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479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용기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세상엔 별별 도인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버려진 쓰레기를 모아서 기발한 발명품을 만드는 사람, 누구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국수 가락을 뽑는 사람까지. 이렇게 자기의 분야에 최고가 된 분들을 보면, 도가 따로 없고 예술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길거리 연주자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돈은 안 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하다." 그 누구든 애초에 그 일이 싫어서 시작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혹은 '체면 때문에' 그 일을 한다고 한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체면과 주변 시선에 맞춰서 하다 보니까 '죽지 못해 그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러고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사람은 그..

사랑이 없는 충고는

이 시대에 누군가에게 충고를 한다거나 조언을 해주는 일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알만큼 알고, 배운 만큼 배운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라, 남에게 충고를 한다는 것은 잘해야 본전이고, 자칫 잘못하면 괜한 원망과 모욕, 고소로까지 돌아오기 십상이다. 하지만 때에 따라선 그 모든 불이익을 무릅쓰고라도 반드시 충고를 해야만 할 때가 있다. 자식이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할 때나 가까운 친구가 바람직하지 못한 길을 갈 때와 같이 서슴없는 충고가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선뜻 충고하기에 앞서 석가께서는 먼저 자기 마음부터 점검하라고 한다. 우선 '그 잘못이 사실임을 먼저 확인하고, 그 말을 상대에게 해서 이익이 되는지' 살피라고 하셨다. 또한 적당한 때를 가려서 하되, 말은 거칠지 않고 부드럽게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설..

화해(和解)에 대해서

화해(和解)의 사전적 정의는 '갈등과 다툼을 그치고 서로 가지고 있던 나쁜 감정을 풂'으로 나와 있다. 말다툼의 화해가 기쁨을 낳고, 지난날의 적과 화해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 아니라, 현명한 처사로 불가피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로마 가톨릭교회 지학순(池學淳, 1921년 9월 9일 ~ 1993년 3월 12일) 주교는 옥 중에서 화해에 대하여, "화해도 마찬가지로 강한 사람에 대한 양보도 아니고, 거짓이나 불의에 대한 침묵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화해는 진실과의 화해이어야 하고, 인간성과의 화해이어야 하고, 공동선( 共同善 )과의 화해이어야 하고, 화해는 독선에 반대하고 관용을 베풀 줄 아는 아량이어야 하며, 화해는 전횡(專橫)을 일삼아 온 억압에 찌든 약자에게 먼저 청해 와야 하는 것이라고 믿..

남보다 나를 바꾸는 일이 더 쉽다

그 나라가 잘 사는 나라냐 못 사는 나라냐, 즉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를 가늠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그 나라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다. 얼마나 깨끗한 나라인지, 얼마나 친절한 사람들인지를 보고 선진국인지 후진국인지 판가름하기 마련이다. 개인이 사는 모습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넓은 집에 호화로운 장식으로 꾸몄다고 해도, 겉모양으로만 그 집안 살림살이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평소에 서로가 얼마만큼 배려하고 사는지, 살림살이는 얼마나 잘 정돈되어 있는지, 자잘한 일상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가 그 집안의 인상을 결정짓기 마련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당이나 절에만 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좋을 수가 없는데, 집에만 오면 왜 그렇게 마음이 어수선하고 짜증이 나죠? 도대체 어질러 놓고 ..

살면서 사람들과 갈등이 생길 때

살다 보면 이런저런 갈등 때문에 사람들과 얼굴 붉힐 일이 생긴다. 때로는 나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건 성인들의 가르침이다. "세상사 모두 무상한 것인데, 왜 자꾸 욕심을 부리느냐..." "세상 사람들 모두가 한 몸인데, 왜 혼자만 생각하느냐..." 부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 삼아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성인들은 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주시고, 세상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는 자비로움과 사랑의 마음을 주셨다. 이렇게 감사하고 수승(殊勝)한 가르침은 만나기가 어렵다. 백천만겁이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 법의 말씀을 만나게 됐으니,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행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매일매일 이런 가르침을 되뇌며, 가르..

