래의 마음자리에 머물게 된다. 아무리 애를 써도 스님의 마음을 읽을 수 없게 되자 그 도인에게 스님은 일침을 놓았다. "그 반딧불만한 지혜로 더 이상 사람들을 현혹시키지 마시오!"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

스스로 안다고 하는 어리석음

어리석은 맹인과 코끼리에 관한 우화가 있다. 앞이 보이지 않은 맹인 네 사람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제각기 다른 견해를 낸다. 다리를 만져본 사람은 코끼리가 기둥처럼 생겼다고 하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빗자루 같다고 한다. 또 옆구리를 만진 사람은 벽처럼 생겼다고 하고, 코를 만져본 사람은 코끼리가 뱀처럼 생겼다고 우긴다. 서로 각자가 자기 생각이 옳다고 우기고 주장하다가 결국 싸움이 벌어지고, 그 싸움으로 인해 모두 죽게 됐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한 단면과도 같다.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 정치가 그렇고 가깝게는 작고 사소한 다툼과 갈등들이 그렇다. 안다는 생각, 나만이 옳다는 생각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들어온 부모님의 생각과 살면서 익혀온 온갖 지식과 정보, 남들이 말한 남..

길들여 온 좋은 습관을

일상의 우리 생활을 잘 들여다보면 누구나 알게 모르게 이행하는 계율들이 있다. 아침마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양치질, 세수하고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수염을 깎고 청소를 하고···. 알게 모르게 스스로 길들여 온 좋은 습관들이 있다. 어떻게 보면 귀찮기도 하고 안 해도 되는 일인데도 귀찮다고 안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든 몸에 병 없이 건강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날마다 빠짐없이 꾸준히 실천하고 산다. 인생은 몸만 건강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정신도 아프면 병원에 갈 수밖에 없다. 몸을 씻고 닦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마음을 닦고 정신을 맑히는 일인 것이다. 꽃밭도 가꾸지 않으면 꽃보다 잡초가 더 무성한 법이다. 우리 마음도 얼굴을 씻고 양치하는 것..

새벽

푸르스름한 하늘이 하나씩 하나씩 꺼져가는 별빛을 감싸 안고 있는 새벽은 신선하다. 계절에 따라 새벽도 조금씩은 의미를 달리하지만, 신선한 기운에 정신이 맑아지고 상쾌하기는 하루 중 새벽이 으뜸이 아닐까 한다. 티탄족(族)의 히페리온과 티아와의 딸 에오스는 매일 아침 '장밋빛 손가락'으로 밤의 장막을 여는 새벽의 여신이다. 그녀는 새벽마다 티토노스의 침대를 살그머니 빠져나와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스 조각에 보면, 이 여신 역시 날개가 달려 있고, 새벽이슬을 담은 단지를 들고 있다. 등황색 외투를 입고, 말 두 필이 끄는 마차를 타고 있는 그림도 있다. 그런데, 젊고 어여쁜 에오스 여신은 올림포스 신들의 미움을 샀다. 일설은, 그녀가 무신(武神) 아레스를 사랑했기 때문이라 한다. 사랑을 모르는 동정인 아테네..

사람들의 취향

사람들마다 좋고 싫음의 취향도 각기 다르지만, '아름답게 보고 추하게 보고, 귀하고 천하게 여기는 기준'도 각양각색이다. 누군가에겐 다이아몬드가 최고의 보석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돌멩이 하나가 다이아몬드 보다 더 값진 가치를 가질 수도 있다. 한 이집트의 고고학자는 해변에 뒹구는 돌조각을 보고 이집트의 역사를 증명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하찮은 돌멩이 하나가 금강석 보다 더 귀한 가치를 지니기도 하는 것이다. '귀하다, 천하다, 아름답다, 추하다' 그 실제적인 가치는 그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에 달린 문제이다. 또 그것을 어떻게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사용하는 사람에게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칼은 좋은 용도로 쓰면 좋은 물건이고 나쁜 용도에 쓰면 나쁜 물건이 되..

분노를 버리는 지혜로움

지옥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탐(貪), 진(瞋), 치(痴), 삼독(三毒)이 '지금'을 지옥으로 살게 하는 가장 큰 적이다. 옛날에 한 수행자가 그랬다. 산속에서 혼자 열심히 도를 닦다가 어느 정도 수행이 됐다 싶어서 스승을 찾아갔다. 스승은 자꾸 애꿎은 일만 시키는 것이다. 무거운 가마솥을 들어서 부엌의 벽에 걸으라고 하는데, 겨우 힘들게 들어서 걸어 놓으면 그게 아니라고 꾸짖기만 하는 것이다. "여기가 아니라 저기다 걸어야지. 그쪽이 아니고 이쪽이라니까." 애꿎게 무거운 가마솥만 들었다 놨다 옮겼다 걸었다, 여덟 번을 자리를 옮겨가며 다시 거는데 스승은 아홉 번째 또다시 걸으라고 야단을 치는 것이다. 그러자 참고 참았던 화가 일순간에 폭발하고 마는 것이다. 스승을 죽이고 싶을..

어머니가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가에서는 탁발(托鉢)이라는 전통이 있다. 수행자는 걸식을 통해서 수행에 적이 되는 아만(我慢)과 고집을 버리고, 베푸는 사람은 보시(布施)를 통해서 공덕을 쌓는 불가의 한 수행 방편이다. 예전에 어느 스님께서는 탁발을 다니시는데, 주로 걸인들이 사는 움막에 들러서 탁발을 구했다고 한다. 자신들도 얻어먹는 처지에 스님께서 탁발을 오시니 먹을 것을 내줘야 하는 걸인도 걸인이지만, 그 제자들이 더 궁금했다고 한다. 그래서 큰스님께 여쭸다. "스님, 잘 사는 집들 다 놔두고 왜 하필이면 거지에게 탁발을 구하십니까?" "잘 사는 사람들이야 쌓은 공덕이 많아 잘 살지만, 못 사는 사람은 베풀지 않고 인색한 탓에 이렇게 가난하게 사니, 공덕을 쌓게 하기 위해서 그런다." 복 짓는 일이야 베푸는 보시만 한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