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싫은 것들, 고통과 슬픔의 원류인 우울한 추억들, 때로는 아는 일도 잊어버리는 게 좋을 때가 있다.
인간은 망각하는 동물이며, 망각을 위한 시간은 위대한 의사다.
기억상실증이나 건망증, 알츠하이머 같은 치매, 알콜성 치매인 블랙아웃등은 차치하고서라도,
좋지 못한 기억 등을 의도적이 아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희미해져 종국에는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미국의 뇌과학자인 데이비스는 뇌는 기존의 정보를 잊기 위해 늘 노력을 하며,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세포가 기억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정신 발작증이 심했다.
그는 자기의 저서를 읽어 내려가다가도 흥에 겨우면 발작을 일으키고, 무릎을 치거나, 어깨를 으쓱거리며 떠들어 대곤 했다.
"이건 굉장한 인스퍼레이션(inspiration : 영감)으로 쓴 책인데, 대관절 이런 책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이건 참 천재인데... 천재는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한 말이거든!"
그는 자기 자신이 작자인 것을 잊어버리고 좋아서 날뛰었다는 것이다.
미소나 한 눈동자, 한 목소리를 기억의 표면에서 말살해 버리는 것은,
많은 극기(克己)와 시간의 풍화 작용의 도움이 필요하다.
잊겠다는 의지만으로는 아직 완전치 못하다.
관념이 긍정한 행위를 우리의 감성(感性)이 받아들이기에는 또 하나의 수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