한 사람에 대해 알고 싶으면

한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함께 여행을 떠나 보라'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여행을 함께 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를 가든 어떤 환경에 처하든 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감동하고 감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엇을 보든 누구를 만나든 늘 불평과 불만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버스는 왜 그렇게 사람이 많고 도로에 차들은 왜 그렇게 많아?" "우측보행이 시행된 지 올해로 13년인데도 아직도 이 좁은 산책로에, 개줄을 있는 대로 늘여 잡고, 일행들 옆으로 걸으면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겠어? 배려가 없어 배려가...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낯선 곳을 가도 새로운 것을 만나도, 늘 내 뜻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별로 같이 다니고 싶지 않은 법이..

잘 듣기 위해 귀 기울이는 지혜를

예전에 어른들께서 아이들을 칭찬하실 때 이런 표현을 썼다. "고놈 눈이 참 밝다.", "귀가 참 밝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특별하게 잘 본다거나, 남이 듣지 못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잘 들을 때 주로 이런 표현들을 썼다. 이럴 때 '아이가 신통하다.'고들 하셨다. 언젠가 한 스님께서 하신 법문에 이런 말씀이 있었다. '사람이 총명하면 신통하게 돼 있다. 사람이 보는 것만 제대로 잘 보고, 듣는 것만 제대로 잘 들어도, 세상과 통하고 불법과 통하는 길을 찾는 것은 아주 쉽다.' 평소 사람들은 건성건성 보고 건성건성 듣는 경우가 많다. 급하게 어느 가게를 찾을 때는 온 동네를 몇 바퀴씩 돌아도 찾는 가게가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일을 마무리 짓고 보면 집 바로 뒤에 가게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교만을 버리면 평안을 얻을 것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에 '천안제일'의 신통력을 가진 '아나율존자'가 있었다. 출가 초기에 수행에 별 뜻이 없었던 아나율존자는 늘 게으름을 피우고 잠자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어느 날 부처님께 호된 꾸지람을 듣게 됐다. 정신이 번쩍 든 아나율존자는 그날 이후로 밤낮없이 수행정진에 매달렸다고 한다. 지나친 수행으로 아나율존자는 결국 실명까지 하게 됐는데, 그 덕분에 천리를 꿰뚫어 보는 천안통의 신통력을 얻게 됐다. 하지만 그의 깨달음에 대한 갈망은 여전했다. 그래서 어느 날 사리불존자를 찾아가 물었다. "제가 천안통을 얻어서 하늘의 일까지 꿰뚫어 보고 선정을 닦는 노력을 쉬지 않고 밤낮으로 하는데, 어째서 이제껏 깨닫지를 못하는 겁니까?" 그러자 사리불존자가 가르침을 주었다. "스스로 신통력이 있다고 말하는..

망각을 위한 시간은 위대하다

기억하기 싫은 것들, 고통과 슬픔의 원류인 우울한 추억들, 때로는 아는 일도 잊어버리는 게 좋을 때가 있다. 인간은 망각하는 동물이며, 망각을 위한 시간은 위대한 의사다. 기억상실증이나 건망증, 알츠하이머 같은 치매, 알콜성 치매인 블랙아웃등은 차치하고서라도, 좋지 못한 기억 등을 의도적이 아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희미해져 종국에는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미국의 뇌과학자인 데이비스는 뇌는 기존의 정보를 잊기 위해 늘 노력을 하며,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세포가 기억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정신 발작증이 심했다. 그는 자기의 저서를 읽어 내려가다가도 흥에 겨우면 발작을 일으키고, 무릎을 치거나, 어깨를 으쓱거리며 떠들어 대곤 했다. "이건 굉장한 인스퍼레이션..

부모의 공덕

사람은 해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끊임없이 그 계획을 점검한다. 한 해의 설계는 부지런히 하면서도 우리 인생 설계는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한 언론사에서 우리나라 40, 50대를 대상으로 '노후대책'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가 참 아이러니컬했다. '노인 부양 문제'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쪽에 과반수 가까이 표가 나왔는데, 당사자들의 '노후대책'을 묻는 설문에는 '자녀 교육비' 때문에 노후 대책 마련을 못하고 있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자기 부모 모시는 일은 '내가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자녀를 통해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만은 내 자식이 노년을 책임져 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정말 모순이 아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