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 643

터키:오르한 벨리 카네크(Orhan Veli Kanık)

아름다운 날들 이 아름다운 날들이 나를 망쳤지 이처럼 아름답던 어느 날에 일을 그만둔 나는 성실한 관리였네 이런 날에 처음 담배를 배웠고 어린 날이면 나는 사랑에 빠졌었지 집으로 빵과 소금을 가져가는 것도 이런 날에는 잊고 말았으니 으레 이런 날이면 시를 쓰려는 아픈 마음이 생겼네 나를 망쳤네, 이토록 아름다운 날들이 * * * * * * * * * * * * * * * 오르한 벨리 카네크(Orhan Veli Kanık, 1914년 04월 13일 ~ 1950년 11월 14일)는 1914년 4월 13일 이스탄불에서 아버지 메흐메트 벨리와 어머니 파트마 니가르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남. 1925년 초등학교 4학년 때 앙카라로 이주함. 앙카라 가지 초등학교와 앙카라 중고등학교 졸업. 학창 시절 ..

아르헨티나,칠레,미국:블라디미로 아리엘 도르프만(Vladimiro Ariel Dorfman)

동시통역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국제회의장에서 유리 칸막이 방에 앉아 딸까에서 온 농부가 고문에 관해 하는 말을 통역하는 통역사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자들이 그를 고문대 위에 눕혔다는 말을 영어로 반복하고 가장 세련되고 섬세한 불어로 전기고문이 지속적인 전이성 후유증을 남긴다고 진술하고 개새끼들한테 강간당했다는 말에 꼭 들어맞는 낱말을 찾아내는 빠우 다다라 나는 그 살인자 놈들에게 욕을 해댔소 당신 등뒤엔 벽이 있고 사격조 조장이 "발사"라고 외치기 시작할 때 그때의 기분을 정확히 담아내는 어구를 아무 감정 없이 찾아내고 -여기서 운율이 느껴진다면 부디 용서하시라- 문장에서 멜로드라마를 덜어내려 애쓰면서 그것이 진짜 하려는 얘기의 어둡고 끈끈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핵심과 느낌을 전달하려 노력하는 놈들은..

아르헨티나,칠레,미국:블라디미로 아리엘 도르프만(Vladimiro Ariel Dorfman)

둘 곱하기 둘 동지여, 감방에서 그 방까지 몇 걸음 걸리는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오. 스무 걸음이라면 화장실로 그대를 데려가는 게 아니라오. 마흔다섯 걸음이라면 운동하라고 그대를 데리고 나가는 건 절대 아니라오. 여든 걸음을 세고 나서 장님처럼 고꾸라지듯이 층계를 오르기 시작하면 오, 여든 걸음이 넘는다면 오직 한 군데가 있을 뿐이오 그들이 그대를 끌고 갈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군데가 있을 뿐이오 오직 한 군데가 있을 뿐이오 그들이 그대를 끌고 갈 수 있는 곳은 이제는 오직 한 군데밖에 없다오 * * * * * * * * * * * * * * * 블라디미로 아리엘 도르프만 (Vladimiro Ariel Dorfman, 1942년 5월 6일 ~ 현재 81세)은 아르헨티나계 칠레계 미국인으로 소설가, 극..

아드리안 세실 리치(Adrienne Cecile Rich)

지붕 이는 사람 반 정도 짓다 만 집들 너머로 밤이 오고 있다. 목수들이 지붕 위에 서있다. 망치질을 마친 후의 고요한 시간 도르래는 느슨하게 멈추어 있다. 경사진 지붕 바닥 위의 거인들, 지붕 이는 사람들 그들의 머리 위에서 막 부서지려고 하는 어둠의 물결, 사람들의 모습들이 커다랗게 확대되어 지나가고 불타는 바닥 위에 그림자를 던지는 하늘은 찢긴 돛이다. 지붕 위에 있는 그들이 나는 좋다. 노출되어 실물보다 더 큰 몸으로 내 목을 꺾어버리기 때문에. 무한정의 힘을 들여 내가 그 아래서 살 수 없는 지붕을 얹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일까? -그 모든 설계도 공백을 메우고 자로 재고, 계산하는 일들도? 내가 택하지도 않았던 인생이 나를 택했다. 내 연장들 마저 내가 해야 할 일에 맞지 않는 것이다. 나는 가..

이브 장 본느프와(Yves Jean Bonnefoy)

나무들에게 두브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지우며 그 위로 모든 길들을 막아 버렸던 그대들 죽어서조차 두브는 단지 빛에 지나지 않음을 냉정히 보증하는 그대들. 허기와 추위 그리고 침묵의 동전을 입속에 꼭 물고는 사자(死者)들의 나룻배에 그녀가 몸을 실을 때 치밀한 섬유질인 나무들 그대들은 내 곁에 있었지. 개떼들과, 형체를 알 수 없는 뱃사공과 그녀가 나누려는 대화를 그대들을 통해 듣게 되면 그토록 많은 밤을 뚫고 강줄기 전체를 무릅쓰는 두브의 전진에 의해 나도 그대들의 일원이 된다. 나뭇가지 위로 구르는 우렁찬 천둥이 여름의 정점에서 불사르는 축제들은 그대들의 준엄한 중재 속에서 두브의 운명과 내 운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 * * * * * * * * * * * * * * * 이브..

