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하나가 피면
나는 황홀한 피리소리를 알지만
누구의 피리소린지는 모른다.
램프는 심지도 기름도 없이 타오른다.
연꽃은 뿌리도 없이 피어난다!
꽃 하나가 피면, 모든 꽃들이 따라 핀다.
달맞이꽃이 달님만 바라보듯
천둥새가 비를 기다리듯
우리가 평생을 바쳐 사랑할 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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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비르 다스(Kabir Das, 1398년 ~ 1518년, 또는 1440년 ~ 1518년)는 인도의 철학자, 성자, 시인이다.
카비르는 델리 술탄국 말엽 바라나시 출신의 힌두 사상가 겸 시인으로, 1398년 ~ 1518년까지 무려 120세까지 살았다.
카비르는 원래 비나레스 브라만 계급의 한 과부의 아들이었으나, 길거리에 버려진 것을 이슬람교도의 방직공 부부가 양육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비슈누파의 수행자(修行者) 라마난다를 사사(師事)한 뒤부터 유일절대신(唯一絶對神)인 라마(Rama), 즉 범(梵)에 대한 신애(信愛)를 통한 해탈을 주장하였다.
그 설은 힌두교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이슬람교도에 대해서까지 똑같은 해탈을 주장하여 이슬람교·힌두교의 차이를 초월하는 것이 되었다.
애초에 종교와 복잡한 의례에 비관적이었던 카비르는 자아를 내려놓고, 선을 행해야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설파하였고, (자신이 생각한) 힌두교와 이슬람의 비윤리적인 악습을 모두 비판하였다.
예컨대 우상 숭배나 고행, 카스트를 부인하고 일신숭배 등의 이슬람교(특히 수피파)적인 영향을 많이 볼 수 있다.
카비르 자신이 방직공으로서의 세속적인 직업을 가졌으며, 더구나 힌디의 속어(俗語)로 설법했기 때문에, 그 가르침은 널리 번져 이윽고 이슬람교의 시칸다르 로디왕(王)과 대립, 여러 나라를 방황한 끝에 죽었다.
그의 작품들은 박티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후 추종자들은 카비르 판트라는 종파를 설립하였고, 매년 카비르 자얀티 축제로 그를 기리고 있다.
성지는 그의 사망지인 마가르에 있다.
카비르의 이슬람과 힌두교 모두 비판 사상은 후일 시크교를 창시하는 구루 나나크에게 영향을 주었다.