아드리안 세실 리치(Adrienne Rich)

강간 밤 사냥꾼이면서 아버지이기도 한, 어느 경찰이 있다. 그는 당신과 같은 동네 출신이고 당신의 남자형제들과 자랐으며 어떤 이상(理想)도 갖고 있다. 부츠를 신고 은(銀) 배지를 달고 말 위에서 한 손으로 총을 만질 때의 그는 당신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당신은 그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를 알게 되어야만 한다. 그는 당신을 죽일 수도 있는 기구에 접근 가능한 사람. 그와 그의 종마(種馬)가 군벌(軍閥)들처럼 쓰레기 사이를 어슬렁댄다. 그의 이상이 공중에 서 있다. 웃음기 없는 입술 사이에서 생겨난, 얼어붙은 구름. 그리하여, 때가 되면, 당신은 그에게 의지해야 한다. 미치광이의 정액이 아직도 허벅지에 끈적이고 정신은 실성한 듯 빙빙 도는데. 당신은 그에게 자백을 해야만 한다, 당신은 당신이 당한 ..

아드리안 세실 리치(Adrienne Cecile Rich)

장래의 이민자들이여, 부디 주목하십시오 당신은 이 문을 통과하든지 못하든지 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통과하더라도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위험을 언제나 각오하십시오 모든 것이 당신을 이중적으로 쳐다볼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뒤를 돌아보고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만일 당신이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가치 있게 사는 것이 가능합니다 당신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당신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용감하게 죽는 것도요 하지만 많은 것이 당신을 장님으로 만들 것입니다 많은 것이 당신을 스쳐 지나갈 것입니다 어떤 비용을 치를지 누가 알겠습니까? 문 자체는 어떤 약속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문일 뿐이니까요 ​ * * * * * * * * * * * * * * * 아드리안 세실 리치(Adrienne Cecile R..

이브 장 본느프와(Yves Jean Bonnefoy)

또 하나의 소리 모든 것이 멈출 때 머리칼을 흔들거나 의 재를 뿌리면서 그대는 무슨 몸짓을 시도하려 하는가, 그리하여 존재의 자정이 책상을 비치는 것은 언제인가? 모든 것이 침묵을 지킬 때 그대의 검은 입술 위에서 그대는 어떤 기호를, 어떤 가난한 언어를 지키려고 하는가, 아궁이에 불이 꺼져버릴 때 마지막 불씨를 지키려 하는가? 나는 그대 속에서 살아가리라, 그리고 나는 그대 속에서 모든 빛을 꺼내리라, 모든 화육化肉, 모든 암초, 모든 법을. 그리하여 내가 그대를 끌어올린 허무 속에다 나는 번갯불의 길을 열리라, 아니면 아직껏 소리친 적이 없는 가장 커다란 외침을. * * * * * * * * * * * * * * * 이브 장 본느프와(Yves Jean Bonnefoy, 1923년 6월 24일 투르 ~..

그리스:콘스탄티노스 페트루 카바피스(Constantine P. Cavafy)

그것들이 흥분했을 때 애써 붙잡아라, 시인이여, 잡힌 수가 아무리 적더라도. 네 에로티시즘의 전망들을. 집어넣어라 그것들을, 반쯤 접어서, 너의 시구에. 애써 붙잡아라, 시인이여. 그것들이 흥분했을 때, 네 마음속에서, 밤에, 아니면 정오의 빛으로 말이지. * * * * * * * * * * * * * * * 콘스탄티노스 페트루 카바피스(Constantine P. Cavafy, 1863년 4월 29일 ~ 1933년 4월 29일)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그리스 서정시인이다. 1863년 4월 29일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1933년 4월 29일 같은 곳에서 죽었다.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후 런던에서 유년 및 청년 초기를 보냈다. 그 후 콘스탄티노플에서 1880년에서 1985년까지 보냈으며, 22세에 알렉산..

이브 장 본느프와(Yves Jean Bonnefoy)

미완성이 절정이다 ​ 파괴하고, 파괴하고, 파괴해야만 했다. 구원은 그 대가로써만 이루어졌다. 대리석 속에 떠오르는 벌거벗은 얼굴을 파괴할 것, 모든 형태 모든 아름다움을 파괴할 것. 완성이란 입구이므로 완성을 사랑할 것, 하지만 알게 되면 곧 그것을 부정할 것, ​죽게 되면 곧 그것을 잊어버릴 것, 미완성이 절정이다. ​ * * * * * * * * * * * * * * * 이브 장 본느프와(Yves Jean Bonnefoy, 1923년 6월 24일 투르 ~ 2016년 7월 1일 파리)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미술사가이다. 그는 또한 다수의 번역판을 출판했는데, 특히 프랑스어로 최고로 여겨지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가장 유명하다. 1981년부터 1993년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재직했으며, 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